아이 이야기_숫자가 한글이 기호가 되어 십진분류가 시작되었다
숫자들이 움직인다
자음과 모음도 방 안으로 모인다
계단 사이 누워있던 책들
하나 둘 안방으로 들어오라 하니
숫자 옷을 입히고
한글 기호 단추를 채워 넣었다
여름은 창살 없는
선들의 햇발 장애물을 데려오지
태양을 피한 칠판은 지하 도시
기호 지도를 탄생시켜 주었고
도서관 출입은 책들이 서 있는
숫자들의 이유를 찾아내게 했다
책들이 기호 옷을 입고 있다
코를 뚫은 주인의 말을 들어야 하나
책들에게 마음을 쓰는 아이
새 옷 입고 즐거워하려나
<기호의 전쟁, 나미래>
오래간만에 깐족거리기 좋아하는
아들을 좀 분석해보려 합니다.
그냥 엄마표 아들로서 말이죠.
얼마 전부터 형체가 불확실한
길을 그리며 무언가를 삽입하고, 지워내고
그 반복을 여러 번 하더니
물어봐도 잘 대답도 안 해주더군요.
음, 창의적인 지도라나?
지하도시 지도라나?
그 말만 하고
이제 알려하면 가르쳐 주지 않고
조금 무심해 지려하면 가르쳐 주는
녀석으로 커가고 있습니다.
10살! 만 9세!
말도 징그럽게 안 들을
때도 많다지요.
혈압 금방 오르게 한다지요.
말 꼬리 잡는데 귀신이 되어가지요.
뺀질뺀질 해지고요.
두 살 때부터 큰 보드를
사준 덕분으로 이곳은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놀이의
시작이 되어주었답니다.
그래도 취학 전에는
줄 세우는 것을 그대로 그려 넣기도 하고
모든 잡다한 것들을 적는 것을 즐겼기에
무엇보다 소중한 공간이라
생각이 듭니다만,
그래서 저희 집에는 보드 마카를
색깔별로 상자 채 사 두고 떨어지지 않게 하지요.
요즘에는 같이 사는 퍼그 산동이 녀석이
이 보드 마카를 물고 씹어대는 통에
아이는 감춰두고 쓰고
다시 신경 써서 플라스틱 상자에 숨겨 놓느라
나름 애를 먹는 것 같더군요.
제가 시집 출간으로 인해
아이와 함께 하는 여름 방학 휴가가
늦어지고 있었던 것이 십진분류표 세계로 또 들어가게 만들었네요.
보통 때라면 방학 시작하자마자
시골로 내려가서
외갓집 방바닥에서
뒹굴며 멍 때리고 있거나
뜨거운 땡볕 아래 낚시를 한다고
소란을 피웠을 텐데요.
더위도 참아주고,
이렇게 혼자서도 잘 놀고 있지요.
음, 엄마한테 붙어서 수다를 한창 떠는 것 빼곤
자주 이렇게 텔레비전도 안 보고
혼자서 잘 놀아주어 편할 때가 많답니다.
발레 창작 공연도 한 번 다녀오고,
물놀이도 다녀오고,
6월 9일부터 읽기 시작한
해리포터 24권(1권-7권)을
방학이 시작되자 미친 듯이 읽기 시작하더니
마무리를 하더군요.
적지 않게 많은 것들을 했네요.
벌써 방학을 다 마무리한 듯 보이지만,
더위를 피해 우리 모자는 도서관을
피서지로 삼고 며칠 그곳에서 책을 읽었죠.
물론 저는 다른 작업들을 하느라 아이 신경도 못 썼고요.
엄마!
도서관처럼 책 분류를
하고 싶어요.
자 이 말과 동시에
많은 책과 매체를 동원해 연구를 하기 시작하더군요.
천 여 권 정도 넘는 듯한,
그렇다고 이천 여 권이 넘지 않은 듯한,
책이 우리집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음.
우선 분류하는 대로 숫자를 적어놓는다더군요.
안방으로 책을 데리고 들어가
노트북에서는 십진 분류표를 켜 놓고
적고 있는 아이를 봅니다.
음, 이번 방학도 빨리 가겠구나!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