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사이버대학교 한국어문화학과에서 가을의 밤을 즐기다
얼마만의 발걸음이었을까요? 경희사이버대학교 한국어문화학과의 가을 MT(모꼬지)에
잠깐 얼굴을 비추고 왔습니다.
며칠 전, 한국어문화학과의 학과장이신 방성원 교수님을 학교에서 만나 뵙게 되었다지요. 우편이 아닌 직접 시집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았었지요. 너무 반가워해주셨고, 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여전히 든든한 학과의 교수님으로 자리를 지켜주시고 계셨습니다. 어쩜 교수님이 건네주신 말을 따름으로서 5년 동안 침묵을 지킨 학과 행사에 미안한 마음을 씻을 수 있겠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번 모꼬지에 시간 되면
오시는 것은 어떠세요?
후배들에게 자극을 주는
선배님의 한 마디를 부탁드려요!
네, 교수님의 이 말씀으로 마음이 많이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었고요. 다행히 그날 집으로 초대한 손님이 약속을 미뤄준 덕분에 행사장으로 금방 달려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말을 걸어주었던 학과의 조교님의 따뜻한 손길에 감히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죠.
오래전에도 행정 일을 했었던 박 조교 선생님이 아직 경희사이버대학교 한국어문화학과에서 자리를 지켜주고 있더군요. 친절했던 우리 조교님. 2010년과 2012년 사이에 학과의 편집국장을 맡기도 했으며,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아들이 5살이었을 때 맡았던 과회장으로 스펙다클한 경험을 쌓을 때 옆에 있어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저 사실 2010년에 편입하고 2년을 힘들게(빡.세.게) 공부했습니다. 진정한 생말이 나오는군요. 학기마다 있었던 우수리포트 상을 휩쓸었고, 올 A학점 성적장학금도 받았었고요. 음 그러다 무사히 전체 과목 이수를 하고 졸업을 남겨둔 시점이었는데요. 일부러 한 과목을 낙제시키면서까지 일 년을 더 다녔던 이유가 있었답니다. 그건 바로, 과회장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과목 이수보다 먼저 앞섰어요. 그 과정에서 모든 행정 절차와 정보에 도움을 줬던 사람이 바로 박 조교 선생님이었습니다. 학교로 다시 돌아와 있는 모습을 보고 제가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학교에선 학과장님만 만나고 다른 교수님들께 시집을 드리지 못하고 온 것도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화려한 당신들의 날과 우리의 젊은 날을 다 보고 있었던 교수님들. 김지형, 장미라 교수님. 아직도 이렇게 학과의 모꼬지에 몸을 담고 직접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고 귀를 기울여주시는 교수님들을 보며 '든든하다'는 말로 대신할 그 어떤 단어도 찾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녁이 펼쳐진 시간에 만난 동문, 재학생들, 교수님들과 담소는 언어에 활력을 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장미라 교수님께서는 유독 더 반가워해주시고 더 많이 웃어주시고 힘을 주시더라고요. 방성원 교수님께서는 조금은 다가가기 힘들었던 이미지가 탈피가 되어 보기 좋았습니다. 유머러스한 대화법을 유지하며 더 밝게 학생들을 대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김지형 교수님께서 일 년의 멕시코 안식년을 마치고 처음 참석하셨죠. 건강해진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고 할까요.
시집을 건넬 때마다 저는 참 많이 웃었습니다. 상대방을 또 함께 웃게도 했습니다. 제 시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일상이고, 삶이 묻어난 문장들을 그대로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김지형 교수님은
지산이는 왜 같이 안 왔어요?
시는 삶이야
라고 이 두 마디에 가장 먼저 건네주셨어요. 함축적인 표현을 이 말 속에 다 해주셨으면서도 행복한 말들을 계속 이어주셨습니다.
"지산(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는 정말 행복한 아이가 맞네요. 엄마랑 함께 여행 다니며, 일상을 보내며 그 삶의 한 부분들이 시로, 글로 표현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에요. 멋진 일인 것 같아요. "
맞아요. 맞습니다. 김지형 교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제 아이를 많이 봤던 교수님이기도 했으니깐요. 2012년 제 7대 과회장을 맡았을 때 이틀에 한 번씩은 만났던 관계라 하면 더 이상을 구구절절 말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졸업을 할 때 경희사이버대 명예 졸업장을 받은 아이입니다. 하하하. 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한국어학과에 진학을 할 수 있었는데, 대학원 수업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수업을 한 번 받았던 교수님도 바로 이 분의 강의 안에서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여러 학우님들을 만나고 늦은 저녁 시간 한 시간 거리의 여주에서 동탄으로 달려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혼자서도 엄마를 기다려주었고, 늦게 귀가한 남편도 오랜만의 익숙한 행사 외출에 넉넉한 인정을 보여준 날이기도 했습니다.
주춤거리며 깊은 잠에 들지 못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깨어 이 생생한 마음의 기억을 기록해 두었네요.
<모꼬지, 나미래>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가을바람 무리가 흘러간다
사계의 구름 물결 스친 사람들에게
힘이란 단어를 받았고
정을 통하며 그 정이 서로 오가게 했다
소심함도 따라다녔지만
대범함의 커튼이 가려주어
그녀 마음의 거친 물결도 숨겼다
전공을 바꾸면서 시작된
인연의 기회는
솔솔한 재미를 타오르게 했다
한국어가 한글다워졌고
40여 년 발음의 지병을 고쳐나갔다
더욱 깊어지기 전에 일으켜 세운
그 서울말 표준말은
그녀를 째려보며
가르침의 언어가 되어갔다
한국어 과정을 파먹으며
봉사활동을 할 거야 라던
그 처음은 먼길을 돌아가게 했지
물욕을 넘보게 되고
이름을 넘보게 되는
사치를 데리고 다녔다
자격증 위에 먼지가 올라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언어의 세계는
이제 그녀의 주변에서 서성거린다
비싼 학비와
목이 단단한 교수들의 자리
일이 학구열을 빼앗는 구조
화려함으로 치장한 학교 이름이
사라지게 하는 자리
경희사이버대
한국어문화학과에 밤이 밝았다
화면 밖으로 나온 교수들
화면을 던지고 나온 학우들
날아다니는 언어 규칙이
언어의 학문 주석들이
머리에 쥐를 심어 놓지만
공부가 맛있는 소리를
곧 듣게 될 터니
열매달 모꼬지에
웃음달이 떴더라
올해도 여전히 경희사이버대학교 한국어문화학과, 문화창조대학원 글로벌한국학 전공에서는 제7회 한누리 학술문화제를 위해 마음을 쓰고 있는 듯합니다. 2017년 10월 9일(월), 오후는 경희대학교에 제 걸음이 멈춰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 늘 함께했던 제 아들도 함께 말입니다. 2017년은 '아름다운 한글, 함께하는 우리'네요. 리플릿을 받아오며 참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제가 회장을 하면서 주관하던 그때의 리필릿보다 상당히 세련되어 눈길을 한 번 더 끌더군요. 저녁에 사진을 찍게 되어 조금 아쉽네요.
이번 제7회 한누리 학술문화제에서는 제48회 한누리 열린 특강으로 "훈민정음 창제와 한글 교육의 원리"가 김지형 교수의 강의 아래 재미가 더해질 것 같습니다. 또한 새롭게 꾸려진 형식으로 '한누리 교육 현장 이야기 좌담회'가 열린다고 하네요. 분과별로 나뉘어 관심 있는 주제(국내 대학 부설 교육기관, 국내 다문화센터, 국외 교육기관 파견) 부수에 들어가 좌담회를 방청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 같네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밝은 햇발이 되어 경희사이버대학교 한국어문화학과의 발전에 기여했으면 하는 졸업생의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