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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Oct 21. 2016

학생, 학생

나미래의 여행이야기_설악산 한계령 옛길을 오르다


한계령 옛길을 따라 가을 손님들을 절정으로 맞이하고 있는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저기 학생, 여기 사진 한 장 찍어줘요.”

     

바투 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설마 누가 나를 학생으로……. 내 옆에 있는 어떤 학생을 가리켰겠지 싶었지만, 지나치게 생생하게 들려온 탓에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들이 어떤 중년 부부 앞에서 그들의 핸드폰을 들고 서 있었다.


‘저기 학생’의 주인공은 내 뒤를 따라오던 초등 2년생인 우리 집 아들이었다. 나에게는 아이만 같았던 녀석이 남들 눈에 ‘학생’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부탁한 사진 찍어주기를 엄마에게 넘기지 않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찍어낸 그 자리에서 나와 아들은 눈이 마주쳤다. ‘엄마, 나 잘했지!’라는 당당한 눈빛이 내 앞에 있었다.


한계령휴게소에서 바라본 오색령


내설악의 비룡폭포를 걸었던 것은 두 시간 전의 일이었다. 왕복 5㎞는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였다. 절정기에 든 단풍잎들은 발길을 따라 옮길 때마다 색이 진하게 퍼지고 있었다. 가족이 함께 걷기에 좋은 등산로이기도 했으며, 산책길이었다. 가을 숲 속을 따라 등산지팡이를 들고 엄마를 따라오면서도 힘들다는 내색이 들려오지 않았다. 카메라로 가을 풍경을 담아낼 때마다 나를 기다려주었다. 평지의 산책로에서는 잘랑 잘랑 손으로 몸을 치며 앞서기를 반복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발걸음을 멈추고 서성거리는 엄마에게 등을 돌리고 그만 찍고 빨리 오라는 손짓이 자주 보이기도 했다.


기암괴석 저쪽과 이쪽에 연결되어 심하게 흔들거리는 흔들 다리는 비룡폭포를 200미터 정도 남기고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데도 가는 길을 멈추고 흔들거리며 즐거워하는 아들이었다.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동심을 지키고 있었다. 지나가기도 무서운 나는 그러지 말 것을 아이에게 주의를 시켰고, 걸쳐 있는 줄을 잡고 걷느라 다리 위에서 가을을 담을 수가 없었다.


비룡폭포를 200미터 정도 남겨 둔 곳의 흔들다리


비룡폭포에서 내려와 미리 예약해 둔 권금성으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매표소로 다시 올랐다. 아들은 매표소 매점에서 파는 구슬 아이스크림을 입안으로 가득 넣었다. 고개를 흔들면서 연신 시원하다를 반복한다. 설악산에 들어와 벌써 두 번째 먹는 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아들이 아이 같다는 것을 절실히 더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엄마, 이게 두 번째 아이스크림이니까 이제는 더 이상 먹으면 안 되죠? 맞죠?’ 한다. 여행으로 기분이 한껏 좋아진 엄마 옆에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아이스크림을 계속 먹게 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터득한 듯싶다. 3개 이상을 먹겠다고 징징거려봐야 앞으로의 여행에서 국물도 보지 못 볼 수 있다는 예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여행을 떠나면 아이는 좋아하는 음식을 실컷 먹는다. 한껏 부푼 가슴을 안고 휴게실의 식당 밥을 제법 맛있게 먹기도 한다. 여행을 하면서 아이의 식성을 새로 발견한 것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돈가스를 너무 좋아해서 집에서 자주 먹게 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휴게소 식당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는 음식 중 한 종류가 되었다. 엄마와 여행을 다니면서 어른들이 좋아하는 입맛에 길들여지기도 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갈비탕, 각종 찌개 종류를 입 짧은 아이가 잘 먹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권금성에서 만물상을 바라보다


 해가 이울어 가니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악산 일정 중 마지막은 미시령터널을 통과해 서울로 바로 가지 않고 한계령 옛길로 들어가는 계획이었다. 미시령, 대관령, 진부령, 한계령을 구불구불 산새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 마지막 정착지 여정은 한계령 휴게소였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다녀왔던 그곳은 벌써 20여 년이 훌쩍 지나버린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한계령 휴게소로 올라가는 그 구불거리는 S자의 정상은 힘들었던 운전에 대한 보상을 해주었다. 앞서가는 네모난 버스의 뒤를 따르며 짐짓 불안해했던 운전자에게 주는 가을의 선물 같은 것이었다.


아들과 나는 한계령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감자전과 불고기 뚝배기로 점심상을 받으며 휴게소 내부에서 설악의 절경을 눈에 담았다. 한계령 정상에서 단풍놀이를 즐기는 방법은 오색령을 배경으로 넓고 멀리 펼쳐진 자연을 눈으로 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계령의 옛 지명이 오색령이란다.


     

‘저기, 학생, 사진 한 장.’


한계령 정상에서 한 문장을 기억하게 했다.  

커가는 학생 아들을 남들에게는 아이로만 표현했던 내게 아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한계령은 밥 한 끼와 차 한 잔, 그리고 아들과 나의 셀카 사진 한 장을 남겨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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