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토함산의 가을 가을 단풍길은 석굴암과 불국사를 더욱 빛나게 했다
가을이! 가을이!
책 속에서 글을 모으게 하고
여행지에선 계절의 길이 깊어가는 소리를
모아 들으라 했다.
근래 아들은 책 속에서
석굴암과 불국사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었다.
책이 아니라 자연의 모습
그대로 눈으로 새겨야 한다는
어떠한 공감이 아들과 나를 움직이게 하고 말았다.
해마다 강원도 일대를 단풍 여행지로
선정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올해는
동탄역에서 신경주역까지
직통 SRT를 미리 예약해
여유로운 가을 열차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은
가을은 처음이었다.
동탄역에서 8시 25분에 올라탄 우리는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고 신경주에
도착한 열차 속도의 경이로움에
함박웃음을 터트려 보았다.
아들이 속도나 소리에
관심이 많은 것은
열차여행을 더욱 즐겁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석굴암은 온통
붉었고 노랗고 소나무는 푸르렇다.
나뭇잎과 나뭇잎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흡사 비라도 금방 내릴 것 같은
웅장함도 섞여 있었다.
바람이 목을 감았다.
추웠다.
아들에게 머플러를 빼앗기고 나니
나도 조금은 몸을 떨어야 했다.
낙엽들은 그저 제 살길 찾아가기 바빴다.
경쾌한 석굴암이었다.
색감 때문에 더욱 그랬으리라.
가을의 깊은 색으로 물들어가는
단풍들에 질투를 하지 않았던 소나무들.
늘씬한 허리를 드러낸 고목들이
바람을 막아주었다.
오래전 역사를 알고 들어간다면 결코
밝거나 경쾌한 곳은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바람의 기운이
머리를 참 맑게 해주었다.
<석굴암에 숨은 예술과 과학의 비밀>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석불사 천장에 구멍이 나서 흙이 자꾸만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자 일본인 기술자들은 석불사를 해체하고 다시 짓기로 했다는데. 그런데 바닥의 돌을 들어내 놓고 보니 바닥 아래로 샘물이 흘렀다. 일본인 기술자들은 파이프를 연결해 불상 밑으로 흐르는 샘물을 밖으로 끌어내고 뜯어낸 천장 돌을 다시 이어 붙이고, 석불사 밖으로는 두껍게 시멘트를 발랐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천장에서 흙은 떨어지지 않는데 불상에 시퍼런 이끼가 끼기 시작했다. 심지어 여기저기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기까지 했다는데.
그 비밀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풀렸다. 온도 차이가 나면 습기가 차는 것이다. 석불사 바닥에 차가운 샘물을 흐르게 해서 온도 차이가 나지 않게 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석불사에 일본인 기술자들이 바깥 지붕에 시멘트를 바른 것도 그 원인이었다. 흙은 수증기를 빨아들이지만 시멘트는 물과 공기가 통하지 않아 석굴 안에 습기가 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천여 년 전 신라 시대 과학자들의 지혜에 감탄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 우수함을 인정받아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신라인들의 지혜와 재능이 잘 녹아 있는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화강암을 다듬어 석굴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은 인공 석굴인 것이다. 불상의 이마 한가운데를 둥글게 파내고 백호를 박았다. 이것은 다면체로 깎아 햇볕을 반사하게 했다고 한다. 동트는 새벽의 첫 번째 빛이 석불사 입구와 그 위에 달린 광창을 통해 보존불 백호에 와 닿으면, 그 반사된 빛은 두 보살상의 백호를 향해 내쏘고, 거기서 다시 한번 굴절되어 나온 빛은 보존불 뒤에 있는 십일면 관세음보살상의 이마를 비춘다고 한다. <김선희 저, [건축물에 얽힌 12가지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 어린이작가정신>
그야말로 이 모든 것들이 예술과 과학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지 않았나 싶다.
아들은 집에서 내게 하던 질문들이나
설명을 이곳에 와서도 하기에 이르렀다.
궁금증과 원하는 대답을
직접 보고 더욱 자세히 풀었음 했는데
풀고 나서도 나에게 달라붙어 설명이 시작되었다.
아들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다.
알고 싶은 것!
설명하고 싶은 것!
을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음, 집요하다!
바람에 붙들려온 낙엽들과
잠시 여유로움을 먹었다.
불국사의 이 몽환적이 분위기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해거름이 조금 지나 버린 방문 시간은
빛을 바라볼 수 없는 시간대였다.
아쉬움으로 핸드폰을 요리저리 움직여보지만,
능숙한 카메라의 색감이 얻어지지 않았다.
석굴암에서 오후 5시 버스를 타고
불국사로 내려왔다.
석굴암과 불국사의 관람 시간을
한 시간만 더 앞당겼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드러내기 바빴다.
청운교와 백운교의 아치형 다리에 숨어 있는
비밀을 내게 설명하기 위해 아들은
자꾸 내게 손짓을 보냈다.
내진이 설계가 되어 있는
아치형 다리는 과거에 물이 흘렀다고 한다.
왼편의 석축 기단은 그랭이질이 되어 있다.
<그랭이질>이란
자연석과 인공이 맞닿는 부분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아랫부분은 자연의 돌로,
윗부분은 사람의 힘이 들어가게 되면서
자연석에 맞추어 깎아 올려놓는 수법인 것이다.
이른 시간에 오지 못했음은
아쉬움으로 온몸 가득 뒤집어썼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려나.
그렇지만, 이 늦은 시간에도 단체로
관광을 즐기는 일본인이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있구나 하면서
함께 위로를 받았다는 것.
다시 돌아와야 하는 시간
7시 25분의 SRT는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마지막 일정인 불국사에서
급하게 내려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지만,
또 이곳을 탐닉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아들과 약속을 했다.
10시 30분에 도착해서 시작한 짧았던 여행!
우리는 가을가을한 경주여행을
포켓 속에 향기를 가득 담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