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詩詩한 여행 에세이, 법정스님 만나는 길이 참 멀다
3월이 시작되자 설 명절 전후로 친정을 다녀오지 못한 미안함이 발동을 걸었다. 언제부터 남편이 동행하지 않는 명절 친정행은 혼자서 가는 것이 소심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며칠 전, 근래 아내를 잘못 다룬 미안함 때문이었던지 남편이 시골을 향하자며 먼저 말을 건네주었다. 친정 엄마의 생일도 다가오는데 식사 모임의 기회도 엿볼 수 있어 흔쾌히 승낙을 했다.
최근 서재를 정리하며 법정스님의 수필집을 다시 만났다. 그런데 왜일까? 아련해지는 마음을 잡을 길이 없었다. 문뜩 송광사 불일암에 꼭 다녀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어차피 남쪽으로 향하는 일정 아닌가? 내려가는 길에 남편에게 살짝 귀띔을 해보았다.
"가려면 혼자 가."라는 말도 서운한 게 아니라 반갑다 못해 흥분까지 했다면 믿겠는가. 아들도 아빠랑 같이 외갓집에 있겠다고 했다. 아들의 말이 더 기뻤는지 모른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들의 문장을 다 받을 수가 없을 때는 과부화가 걸린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들의 수다를 가끔 피하고 싶을 때가 바로 지금.
흔쾌히 자신의 차를 내어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마음이 바뀔까 틈을 주지 않고 두 부자를 빨리 떼어놓고자 키를 냉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순천행을 서둘렀다. 사실 직행버스를 타고 가는 맛이 제격인데 많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아쉬움에 자가용의 신세를 져보기로 했다. 친정 거금도 금산에서 순천 송광사까지의 거리는 약 80킬로미터. 차로 1시간 20분이면 닿는 곳이다.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멍하다 못해 맹하게 뇌를 풀어놓고 혼자의 시간을 즐겁게 위로하기로 했다.
허리가 조금 아파올 무렵 송광사 무료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넓은 주차장을 따라 매표소와 일주문을 지나 송광사 경내까지 10여 분 이상을 올라야 하는데, 벌써 무소유길이 필자를 반긴다.
늘 푸른 편백나무 숲이 여행객들을 반겼다. 숲길에서 만난 시샘 바람을 한 번 더 걸러주는 느낌이 드는 그런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길, 혼자서 걷기에 참 매력이 넘치는 숲길이었다. 송광사와 불일암을 가리키는 이정표에 새 옷을 입혔나 보다. 그러고보니 불일암을 찾는 여행객이 많아진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송광사보다 불일암(무소유길)을 먼저 걷기로 했다. 법정스님을 만나기로 한 마음의 약속을 먼저 지켜보고 싶었으니까. 주차장에서 불일암까지 소요 시간은 40분 정도로 예측해 주었다. 불일암까지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지고 있었다. 오래되어 색이 바랜 나무 이정표는 차도 오르내리는 시멘트 길이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짐짓 머뭇거리며 방향을 못 잡다 올라가기도 한다). 새로운 간판에 이질감이 들면서도 이곳을 따라가야겠다 다짐한 결심 덕에 소담스러운 숲길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주차장 끝에서 걸어서 삼사 십분 정도라면 시원하게 바람을 맞을 적당한 시간이었다. 최근 찬바람에 신체를 노출시키는 일과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하는 약골이 된 필자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았던 길이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불일암 가는 무소유길에서는 곳곳에 조릿대가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큰 키를 자랑하는 대나무도 서걱 거리며 산골 바람에 봄기운을 섞은 산사의 소리를 뽐내고 있었다. 해가 떨어질 늦은 오후였다면 등골이 오싹하였을 둔중한 소리였을 것이다. 정오의 햇살은 홀로 찾은 여행객에게 외롭지 않게 밝게 웃어주는 것 같았다.
불일암에 가까이 다가가니 겨울의 끝자락을 맞이하는데도 숲이 푸르렀다. 편백과 소나무 대나무가 산을 지배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끌고 이끄는 모습이 참 바람직해 보였다.
불일암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 숲길이 참 신비로웠다. 푸르른 잎을 자랑하며, 거센 바람에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부드러움을 온몸에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부드러움이 강인함을 꺾는다는 말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자연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대나무 숲길 문이 보호해주는 불일암은 참 따뜻했다. 겨울의 시샘이 금방 물러날 것 같은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온 날 나는 그저 행복했다.
(브런치, 201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