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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Mar 26. 2018

연곡사 기행 3.1, 홍매화 피는 소리

나미래의 詩詩한 템플 이야기,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도 매화 향기가


다시 '템플스테이'라는 이유를 담고 지리산 연곡사에 몸을 움직였습니다. 이번 연곡사 기행에서는 반가운 지인들도 함께했습니다. 또한 더 반가웠던 봄꽃 매화를 만난 곳이기도 합니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774'는 검색만 하면 나오는 연곡사의 주소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지역 명칭 하나하나가 참 특별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단어들 뿐입니다. 좋아했던 친구가 살던 구례, 좋아하는 책의 제목인 토지, 지리산 등반을 처음 경험했던 장소 피아골, 생기가 돌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피아골 연곡사에도 봄이 찾아들고 있었습니다. 더딘 겨울의 길섶 풍광을 보이는 지리산이지만, 그 아래의 산야에는 환한 봄의 고리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연곡사 곳곳에서 피어나는 매화를 보니 이곳을 찾기 전에 들렸던 '산수유 마을'의 산수유와는 또 다른 꽃의 묵직한 정신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매화 이야기입니다. 반가운 사람도 좋았지만, 매화가 주었던 강인함과 부드러움에 마음을 빼앗긴 감정이 더 오래갈 것만 같습니다.   



2018.3.25, 연곡사의 공양간이 보이는 담장에서 홍매화가 얼굴을 보인다. ⓒ나미래


연곡사, 담장 아래 홍매화의 묘목이 분홍빛 풍경을 만들어 낸다.ⓒ나미래


연곡사, 정갈하고 빛나는 장독대가 공양간의 속내를 대신하는 것 같다. 홍매화 피는 소리를 듣는 장맛이 비범하진 않을 듯하다ⓒ나미래






<담장 너머 홍매화, 나미래>



연곡사 공양간, 낮은 담장 지붕 아래서

몸을 누인 불콰한 꽃잎 소리가 들린다

지리산 자락 돌고 돌아 봄물 맞이 중이라며


거친 외줄기 밭길, 여린 살을 들어 올려  

돌담과 주고받는 햇발을 이고 지고

서로를 안은 붉은 입술의 풍경을 그린다


처마 곁 풍경 소리에 꽃의 눈빛이 맞추니

봄을 잡는 이들의 마음에 홍매화 향기 가득   

타오르는 살갗을 붙들고 담장 곁을 떠나지 않을래







위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연곡사에 입사하기 전, 지인들과 미리 만나 산수유 마을의 산수유 꽃구경을 했습니다. 그 노란 군락의 고목 꽃에겐 미안하지만, 연곡사의 매화에 마음을 주고 와 버렸네요. 특히 붉게 물든 홍매화에 계속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보세요.

홀연히 고개를 떨굴 홍매화이지만, 옹기종기 앉아 적당한 여백을 남겨 놓고 가지와 일심동체가 되어 있는 모습이 고귀하지 않습니까. 붉은색 잎에 가려진 꽃술이 그래도 참 자연스럽습니다.  





지리산 화엄사 홍매화 나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입니다만, 아기자기한 나무들의 크기에서 제 자신 속 성장의 한 모습을 보고 있는 듯했습니다. 어떠한 더딘 시간이 찾아와도 이들은 꾸준히 자연의 순리에 맞게 그 자리를 지켜나갈 것입니다.





몰래몰래 엿보고 싶었던 홍매화였다면 그 마음이 표현이 다 된 것일까요. 다 드러나지 않아도 물론 좋습니다. 공양간을 들릴 때마다 담 너머에 꽃을 훔쳐보는 맛이 참 즐거웠습니다.





이 붉은 꽃과 겨울의 끝인 저 골짜기의 산등성이가 대비가 되고 있습니다. 지리산이 안고 있는 많은 골짜기에서 차분히 봄물을 내려준 덕분으로 이곳 연곡사에도 봄이 환하게 찾아왔습니다.





오전에 내린 맑은 햇살 덕분에 꽃잎이 제 색감을 몸에 감고 한참을 웃고 있더군요. 뿌리 주변으로 영양분을 이불처럼 잔뜩 덮고 있었던 덕분인지 꽃잎이 참 건강해 보입니다.





장독대 너머 담장 위로 많은 봄들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길게 늘인 그림자에 홍 그림자도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곳에 의자 하나 올려두고 계속 마음을 빼앗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반 백수인 저는 자연에 눈을 빼앗기는 일이 제 일상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때문에 이렇게 호젓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제 일이거니 하면서 참 즐겁다 말할 수 있겠네요.





홍매화의 커가는 모습을 계속 제 눈에 담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널따란 절마당을 두른 담장과 묘한 어울림으로 홍매화는 계속 자리를 지키겠지요. 듬직한 산야에 자리를 깔고 또 여러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말이죠.





연곡사 일주문을 오르면 이렇게 맑은 색감으로 고목이 된 매화가 듬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계곡에서 봄을 끌고 오는 자연의 속삭임을 함께 맞이하고 있죠. 그 덕분에 여백을 남겨두는 풍경화를 눈앞에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단짝을 이뤄 꽃잎을 이룬 매화가 사랑스럽습니다. 단초로운 꽃잎을 이고 꽃샘추위에도 사운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여름과 가을 사이에 산사를 찾았던 지라 매화나무를 유심히 살펴볼 수가 없었습니다. 관심이 다른 곳에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나무가 그저 나무였음으로 보였던 게지요. 그 나무가 그 나무가 아니었던 의미를 되새기며. 이른 봄 이곳을 찾게 된 것이 크나큰 영광이라면 영광입니다. 북적이는 매화 밭을 거닐지 않아도 이렇게 매화를 더욱 유심히 자세히 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널려 있는 수많은 꽃송이의 그것이 아니니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라고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서도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갈라진 발가락 사이

하얀 분을 발랐네

늦둥이구나


<매화, 나미래>




이 매화 형태로 보아 버들 매화임이 분명한 것 같은데 원묵 스님께 자세히 묻지 못하고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고운 마사토 위에 자리를 잡은 매화가 넓은 마당의 여백을 채우고 있어 이른 봄 연곡사가 행복한 이유입니다. 2018.3.26.



<나미래의 詩詩한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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