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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Apr 01. 2018

연곡사 기행 3.2, 산사의 품

나미래의 詩詩한 템플스테이, 연곡사에 머무르는 이유를 찾았다!


동승탑과 탑비를 향해 오르며 본 대웅전. 유홍준 작가는 "연곡사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도들의 축제를 고이 간직해 지리산 옛 절집의 마지막 보루라 할 만하다."고 했다.ⓒ나미래



  산속의 사찰에 머무른다는 것은 특별한 일상이 맞는 것 같다. 탁발을 하러 오던 스님이 무서워 방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던 때가 있었다. 유년시절의 그 경험 또한 특별한 경험이었는데 그때는 잘 몰랐다. 성년이 되도록 필자에게 절이란 음울한 산속에 홀로 있는 곳. 즉 스님을 속되게 표현하는 말인 ‘중’이 살던 집의 인식이 더 컷다. 또한 칠흑 같은 어둠이 떠올려지는 곳이었으며, 원색에 가까운 단청의 색상이 무서웠던 곳으로 여겨지곤 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었나 보다. 청정한 숲길의 내음과 어우러진 절집에 들어서면 무섭다기보다 눈이 즐거워지니 말이다. 사찰에서 올려보고 내려다보는 울울창창한 나무들의 풍경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공양간 담장 앞에서 원묵스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나미래



  며칠 전, 아들을 데리고 지리산에 위치한 연곡사로 두 번째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지인 서너 명과 함께해서인지 웃음으로 이어진 시간이 값지게 느껴졌다. 가족 단위 템플스테이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연곡사는 다른 절에 비해 사람들이 혼잡하고 북적이지 않아 좋다. 너른 절 마당을 여유롭게 걷고 있는 신도나 관광객들의 동선을 살펴보면 부드럽기 그지없다. 일주문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천왕문이 반긴다. 묵직한 두 곳을 지날 땐 눈을 최대한 멀리 그리고 높이 바라보면 좋다. 그러면 매화나무, 벚꽃나무(다음에 가면 다른 나무의 이름을 더 알아봐야겠다.) 등이 지근거리에서 눈을 반겨줄 것이다. 연곡사는 무엇보다 고목이 많아서 좋다. 자연을 역행하지 않고 넉넉하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아는 모습. 살이 트인 모습을 하면서도 넓은 가슴으로 필자를 감싸 안아주는 느낌이 든다. 여백의 미를 남기며 조화롭게 어울리는 연곡사의 자연들. 필자가 연곡사를 좋아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다.





천왕문을 감싸고 있는 매화나무에 꽃 축제가 열렸다. ⓒ나미래



  작년 가을에 다녀왔던 아들과의 템플스테이는 가을의 다채로움이 없었다. 한 달 정도 늦게 일정을 잡았다면 지리산 피아골의 삼홍을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산이 붉게 타고, 그 타는 산과 함께 물도 붉게 물들며, 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삼홍(三紅). 필자가 보지 않는 사이 모두가 그렇게 붉게 타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늦가을과는 달리 봄은 조금은 미약하지만 생명을 탄생시키는 곳의 여유라는 단어가 보였다. 때문에 연초록의 새싹이 꼬물거리는 나무에 더 관심을 보이며 살뜰하게 연곡사를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보일 때, 볼 수 있을 때 ,가깝게 그리고 살갑게 느껴보고 싶은 자연은 봄을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움직이고 있었지만 눈은 나무에게로 향했다. 함께했던 그분들에게 미안함을 담아 수줍은 고백을 해야겠다. 늦가을과 겨울 사이 연곡사도 음울한 겨울 숲의 숨소리와 깊게 호흡했을 것이다. 자연은 여전히 제자리로 돌아 연곡사를 둘러싼 피아골의 개울을 다시 흐르게 만들었다. 삼홍루(수련장)를 오르기 전에 왼편으로 연곡사의 텃밭이 보인다. 채전을 갈아놓았나 보다. 벌써 정갈해진 모습으로 누군가의 손때가 벌써 깊게 묻어 버렸구나.

 


연곡사 텃밭. 이곳에서 대중울력을 해보고 싶다. ⓒ나미래



  현재 연곡사에는 템플스테이관을 새로 짓고 중이었다. 목하 준공을 앞두고 있는 듯한 모습. 우리가 찾았던 날은 객들이 많았던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요사채에 머무를 수 있었다. 파초잎 모양의 목판엔 무설전(無舌殿)이 무게를 잡고 새겨져 있다. 무설(無說)이 아닌 설(舌)의 한자가 유독 의미심장해 보인다. ‘말이 없는 곳’이 아닌 ‘그 말을 시작하는 혀의 움직임이 없는 곳’의 의미로 들린다. 말의 발원지가 어디인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연곡사에 발길을 계획하는 사람들이라면 요사채 툇마무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을 꼭 눈에 넣어보면 좋겠다. 지리산 피아골을 다 감싸 안은 듯한 기운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산벚꽃이 바람에 날고 있는 산등성이는 행복하겠다. 버들매화 꽃잎도 땅을 지나 하늘로 오르고 있겠구나.



연곡사 요사채 마당에 버들매화.ⓒ나미래



나미래의 詩詩한 템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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