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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Apr 04. 2018

마음을 읽어주는 여행, 소확행의 시작!

나미래의 詩詩한 여행 에세이, 지리산의 노고단에 오르며

1507미터의 노고단 정상 돌탑. ⓒ나미래

  


  다이어트를 해보고자 요 근래 걸으면서 천천히 달리는 운동을 시작했다. ‘여자에게는 평생 다이어트란 말’을 곧잘 듣곤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몇 번 움직임으로 내게 살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다리 근력은 그럭저럭 단단해져 있었나 보다. 오랜만에 오른 지리산 노고단 산행이 생각보다 힘에 부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1500미터가 넘는 노고단이지만 1102미터의 성삼재 휴게소까지 자동차로 편하게 올랐던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지난주, 아들과 지리산 아래 연곡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사찰 경내에 매화와 홍매화가 꽃잎을 활짝 올렸기에 자꾸 눈길이 홀리고 말았다. 주변 길섶에는 풀꽃들이 쭈뼛쭈뼛 고개를 더 낮게 내밀고 있었다. 흙의 냄새를 더 가까이에서 맡고 있는 듯도 했다. 지리산의 봄을 알리기 시작하는 작은 생명들. 이 자연의 생명들을 두고 다른 곳으로의 일정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연곡사에서 삼십 분 정도 차로 이동하면 사찰에서보다 더 맑은 공기와 바람을 만날 수 있었기에.    


  성삼재 휴게소까지의 깊게 경사진 노고단로는 맥박이 빨라져 심장을 오글거리게 만들었다. 수다를 떠는 아들의 입까지 잠시 내려놓게 했다면 믿겠는가. 나는 오롯이 액셀과 브레이크의 강약 조절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 잘 다져진 노고단 산길을 따라 오르면서 아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잔설이 남아 있었던 오솔길. 아직 지리산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는 약간의 찬바람이 보였다. 갈증에 목을 적시는 시원한 물맛과 비슷해서 반가웠다고 해야겠다.

 

  우리 모자는 오르면서 이번 여행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살다 보면 자신이 생각한 말과 다르게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상황을 맞기도 하는데. 템플스테이 첫날 아들의 말이 조금 불편했던지 그것을 짚고 넘어가는 일본에 사는 지인 한 분이 있었다. 아들은 최근 신문을 보면서 정치 기사나 새로운 사건 사고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신문에 나온 ‘일본 아베 수상’의 일이 궁금했던지 ‘왜 한국의 신문 1면에 나왔냐고.’ 옆에 앉은 내게 먼저 질문을 하는 것이다. 나는 최근 부동산 문제로 곤욕을 겪고 있다는 말로 짧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앞에 앉아 있는 지인에게 아들을 대신해 ‘아베 수상이 어떤 상황이냐’는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 질문을 들은 그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본인 남편과 한국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민감한 정치 이야기를 묻는 것이 단골 코스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조금 실례지 않겠냐.’는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한국인이 예민한 정치 문제에 대해 지인들과 만날 때마다 듣는 것은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일 수도 있으니. “응, 그렇지 언니,  그런데 아들이 요즘 관심이 많아서 직접 일본에 있는 언니에게 물어본 거였는데.”라고 했더니 “한국 사람들은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아.”라고 말을 받아준다. 그리고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아들은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갑자기 아저씨 이야기와 한국 사람들의 정치 이야기까지 커진 상황이 이해가 안 되었다 했다. 엄마로서 아들의 입장 또한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 부분.

 

“엄마, 제가요. 독도 얘기를 한 것도 아니고, 독도 소유권을 교재로 쓰고 있는 학교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요. 아베 총리를 물어봤을 뿐인데요. 이모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저게 아닌데 하고 생각했어요. 제가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 이유를 말하면 정말 이모가 더 놀라겠죠. 일본어 배워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제대로 말을 할 거거든요.”


  서로의 입장이 있기에, 생각의 차이가 있기에 더 알아가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결말을 냈다. 지리산 노고단을 오르면서 여행을 갈무리하는 아들의 생각에게도 봄은 오고 있었다. 저 깊은 산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대화를 통해 찬 바람 뒤에 살며시 날아오는 봄물의 향기를 들어보지 않을까. 엄마가 들어주는 자신의 깊은 대화에 아들은 만족하며 이번 여행 최고였다 스스로 평가도 겸했다. 어른들의 복잡한 세계에 아직 들어오기를 만류하고 싶다. 그렇지만 스스로 더 넓은 세계의 지역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체화시키는 작업이 앞으로 더 필요할 듯 보인다. 논리적인 것이 때론 어울리지 않을 때가 많다.


  노고단의 겨울 정상을 지키고 있었던 늘푸른 구상나무를 따뜻한 눈빛으로 어루만졌기에 됐다.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일상 속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 고지대에서 사는 구상나무. ⓒ나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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