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詩詩한 여행 이야기, 순천 송광사 佛日庵
법정스님이 계신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 홀로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하며 암자를 둘러보았지요. 법정스님이 묻혀 있다는 후박나무(본래 이름은 일본목련인 향목련이며, 나무껍질을 후박이라 이른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법정스님의 책에서는 후박나무로 묘사됨.) 주변 고목이 내어준 그루터기 의자에 앉아 마음을 담고 왔습니다.
<불일암에서, 나미래>
봄비 섞은 골짜기 바람이 차다
춘삼월 대나무 숲길에 올라탄
겨울 시샘은 불일암에도 여전하다
고목의 깊은 사연 자연으로 흩어져
쉼을 울리며 정을 나누도록 위로하네
꽃향기 한아름 안고 당신의 소원 묻은
후박나무(향목련) 주변 눈길로 서성이네
늙어가는 사물의 쓰임도 길이 있어
빛바랜 색 머금고 소박하기 그지없다
절 마당에 물기 마른 낙엽들도
정을 털고 일어나 봄을 맞고 있구나
산사 암자에 움직이는 풍경소리
침묵을 장식해 주는 그 소리 따뜻하다
비에 씻겨갈 불일암 흙더미 언덕을 지키는
태산목, 굴거리, 향나무에 고맙다 인사했어
꽃물 오를 목단의 숨은 꽃볼이 봄볕을 쬘것이고
오순도순 암자를 지키자 불콰한 물을 올렸네
어느 동물의 여물통도 소박한 빗물을 받아
연꽃 뿌리가 자리 잡은 연못이 되는 텃밭
지나가는 행인에 내어주는 물 한 모금에
작은 암자 속 맑은 공기 기쁨이 가득 찼다
가을에 멈춘 큰 키를 잠시 묻어준 파초 무덤
봄 하늘을 넘보는 여백의 자유를 만킥했다네
불일암 입구에서 가까운 텃밭 화단에
목단의 꽃봉오리를 빛낼 새싹이
불콰하게 물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미처 떨구지 못한 수국의 꽃잎과
이파리들이 겨울의 잔해를 전해줍니다.
곧 푸르른 마음을 받을 때가 오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수선화는
이곳 불일암 고목 아래서 터를 잡은 모양입니다.
봄이 오는 소리를 먼저 듣고
잎을 올리는 녀석들이 참 귀엽습니다.
노랗게 피어오르려나?
하얀 꽃잎으로 귀태를 드러내려나?
기대가 되는 봄입니다.
나무의 가지만 보고 나무의
이름을 판단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이 모든 자연과
식물들과 친구가 된 듯했다지요.
목단이 이렇게 줄을 지어
목을 적실 따뜻한 비와
햇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후박나무 가지 아래
법정스님의 육신의 재가
묻혀 있는 곳입니다.
무소유의 삶 철학을
지키며 끝까지 몸소 실천하고 가신 분을
어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KBS1TV 다큐 프로그램,
힐링 다큐 나무야 나무야 시즌3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법정스님과
불일암 곁에서 자라는 나무를
만나 얼마나 반가웠던지요.
특히, 겨울을 따뜻하게 나도록
늦가을 무렵에 파초 잎을 자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연못 뒤에 하얗게 덮여 있는 저곳에
법정스님이 아끼셨던 파초의
뿌리가 겨울을 보내고 있을 것이지요.
앞에는 플라스틱 통으로 만든
작은 연못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침묵을 하며 드나드는 행인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예전에는 저렇게 넓을 통을
소나 가축의 여물통으로
쓰기도 했다는데요.
앗! 또 하나의 귀한 정보를
듣게 됩니다.
묵언이라는 글자가
이곳에서 더욱
고요하게 느껴집니다.
법정스님이 계신 곳이지요.
평소 사랑하고 아끼셨던
후박나무(향목련) 아래
한 줌의 재가 된 자신의 육신 흔적이
이곳에 묻히길 소원하셨다는데요.
2010년 3월 11일,
열반에 들었던
법정스님이 계신 곳에서
한참을 떠나지를 못했습니다.
법정스님은 자신의 가르침대로
남을 위해 살다가 빈손으로 가신 분으로 유명하지요.
살아생전 '무소유'를 강조하신 유언대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가신 분이십니다.
돌아가시기 전,
자신이 써낸 많은 출판물을 절판시키라는
유언이 지금도 지켜지고 있지요.
법정스님의 제자이며,
불일암의 주지이신
덕조 스님의 고무신입니다.
법정스님이 아직도
살아계시는 것 같아
(법정스님이 안에 계시기에)
옆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씀도 남겨주셨지요.
법정스님은 이렇게 불일암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법정스님이 신으셨던
고무신이라네요.
꿰맨 실자욱도 보이고
법정스님이 안에서
정진 수행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고즈넉한 풍경입니다.
여러 계단 위에서 아래를 훤하게
내어줍니다.
후박나무
향나무
굴거리
태산목
포포 나무
모두 모두 반갑다 합니다.
암자를 찾은 사람들에게
덕조스님이 당조고추를 내어주시네요.
상큼한 오이 고추 같은 아삭한 느낌으로
씹으면 단맛이 나는 파프리카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언덕 아래도 수선화의
새싹이 봄을 기웃거렸어요.
소중한 물을 아끼는
소담스러운 모습입니다.
누구를 위해
이 작은 깨진 찻잔에
물을 담아두었을까요?
새들을 위해서?
생각이 그곳에 미칩니다.
지친 목을 이 물로
잠시 축여 가시게나 하면서 말이죠.
하얀 벽에서 웃고 계시는 스님을 보고
'스님의 말씀 잊지 않고 새기며 살겠습니다.'라고
다시 되뇌고 말았다지요.
떠나오기가 아쉬워
넓게 넓게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고사목 의자에
쉼을 의지하면서 메모를 하고
올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 한국을 잠시 떠나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잠깐의 어학 생활쯤으로 생각하고 떠났던 일본이었는데 대학 수순까지 밟으면서 오랜 시간을 있게 됐던 곳. 그곳으로 향할 때 법정스님의 책을 몇 권 짐 속에 챙겨갔던 기억이 납니다. 깔끔하고 쉬운 문장, 군더더기 없는 시원함의 필체는 그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세련된 지적 통찰을 경험하기도 했던 에세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법정스님의 수상집을 가까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절판이 될 줄 어떻게 알았을까? 무더기로 스님의 책을 사두며 뿌듯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서재에 쌓인 책들을 정리하다 법정스님의 오래된 수상집들을 다시 들춰보게 되었어요. 이맘때 떠나신 스님을 생각하며 불일암을 찾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편안한 여행되고 계시지요? 스님!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브런치, 20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