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읍 귀덕리 농어촌, 아늑한 푸르름과 야생화 풀꽃에 푹 빠지다
제주를 찾을 때마다 필자는 친정도 함께 들린다. 친정 주변 고흥 녹동항에 제주로 향하는 뱃길이 열려 있는 덕분이기도 하지만 반려견을 맡길 수 있는 초록의 시골집이 무엇보다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선 여행도 일상의 한 연장선에서 크게 벗어나게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친정도 여행지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를 지녔다. 계절의 변화가 여행의 모든 주제로 통하기에 친정을 중간 지점으로 제주도를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필자에겐 소확행(소소한 일상에서 확실한 행복)이 분명하다. 제주도의 야생화에 관심이 많지만, 그렇다고 그것 하나에 집중할 수 없다. 아들과의 여행은 많은 변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한림읍 귀덕리 숙소 주변에서 풀꽃들의 모습에 고개를 숙여 보았다. 낮게 가까이. 여린 몸짓의 봄꽃들은 어린아이를 닮아 있었다. 아이의 성장이 그려지듯 지켜봤듯 내겐 그랬다.
봄이 찾아오면 제주의 푸른 바다, 푸르른 산 그림자의 색감이 머릿속을 찬찬히 맴돈다. 물론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돌담 아래 작물의 성장을 상상하기도 하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필자는 바다와 산, 들녘의 바람 소리 하나하나가 인생의 모태가 되었던 시골 태생이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의 성장 교감의 색감을 문득문득 찾는 여행을 즐긴다. 필자의 삶의 방향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의 행위 같은 것. 이렇게 푸르른 제주도를 찾게 되는 것은 연내 행사가 되어버렸다. 그곳엔 늘 풀꽃과 야생화가 하늘 거린다. 맑은 하늘과 비례하는 푸른 바다 갯바람을 맞고 환한 미소를 띠고 반갑게 맞이하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들은 비행기를 주로 보고 싶어 했다. 아들과 달리 필자는 제주도의 봄꽃과 푸르름을 유심히 살펴보고자 했다. 상반된 주제를 가지고서도 서로의 여행 스타일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아들이 자주 가고 싶어 했던 제주공항과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사이에 있었던 한림읍 귀덕리의 레몬 하우스가 안성맞춤이지 싶었다. 물론 두 모자가 너무나 좋아하는 새별오름과 곽지해수욕장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도 그저 반갑기만 하다. 한달살기 숙소였지만, 짧은 여정의 숙소도 되어주었던 곳.
한적한 길 위에 바람은 이리저리 잘 오갔고, 멀리 귀덕리해변이 보이는 낮은 돌담길은 서로 키를 맞춰주었다. 사각사각 푸른 풀잎의 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피처링이 되어주었던 널따랗고 맑은 풍경을 어찌 잊겠는가. 마치 남북정상회담에서 특별하게 기억되는 곳. 파란 도보 다리에서 남북한 두 정상의 대화에 산새들이 배경 음악을 만들어낸 절묘한 풍경처럼 말이다.
숙소 주변은 한적한 농촌의 부드러움을 지닌 곳이었다. 봄봄 거리는 들녘 풀숲에 일찍이 머리를 올린 고사리가홀로 외로이 서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곳이다. 유채꽃이 고개를 숙이고 청보리가 알알이 열매를 맺고 있었던 곳. 그곳에선 계절의 흐름에 몸이 맡기며 여위어 가는 작물의 그림을 보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풀밭 사이로 풀꽃이 노래를 부르며 미소를 띠던 곳이었다. 좁은 도로를 차로 지나치며 곳곳에 보인 청보리의 물결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가슴으로 기억되는 4월의 푸르름은 '청보리 오름'의 시로 대신하고 싶다.
<청보리 오름, 나미래>
핏물 붉게 밴
화산석 마디마다
갯 공기가 자란다
바다 연정 주고받는
담장과 길가 사이
청보리 늙어가네
봄햇살 수다에
청산의 수염 가시
불붙을까 염려일세
물결 능성은
바다만이
가르쳐 주지 않았어
이슬 눈물 소리
힘차게 데려가는
바람이 알려 주었지
사월이 오면
농가에도 오름을 만나네
청보리 이랑을 타고
제주도의 여유로운 한달살기 문화를 만들어가는
'와로(WARO)'와 함께했습니다.
시시詩한 여행을 하는 시인 나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