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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Nov 03. 2016

#19강의실 인연

나미래의 수업이야기_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실 여행

강의실 인연

     

  내가 수업을 하는 한국어 토픽(TOPIC) 강의실에는 5개국의 아시아권 학생들이 주로 출석을 한다. 그들은 오산이나 평택 일대 어딘가의 직장에서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이기도 하며, 결혼이주여성이기도 하다. 일주일 동안 현장에서 종일 일을 하기도 하고, 부업을 하기도 하며, 다른 센터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이곳을 찾는 학습자도 더러 있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밖에 앉히고 수업을 듣는 이도 있다. 이미 강의를 받고 있었던 친구의 소개로 강의실을 찾아온 그들의 네트워크는 조용한 그물망의 수준을 넘어선 듯한 느낌이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 2시간 안에 글만 적어진 교재를 보며 토픽 강의를 한다는 것은 원활하게 내용 전달이 잘 되지 않는 점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국어로 모르는 뜻을 전달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료들을 끌어가는 숨어 있는 조력자들을 발견할 때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우리 교실에서 가르치는 한국어 능력시험(TOPIK)의 교재 구성은 단어, 문법, 기출문제로 되어 있다. 가나다순으로 단어나 문법이 구성되어 있어 쉬운 것을 먼저 가르칠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의 교감 선생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차근차근해 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그런 주문을 받지 않았다면, 일주일마다 새로운 사람이 계속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리고 분기별로 인원이 구성되어 있다면, 나는 그들의 상황에 맞게 교재 구성을 다시 했을 것이다. 무료 봉사활동이기에 그 수준에서의 선을 더 이상 넘고 있지 않는 것도 나답지는 않아 보인다.

     

  너무 많은 문법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문제집의 요약은 그들의 눈을 흐릿하게 할 수밖에 없다. 진부하고 어려운 설명을 읽고 있을 때마다 내가 다 진땀이 날 지경이다. 내가 목표로 하는 수업의 방향은 그래서 한 시간 내에 두 개 이상의 문법을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최대한 그날의 문법에 바탕을 두고 많은 문장들을 보드에 써간다. 한마디로 문장 안에서 의미를 찾게 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필기를 하게 하고 문법의 틀에 단어의 변화를, 문장의 변화를 살피라 요구한다. 반에서 한두 명을 제외하곤 시험문제를 풀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올라와 있지도 않은 학습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기초적인 문법을 설명하며 문장을 알게 하는 것이 먼지만, 토픽의 기본 설명은 학습자 입장에선  어렵기가 그지없는 수업 내용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시험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의 모습다.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인 황안 씨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얌전한 목소리에 항상 엷은 미소를 띤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수업받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고 싶다며 수업 중 사진을 요구한 적도 있었다. 한국어가 조금 능숙한 베트남 학습자 곁에 앉아 수업 내용을 이해 못했을 때 베트남어로 도움을 받고 있는 그녀였다. 한국어 외 다른 강의 경력이 오래된 나로서는 수업내용을 이해를 했는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얼굴 표정만 봐도 대충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황안 씨는 반응 자체가 너무 조용해서 내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정도다. 옆 자리에 앉은 베트남의 다른 학습자의 도움을 받는 것을 곁눈질로 봐서는 역시 기초적인 부분에서 많이 부족함이 보이기도 한다. 따라오는 것도 버거워하는 것 같았지만, 세 달 전에 출석을 한 이래 한 번도 결석 없이 자리를 지키는 모범생 중에 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번 주, 수업이 시작되고 인사를 나누면서 보니 그녀 옆에 새로운 학습자가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지인을 데리고 왔나?’라고 생각이 들쯤, 황안 씨는 입꼬리를 올려 눈웃음을 지으며 “우리 엄마예요.”라고 말을 잇는다. “엄마라고요. 시어머니 아니시죠? 엄마? 베트남 어머니?”라고 놀란 눈을 하며 다시 묻자 “네, 베트남의 엄마예요.”라고 한다. 그렇다. 그녀는 베트남에서 딸 집에 방문한 어머니를 모시고 수업에 출석했다. 자신이 수업에 나가면 집에서 엄마 혼자 무료해질까 봐 함께 한국어교실 여행을 시작한 듯했다. 한국어 한마디 할 줄 모른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옆에 앉아 있는 황안 씨가 너무나 예쁘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수업 하루 빠져도 별 탈 없는데. 나 같으면 엄마 모시고 집에서 이불속에서 뒹굴었을 것인데. 나의 수업을 들으며, 바투 자리를 하며 앉은 그 모습에 내 마음은 두 시간 내내 환하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을 때, 대상은 다르지만 나는 늘 어린 아들 녀석과 함께 공부를 했다. 인터넷 강의는 물론이요, 집에서 시험을 볼 때도 피할 수 없는 육아였다. 특히 오프 강의가 있을 때는 많은 교들이 아이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을 너그럽게 용인해 주었다. 경희사이버대 한국어문화학과의 김지형 교수는 회장 역할을 수행하며 학교에 데리고 오는 아이에게 용돈까지 쥐어주며 엄마와 함께 할 수 희망을 주기도 했다. 대학원 강의에서도 아이를 데리고 그의 강의를 들으러 가야 했던 엄마의 불안증을 아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덜어주었다. 그저 바라봐도 행복한 교실 한쪽의 모녀의 그 모습처럼 나를 바라봤던 교수들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졸업을 앞두고 실습평가를 받을 때, 아이가 뒹굴며 냈던 책상 소리에 민감해 나를 째려봤던 몇몇 교수들을 제외하면 썩 괜찮았던 육아와 학교생활을 경험한 셈이다. 그리고 여전히 아들은 내가 한국어 강의를 하는 교실 옆 테이블에 앉아 엄마가 흘려보내는 목소리를 매주 듣고 있다. 무조건 놀기 바빠 책상다리 옆을 기었던 아이는 이제 책을 읽거나 과제하기에 틈을 내지 않는다.

     

  나도 아들의 강의실에 언젠가 초대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이 재미있는 저녁이 이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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