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여행 이야기_외갓집 여행에서 만나는 것들
아들의 신발은 유독 잘 바뀐다. 평상시 운동화는 물론이요, 교실에서 신는 실내화도 누구보다 먼저 더러워지고, 잘 찢어진다. 발의 크기를 무시할 수도 없다. 그래서 더 자주 바뀐다.
11월에 들어서며 아들의 커진 발에 맞춘 새로운 운동화와 실내화를 장만했다. 이제 또 몇 달간 활기찬 움직임을 따라 질주를 시작할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는 아이는 헬멧에, 신발주머니에, 가방에, 방과 후라도 있는 날이면 악기 가방까지 챙겨야 한다. 분명 내가 다녔던 학교 시절보다 드는 짐이 많아지기는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은 아직까지도 가끔 신발주머니를 잊고 등교를 할 때가 있다. 초등학교를 갓 입학했을 때부터 아침에 주로 일어났던 일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신는 신발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아이의 초등학교에 설치된 콜렉트콜이 아침부터 나를 또 부른다. 챙긴다고 챙겼는데 아이는 또 무엇을 잊고 등교를 했을까.
“엄마, 실내화 가방 안에 실내화가 없어요.”
실내화 가방은 손에 들었는데 실내화가 없다?라는 전화는 지금까지 처음 받아본다. 아차, 작아진 실내화를 빼놓고 새 털실내화를 넣어준다는 게 글쎄 가방만 덩그러니 아침을 맞게 했나 보다. 설핏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겨울용 털실내화를 준비하기 위해 아이의 부탁을 듣고 있었던 것이 전날이었다. 평소 신는 신발보다 10센티가 커야 한다고 아이가 주문을 넣는 통에 문구점에 가서 얼마나 고심을 했는지 모른다.
“엄마, 털실내화는 제가 신는 신발보다 10센티 큰 걸로 사야 해요. 작아진 그 털신발이 제가 210 신을 때 샀던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작잖아요. 지금 230 신으니까 240을 사야 해요. 아셨죠. 네.”
그래? 알았어. 대답을 하고 신발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240 사이즈의 털실내화는 아들이 신기에 커도 너무 커 보였다. 목하 신고 있는 신발도 너무 커서 민망했는데, 털실내화라지만 이렇게 신발이 커도 되나 싶었다. 신발 사이즈와 같은 사이즈로도 충분히 신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나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역시 엄마라는 사람의 감은 탁월했다. 문제는 신발 안에 230과 240 사이즈의 털실내화가 한 짝씩 잘못 들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신발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만 골똘한 나머지 전에 신던 신발을 다시 넣어 놓는 것을 나는 잊고 말았다. 망연스러웠지만 어이없던 웃음이 나를 깨웠다. 앞으로 발이 커가는 만큼 자신의 신발도 잘 챙기는 성장을 기대해도 되려나.
아이의 발은 왜소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쑥쑥 자라고 있다. 발이 사이즈에서 반 친구들을 이겼다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를 두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나의 발을 꼭 닮아낸 것이 아들이라는 성별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네 라며 숨을 골랐던 적이 있었다. 아이의 발은 내가 아버지의 발을 그대로 그려냈듯이 나의 큰 발을 오롯이 닮아냈다. 아니 아이 외할아버지의 발에 근접한 골격을 보고 말았다. 유전자의 힘은 3대에 걸쳐 아이에게 나타나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을 더듬었다. 그러나 내보이지 않았던 나의 큰 발이 아이의 발에서 빛을 발하게 될 줄은 몰랐다.
형제들이 나눠가진 부모의 유전자 중, 아버지의 큰 발을 친절하게 받아들인 것은 2남 3녀 중에 네 번째였던 나였다. 아버지의 발 역시 그 옛날부터 단골 신발 집에서도 가장 큰 신발을 찾아야만 겨우 맞는 큰 발로 유명했다. 큰 발 때문에 신발이 일찍 헤지는 것은 물론이요, 예쁜 신발을 먼저 신을 수 있었던 기억은 적어도 내겐 없다. 그래서인지 쇼핑을 하다가도 편안하게 보이는 큰 신발을 보면 아버지의 발이 생각난다. 엄마의 신발을 사서 선물로 안겨준 적은 기억 속에 드물지만, 아버지의 신발을 사는 것은 내 몫이 되었다.
발이 예쁜 남편은 ‘무식하게 발이 크다.’라는 말로 나를 기죽이는 일은 없다. 다만, ‘자기 발, 결코 작지 않아.’라고 나와 아이를 배려하는 언변력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곤 한다. 장인과 연결되는 유전자의 연결고리의 민감함에 대한 예우를 잘 지키고 있지 싶다. 외할아버지의 발과 맞대며 크기를 자랑하는 아들의 발 덕분으로 외갓집 여행은 그저 즐겁다. 발끼리의 대화로 만면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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