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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Nov 07. 2016

#21서릿가을이 앉은 무

나미래의 마당 이야기_키우며 바라보는 기쁨, 가을 야채 이야기 

      

  겨울 손님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무서리가 내린 며칠 뒤 된서리를 맞았지만, 서릿가을이 다시 돌아온 정오의 햇빛은 참 따사롭다. 오후가 되어서야 느리면서 설핏하게 볕을 쬐는 뒤뜰은 이른 봄부터 나의 미니 텃밭이 되었다. 여름을 보내고 9월 중순이 다 되어서야 뒷마당에 김장 무와 배추 모종을 심었다. 자리가 없어 심지 못한 몇 개의 가을무 모종은 버리지 못하고 앞뜰의 잔디밭 사이에 이랑을 만들어 작게 자리를 마련해줬다. 김장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무럭무럭 자라나라는 거창한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채소들이 더디게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텃밭에 초록이 더해지고 있는 자연 풍경을 감상하기에 바빴다.



 

  작물이 되어가기 위해선 많은 손길이 간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모든 것들을 생략했다. 그저 햇빛과 물과 공기를 가지고서 척박하고 비척한 땅에서도 살아남아 가기를 바랐다. 이른 아침부터 따스한 기운을 받는 앞뜰의 무는 뒤뜰 텃밭에 비해 성장이 조금 빠르긴 했다. 무 잎이 풍성해질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 번은 나물로, 한 번은 무김치를 만들어 먹기까지 했다. 이미 김장용으로 커지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 차라리 싱싱함을 유지할 때 나의 욕심을 채워보자 했다. 이만하면 가을무를 심어 톡톡히 보은을 받은 셈이다. 잎을 너무나도 무참히 뜯어버린 관심에 무가 더 이상 크지 않았던 것일까? 엽록소를 받을 수 있는 잎의 영양 창고가 없어진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은 무를 캘 무렵에 더듬어진 그간의 생각이었다.

     

  김장철이 다가와서 더욱 느끼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처럼 무 음식을 즐겨먹는 나라도 또한 없어 보인다. 서양에서는 가난한 식탁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별 볼일 없는 야채가 바로 ‘무’다고 한다.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4월이면 식탁에 오르는 지긋지긋한 무 요리여.’라고 했다. 이처럼 무에 대한 울울한 문장에서처럼 영국에서는 안주가 형편없을 때 ‘무와 소금’이라는 말로 가난을 표현하기도 한단다. 그런데 이런 표현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열무, 쪽무, 양다리 무, 뽕밭 무, 조선무, 단무, 가래 무, 미끈무, 총각무 등 그 이름도 참 다양하다. 무의 김치 쓰임에 있어서도 총각김치, 깍두기, 열무김치, 동치미, 생채, 장아찌, 단무지 그 종류를 보더라도 무는 정녕 한국인의 음식다워 보인다.


  

  10월 끝자락에 서리를 맞은 텃밭 야채들 속에 무도 이제 자연으로 제 몸을 놓아주어야 하는 것을 직감하는 것 같았다. 된서리를 맞기 전에 몇 개 되지도 않는 무를 뽑아내고 싶은 마음이 일었던 것은 아직 서름한 관계에 있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관심(?) 덕분이었다.   

  지긋하게 나이가 드신 이웃집 아주머니는 텃밭을 프로처럼 가꾸신다. 단지 옆의 야산에 봄부터 텃밭을 일구신 부지런한 한국의 어머니 상이다. 그 아주머니의 텃밭에는 야채들이 제 빛깔을 내며 땅으로 발을 넓혀 나가는 것 같았다. 그 옆에 비슷한 시기에 텃밭을 가꾼 내가 그 땅을 버려두고 있는 것에 비하면 부지런함의 성역은 정말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단지 울타리를 넘어 풀숲을 헤치고 다니는 것이 귀찮아진 뒤에는 좁은 마당에 몇 개의 야채를 심어내는 수순에서 머물렀다.

  우리 집 앞마당을 지나칠 때마다 엉성하게 커가는 무 밭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나 보다. 그날은 이랑 위로 올라온 무가 너무 제 몸통을 드러내고 있어 흙으로 덮어주고 있었던 참이었다. 호미질도 아니고 발로 흙을 모아 무 사이사이에 이불처럼 건조한 흙을 덮어주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시며 한마디 거드신다.

     

“누가 가져갈까 봐 덮는 거예요?”

“아니에요. 무 알맹이가 너무 밖으로 나와서 더 잘 크라 덮는 중이에요.

“안 그래도 돼요. 추워지기 전에 뽑기만 하면 되겠네.

“아, 네. 언제 뽑으면 되나요?”

“입동 전후에서 서리 내리기 전에 뽑아 둬요.”

     

  보름 정도가 지났지 싶다. 다시 한번 낮은 담에 고개를 올려 마당 두 이랑에 심어진 어설픈 무를 보는 듯했다. 담을 넘긴 아주머니의 눈빛은 우리 집 무 밭의 찌그러진 양상에 입이 간지러우신 모양이었다.

     

“얼른 뽑아야겠네. ”

“아~네.”

     

  나는 대답 이외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무슨 참견이실까?’라는 생각이 나를 먼저 지배했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의도가 궁금해졌다. 말하고 싶어 하는 아줌마들의 시선에 어깃장을 놓고 꼬아보려던 내 입도 내처 참아냈다. 아닌 게 아니라 친정 엄마였다면, ‘예쁘잖아. 엄마. 몇 개 되지도 않는데 땅에 두고 보려고 그러지. 얼면 또 어때! 반찬이나 되겠냐고.’ 더 많은 나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 추워지기 전에 나도 무언가를 걷어 들이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몇 개 없는 우리 집 무를 보면서 애타 하는 이웃 아주머니의 말을 듣기로 했다. 담을 넘긴 아주머니의 눈빛이 걸을 때라도 짐짐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겠고, 또한 아이 주먹 크기만 한 녀석들이 내 식탁의 끼니가 되기 전에 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을을 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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