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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Nov 07. 2016

#22남편 이야기

나미래의 추억 이야기_출장남과 감성녀가 만나 10년 차 부부가 되다

     

  남편은 출장맨이다. 일 년 12달에서 6개월 정도는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게 다반사인 그는 공장자동화를 하는 프로와 장인이 섞인 전기 엔지니어다. 아줌마들 사이에선 주말부부와 출장을 많이 가는 남편을 둔 아내를 가리켜 ‘전생에 나라를 구한 팔자’라는 말을 곧잘 수다로 펼친다.

     

  고생이면 고생이지!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팔자였나?라고 고개를 젓다보면 꼭 아닌 것만은 아닌 것 같은 기운이 든다. 그렇지만 전생에 나라 아니라 동네 하나 구하지 못한 팔자였던 것만 같았던 시기는 그 상상을 초월했던 결혼 초기였다. 남편의 일을 두고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속속들이 알지도 못했다. ‘공장자동화’라는 말 자체도 어려웠다. 저런 직업이 있나 했다. ‘전기가 전공이니 자동차를 만드는 큰 대형 회사에 하청을 받고 전기 관련 일을 하나 보다’가 결혼 전에 남편을 만나면서 그의 일로 생각한 부분이었다. 나는 지금도 남편의 일을 속속들이 잘 모른다. 출장 가는 일이 ‘남편의 일’이겠거니 생각했던 게 나를 더 쉽게 이해시켰다.

     

  밤마다 몇 번씩 깨는 아이의 육아가 지쳐갈 때 투정을 부리려 들면, 남편은 출장에 나가 있었다. 아이와 나는 투쟁을 하며 함께 성장했다. 소변 기저귀는 몇 번 손을 대는 것 같았지만, 똥 기저귀는 도저히 못 갈겠다는 게 남편의 지론이었다. 이 남자에게 똥 기저귀 한 번 갈아보게 하겠다! 이를 갈고 준비를 하면 또 출장으로 집을 비었다. 아이가 무섭다며 나를 혼자 어딘가에 보내는 일 조차도 불안해했다. 때문에 출장으로 남편이 집을 비우면 무연히 몇 시간씩 앉아 있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아이와 함께 나는 외롭지 않은 놀이를 만들어야 했다.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는 외갓집이 외박 장소였다. 점점 어린아이가 있는 지인과의 약속을 충실히 지켜나가는 자유로운 아줌마가 되어 갔다.

  

  한 달, 두 달, 세 달의 패턴으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자기 위주로 사는 이기주의 근성을 몸에 차곡히 붙여 왔다. 원래 지니고 있는 그 근성을 버리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일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나보다 더 자유롭게 살다 아내의 잔소리가 늘어나는 것을 이해 못하는 듯했다.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다 그래.’라는 것이 그들이,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항변을 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다리 뻗고 텔레비전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습성은 출장지의 숙소에서의 생활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아이가 자라고 있어도 텔레비전을 멀리해 주는 배려는 하나도 챙겨주지 않았다. ‘집에서도 내 맘대로 못하니?’라는 식의 말. 출장이 많은 남자들의, 아니 우리 집 남자의 함정인 것이다. 주변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라 생각했다. 아이에게, 그리고 앞으로 남겨줄 좋은 DNA를 준비해 나가자라는 의미로 수없이 담배를 끊기를 권유해 보았다. ‘우리 같은 직업은 스트레스 많이 받고 머리를 쓰는 지라 힘들다.’라는 말은 당당하게 뱉어낸다. ‘그래 빨리 많이 마시고 빨리 가라!’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쳐 있었지만, 끝내 남편에겐 상처 주는 말은 뱉기가 무서웠다. 어느 지인이 그랬다. 끊으라 잔소리 말고 생명보험이나 많이 들어놔. 괜히 서글퍼지는 누군가의 속내이겠다.

     

  출장으로 집을 나간 남편의 본가에서는 오롯이 아들의 위대함을 며느리에게 설파하고 싶으신 듯했다. 남편이 출장을 가 있는 동안 며느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시어머니. 우리 집 주변을 하릴없이 돌고 계신다. 아, 손주가 보고 싶어도 오시라 않는 며느리가 야속해서 그냥 집 주변을 돌고 계셨겠지. 나의 직감이었다. 큰 시누는 그런다. ‘남편 출장이 많아서 어째! 그래도 돈 많이 벌어주니까 괜찮잖아!’ 짧은 앞부분의 한마디만 해도 좋았을 것을 꼭 길게 말하는 형님의 말을 중간에서 무지를 수 없는 나는 나약하기만 했다. 남편의 부재가 가장 민감할 때는 명절에 즈음하여 출장을 나갈 때이다. 아들이 출장 나가도 며느리는 시댁에 오기를 바라는 시어머니, 동생이 없어도 제수씨는 당연히 음식이나 제를 모시러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주버님, 그리고 아무 말은 없지만, 있는 그 자체가 부담스러운 시누 형님, 심하게 표현은 안 하지만 그래도 본인이 없을 때, 아이를 데리고 본가로 가 줬으면 하는 남편의 숨은 마음은 출장을 악마로 종종 만들기도 한다.

     

  남편 때문에 친구와 마음이 멀어진 일도 있다. 출장 많은 직업을 이야기하던 도중, ‘출장 많이 다니는 남자들 뻔하다.’ 다며 술기운에 입을 다물지 않고 깐죽거리는 친구 남편에게 ‘적당히 하시라.’ 쏟아 붙였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것 같다. 속 끓이며 원치 않는 만남을 이어가고 싶은 에너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남편이 출장이 길어, 육아가 힘들었다던가. 남편이 없어 외롭다던 가를 심하게 징징거리는 일은 없었는데, 어쭙잖게 내게 위로를 한 친구를 보면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망설일 때도 많다. ‘아직 남편은 출장이니? 출장이 너무 길다. 너무 길어’라고 내게 건네는 그녀의 말들은 나를 위한 위로의 말이었겠지. 또한 현실에 맞는 가장 이상적인 인사말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게 위로가 될지, 속을 뒤집어 놓는 관심이 될지에 대해 어떠한 상황도 고려하지 않다는 예시를 보여주는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상대방에 어떠한 배려도 없이 내뱉는 말은 아픈 가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적어도 그녀만 모르는 것 같다.

     

  남편의 출장은 가끔 많은 시간 내게 활력을 주기도 한다. 붙어 있으며 내는 잔소리가 줄기도 하니 나름 서로에게 넘쳐흐르는 양기를 끊어내기도 한다. 한 번씩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소소한 질문들을 주고받는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에 가까워 그것마저 고마울 때가 많다.  그러니 어려운 수학 과제가 주어졌을 때 출장 간 아빠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며 야릇한 눈빛을 엄마에게 보낸다. 우리는 또한 각자에게 맡겨진 책무에 열중이기도 한다. 출장이 싫다지만, ‘일에 빠져 있는 그 시간이 살아있는 것 같다,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수줍은 술자리에서의 고백은 아름답기까지 한다. 내게 평소 표현 못한 불편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지 싶다. 이런 아내 만나서 가능한 거야.라고 언어 외조를 붙인다. 가르치려 드는 생활규율을 지켜주지 않는 남편의 거센 고집은 일에서만 발현되면 좋을 텐데, 우리가 맞지 않은 부분은 떨어져 있는 동안 뇌를 유순하게 돌려놓는 틈을 준다.

     

  내일은 두 달여의 긴 여정을 마치고 중국 출장에서 남편이 돌아온다. 완전한 귀국을 앞두고 많은 술자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음주가무 속에서 연락을 취해주지 않는 남편은 내 남편이다. 지인이 그런다.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밤새 미쳤을 것'이라고.


그러나 내가 미치지 않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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