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여행 에세이, 남편의 형제자매 여행이 내게 불편한 이유
그들만의 여행에 나도 할 말은 많다!
가족 구성 수로만 따지자면 몇 명 되지도 않는 우리 가족 내에서조차 남편을 설득해 1박 여행을 떠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적어도 12년 차인 아내 입장). 남편의 귀를 기울이게 하는(했던) 시댁 작은 형님의 여행 계획과 언변력이 부럽(부러웠)다고 해야 하나?
한 달여의 출장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 그는 여독이 풀릴 틈새도 없이 자신의 형제자매들과 부산으로 1박 2일의 여행을 떠났다. 이미 남편이 국외 출장을 떠나기 전, 시가에 모인 제사에서 남편의 누나(작은 형님)에게 전해 들었던 여행 계획을 편치 않은 시선으로 지켜봤던 것도 사실이었다.
몇 달 전, 시댁 남편의 형제자매간의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무산된 적이 있었다. 형제자매 중 가장 연장자인 형님(큰 시누이)이 올해 회갑을 맞이하며 계획한 여행이었다. 오랜 시간 그녀가 손아래 동생들을 위해 희생했던 점들을 위로하고 축하하는 자리로 형님(작은 시누이)이 계획을 주도하는 듯했다. 물론 충분히 납득이 가고도 남은 사연이었다. 여행을 계획한 작은 형님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 "가족 여행에 함께 참가하는 것은 저도 찬성하지만, 남편이 출장으로 인해 자리를 비우거나 할 때는 아이를 데리고 혼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고 나의 의사를 분명히 전하기도 했다. 이런 당돌함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결혼 생활 10년이 넘다 보면 조금씩 할 말은 하게 된다.
결국 남편의 장기 출장으로 인해 시댁 형님들이 계획한 날짜와 맞춰지지 않자 여행 자체가 무산되고 말았다. 그때도 내 머릿속엔 많은 추억과 시댁 관계자들의 풍경이 오갔다. ‘그들의 동생이 없다고 여행을 캔슬했다? 우리 가족을 위한 배려였던가?라고도 생각했다. 우리 가족(나와 아들)도 남편과 아빠와 여행을 함께 맞추지 못해 자주 모자 둘이 여행을 떠나가도 하는데 시댁의 관계자들이 남편을 챙기려는 마음을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굳이'취소할 것까지 있었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잊고 지냈던 일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던 것은 남편이 출장을 떠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이제는 형제자매 4명만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단다. 그 이유는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된다. 두 형님들은 그전부터 연락을 취하며 여행의 구체적인 틀을 짰을 것이다. 남편은 결과만을 통보받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남편이 나에게 여행의 문의가 된 시작점부터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도 서운했다. 그랬기에 시댁 관계자들이 다시 불편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얼굴에서는 웃고 있었지만 속내는 부글부글. 뭐 이런 마음까지 들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남편의 미숙한 대처가 나를 늘 서운케 만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시댁 제사에서 작은 형님에게 여행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재차 물으니 남편은 ‘제사 끝나고 말을 하려고 했단다.’ 남편은 분명 남의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이후 세 번 정도 남편을 볶았다. 사실 남편에게는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불만이 많다. 가족 여행을 맞추기 위해 수십 번을 제안했지만 몇 명 되지도 않는 가족 여행이 수포로 돌아가는 게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예초부터 '계획을 짤 수 없었다.'가 더 정확한 말일 수도 있겠다. 기억을 더듬어 볼수록 화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싶을 때마다 남편은 앵무새 같은 멘트가 늘 입 앞에서 청산유수가 된다. ‘바쁜 걸 어쩌느냐?’, ‘날짜가 안 맞다.’, ‘막힐 때 운전하는 거 너무 싫다.’, ‘좀 쉬자.’등등. 그렇기에 남편을 배려한다는 것으로 남편이 있을 때는 집에서 편안하게 쉬게 해두고, 출장을 떠나 있을 때 아이와 여행을 계획하는 일이 나에겐 자연스러워졌던 것이다.
“출장 다녀오면 내 일정에 맞춰준다잖아. 내가 그럼 뭐라고 해? 안 간다고 해? 싫다고 해? 나도 가기 싫어!”라는 말은 내가 불만을 토해내자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듯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낸 남편의 모습이었다.
지금까지의 남편은 출장 전부터, 출장을 다녀와서도 내가 여행 계획을 세우려 하면 일이 바쁘다고만 했던 남자다. 자신의 형제자매가 제안을 하니 ‘그럼 내가(남편이) 부산까진 운전해 줄게.’라고 했으면서도 ‘가기 싫었다고! 안 간다고 어떻게 말해?’라고 큰소리로 대꾸하는 남자. 지금까지 우리에겐 수십 번 싫다고도 분명하게 말을 잘 했다. 그렇게 가지 않겠다고, 안 된다고도 또렷하게 어깃장을 잘 놓기도 했다. 그런데 형제들 이야기에 변명으로 일관하는 이 남자에게 많이 서운함이 밀려오는 대목이다.
어느 날, 흥분을 하고 싸우면서 할 말을 미처 하지 못한 나는 이 말만큼은 남편에게 하고 싶어 들고 있었던 핸드폰에 메모를 해 두었다. ‘싫어도 하고 살아야 하는 게 어른이고 부모다.’, ‘형제들한테 싫은 것도 싫다고 바로 말 안 하고 안 했던 것처럼 자신의 가족에게도 그렇게 하라.’ 이 메모의 문장들은 술기운을 살짝 빌어 남편에게도 사뭇 진지하게 읽어주었다. 일그러지고 썩어가려고 했던 그때의 남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불편한 말 때문이었을까? 출장을 다녀와선 다다음날 여행을 간다고(나는 출장 후라고만 알고 있었지 언제 가는 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를 의식하며 눈치를 보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다음 달 8월에 날짜를 콕 짚어가며 이날부터 이날까지 가고 싶은데 있으면 날짜를 잡으라는 말을 남겨준다. 이제 서운한 마음이 조금 녹아지려고도 하는 것 같았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 같다더니 내가 영락없이 그 짝이다.
어디 이뿐이었던가. 열대야에 서로 숨을 헐떡거리는 중, 바닷가 근처에 들려 회 한 접시 먹고 오자는 제안을 아무 불만 없이 받아준다. 인터넷을 검색하지 않고 무작정 떠났던 제부도. 물길이 열리는 오후 7시 30분까지 도로에서 불만을 토하지도 않고(길 막히는 것과 식당 앞에서 기다리지 못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 기다려준 남편에게 잠시나마 고마워하면서.
아들이 귓속말로 다가온다.
“엄마, 오늘 아빠가 좀 이상해요. 아빠 내일 여행 간다고 미안해서 이러시는가 봐요.”
“그래! 좀 그렇지?”
“제가 옆에서 귀찮게 쫑알거리는 데도 저리 가라고 안 하고 다 받아주던 걸요. 멀리 나와서 회도 사 주시고.”
“엄마가 좀 많이 화를 냈더니 미안했나 보다.”
“오늘 엄청 부드러운데요. 아까 바닷가에서 불꽃놀이 할 때도 라이터 없다고 옆에 아저씨께 빌리기도 하고요. 빌리는 것도 처음 봤어요.”
아들은 오늘을 행복하게 해 준 아빠의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음. 나도 오늘은 그렇다.
시인의 정원,
나미래의 소소한 여행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