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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Jul 23. 2018

아들의 스마트폰이 고장 났다

나미래의 詩詩한 에세이, #아들의 스마트폰


  우리 집 서랍장 안에는 깡통 스마트 몇 개가 누워있다. 분실 후 다시 찾았던 폰이거나 낡거나 해손 되어 쓸 수 없는 폰의 사연은 다양하다. 분실 폰으로 등록된 나의 최근 전 손전화언제부턴가 아들의 와이파이 스마트폰이 되어주었다(아들은 아직 정식 핸드폰을 들고 있지 않다.).


  집에서만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을 아들은 사뭇 진지하게 애지중지해하고 있는 듯했다. 가끔 허락을 맡아 게임을 하는 용도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관심도가 높은 비행기 관련 영상이나 정보를 이곳에서 얻기 때문이다.

 


반려견이 화면을 물어 뜯어 아들의 스마트폰은  일부분이 보이지 않고 작동이 더디게 되었다. 2018.7.23.


  올해 초부터 아들은 스마트폰으로 큐브 및 비행기 관련 영상물을 보거나 항공 공부를 하면서 놀 수 있는 저녁 시간을 확보하고 싶어 했다. 매일 해야 하는 학습과 격일 또는 며칠 간격을 두고 이루어지는 선택 학습 사이에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것에도 분명 고민하는 듯했다.


  아들은 학습 시간을 이렇게 쓰고 싶어 했다. 한국사와 한자, 영어의 선택 학습은 요일을 정해 두고 초저녁에 조금씩 꾸준히 공부를 하는 것. 그 외 시간에는 독서와 자유 시간을 갖고 항공 서적 탐닉과 항공 영어 공부(Air Radio)를 하는 것이다. 매일의 학습은(아들의 기준에서 제일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아침 시간에 수학과 과학 문제를 풀며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때문에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이용해 항공 관련 영상 구독(때로는 게임)과 항공 레이더 관람 및 항공 라디오를 듣는다는 계획을 거창하게 나열하고 있었다.

 


아들의 스마트폰의 앱은 종류별로 폴더 분류를 해두었다. 비행기 폴더에는 최근 이용하고 있는 비행기 앱들이 가득차 있다. 2018.7.23.


`  

  5개월 정도 이렇게 아침과 저녁 시간을 아들 자신이 말한 대로 습관을 지켜나가고 있다(건강 건짐을 받았던 병원의 주치의에게 30분만 더 늦게 일어나라는 조언을 듣기 전까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6시 정도에 눈을 뜨려 노력했다.). 아들은 점점 비행기의 매력 속으로 지식 확장을 하고 있으며, 특별한 비행 운행(예를 들면, 북미회담이 있었던 6월 12일 전후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타는 비행의 경로를 계속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었다.)과 집 위로 나는 비행기를 추적하며 레이더를 펼치고 망부석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주말, 기록 정보 박스나 다름없는 아들의 깡통 스마트폰이 고장이 났다. 배가 고팠던 모양인지 반려견 산동이가 스마트폰 모서리를 아작아작 씹어 먹은 덕분이었다. 일요일마다 한국어 강의 봉사활동을 가는 엄마를 향해 아들은 황망했던 문자를 보냈던 모양인데 나는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어제의 사건을 읽기 시작했다.(아들이 들고 있는 깡통 스마트폰으로는 나와 카카오톡 문자를 주고받을 수 없지만, 노트북을 켜면 생성되는 자동 카카오톡 메시지로 급한 연락을 취해야 할 때 쓰는 둘만의 소통 방식이다.)



아들이 내게 보낸 채팅 메시지. 폰 안에 있는 이모티콘이 다 동원되었다. 2018.7.23.



  스마트폰이 고장 난 것을 알고 난 후, 얼마나 절박한 마음이었을까는 아들이 나에게 보냈던 메시지의 길이와 이모티콘의 각종 상태를 보면서 금방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문자들을 모든 사건이 종용된 후 뒤늦게 보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하루가 훨씬 지나서! ‘나와의 채팅’이라는 형태로 내가 나에게 글을 보내며 주로 메모를 할 경우 사용하는 곳인데 오늘 아침 시를 써두고 나의 채팅창으로 옮겨놓으려 하던 차, 아들이 보낸 문자를 보고 박장대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이런 사건의 속사정도 모른 체 반려견 산동이와 아들이 냉랭했음을 집으로 돌아와 알게 되었다. 함께 있었던 조카의 말을 빌리자면 아들이 반려견 산동이에게 야단을 꽤 많이 쳤던 모양이다. 엉덩이까지 두 대 때리면서 말이다. 반려견에겐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야단을 치고 닭똥 같은 눈물까지 흘렸다고도 한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아들의 표정이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이었다.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내게 달려와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기 바쁜 아들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 야단을 맞고 엉덩이를 맞은 반려견 산동이는 그 상황이 얼마나 억울했을까도 싶다.


  반려견을 향해 찬바람이 쌩하게 불었던 아들의 표정은 몇 시간 후 어느새 온화해지고 있었다. 입술이 통통 부은 아들 곁에서 남편이 부산스럽다. 서랍장에서 놀고 있는 다른 스마트폰을 꺼내 자료들을 그대로 옮겨주는 건 아빠였다.

 


우리 산동이도 이 여름 나기가 힘들다. 2018.7.23.



시인의 정원,

나미래의 詩詩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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