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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Nov 13. 2018

21. 이렇게 성장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형이 있어요

나미래의 詩詩한 에세이, 학교엔 아들이 좋아하는 형이 있다!


  아들의 학교는 화성시 동탄의 한 초등학교. 그 학교엔 아들이 좋아하는 6학년 형이 한 명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방과후 한자반에서 만났다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된 사이인 것 같았다. 집요하게 묻지 않아서인지 얼마만큼 가까워졌는지는 잘 몰랐다.


  “엄마, 그 형이 지금 6학년이니까, 그 형이 4학년 때 저와 만난 거예요. 제가 지금 그 형 학년이 된 거죠. 그 형, 지난 1학기 때 전교 학생회장도 해서 저하고 정말 많이 이야기했어요. 2학기 때는 오케스트라에서도 만나고 좋네요.”


  아들은 무언가 단계와 수를 정해놓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만난 시기와 시점을 자신과도 의미 깊게 부여한다. 생각해 보니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었던 것 같다. 아들은 그 형에 대해서 내게 자주 이야기를 하곤 했었는데 매번 그 형에 대해서 말을 할 때마다 새롭게 물어보는 엄마라고 했다.


 

모 기관에 보낸 아들의 '자기소개서' 일부



  얼마 전, 모 교육기관에 스스로 써야 했던 자기소개서에서도 아들이 좋아하는 그 형이 등장했다. 글자 수가 정해져 있어 짤막하게 들어간 문장이었지만, 마음만은 형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이었다. 형이라는 이름으로 동생에게 마음을 써주고 있는 것에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결과야 어떻든 그 과정에 있어서는 ‘오케스트라부’에 들어가게 했던 것이 엄마의 입장으로 강제적인 면이 없진 않았지만 ‘아는 형과 대화도 나누고 좋았습니다.’라는 대목에서 그 염려가 눈 녹듯 사르르 내려앉았다.


  며칠 전, 아들은 구깃구깃 사각형으로 접혀 있는 쪽지를 한 장 펼치고 있었다. 연애편지 같은 모습이었다. 연필로 적어진 4~5줄의 글을 읽고 내게 자랑을 늘어놓는다.   


형에게서 받은 수학 이야기 쪽지(좌), 식당에서 뒷면(우)에 문제를 풀어놓고 아들은 뿌듯해 했다.


[문제1] 개미가 상자의 한 꼭짓점에서 출발하여 상자의 모서리를 따라 꼭짓점에서 꼭짓점으로 임의 보행을 한다. 개미가 꼭짓점에 다다를 때마다 다음에 어떤 모서리를 따라 걸지 무작위로 결정하는데 막 지나온 모서리를 따라 되돌아 갈 수도 있다. 정확히 7번 이동하여 출발 지점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정반대편에 놓인 꼭지점에서 끝날 확률은 얼마인가?


[문제2]최지산 선생님은 자기 학생 6명 이름을 잊어버렸다. 그들에게 성적을 알려야 하는데 이를 무작위로 해야 할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정확히 다섯 명만 올바른 성적을 받을 확률은?]



  “아들, 그게 뭐야? 무슨 연애편지야?”

  “엄마, 엄마, 그 형 알죠? OO형이요.”

  “어어, 네가 자주 얘기하던 그 형?”

  “그 형이요. 제게 수학 문제를 냈어요. 웃기고 재밌어요.”

  “무슨 문젠데?”

  “얼마 전에 제가 수학 문제를 내서 형한테 전해준 적이 있는데, 오래되지 않아서 맞추는 거예요. 제가 생각지도 못한 ‘로그’를 사용해서 말이죠. ‘헉’ 했어요. 제 자존심을 납작하게 했다면서 너무 신나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게 문제를 낸 쪽지를 어제 오케스트라가 끝나고 건네는 거 있죠. 이거 풀어서 형의 코를 납작하게 해야겠어요. 자존심도 가져오고! 호호.”


  ‘내가 아는 동생 중에 네가 젤 머리가 독특한 것 같아!’라고 말을 해줬다며 아들 자신이 관심이 있어하는 영역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형이란다. 이런 이야기를 마음 편하게 주고 받을 수 있는 형이 좋다고 했다.


동영상1.
동영상2.식당에서 밥을 기다리며 그 시간 동안 연애편지 같은 수학 이야기를 풀다.


  아들이 너무도 즐거워해서 놀랐다. 내게도 그 문제를 보여줬지만, 수학 문제 풀기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나는 솔직히 문제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별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정성스럽게 문제를 생각하는 거다. 쪽지 뒷면에 메모를 하면서 얼른 형을 만나고 싶다고 한다.


  올해 졸업반인 그 형이 곧 이 학교를 떠난다는 게 조금 아쉽다. 이심전심으로 아들과 내가 같은 마음이 되었네.  그 형의 졸업식 날, 아들의 관심을 알아주고 아껴준 그 형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미래의 '시인과 정원'의 詩詩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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