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詩詩한 여행, 강원도 낙산사와 주문진을 향해 달리며!
동해의 푸른 바다가 우리를 불렀다. 낙산사의 해수관음상에 올라 초겨울에 나타나는 잔잔한 동해 바다를 얼른 안고 가라고 했다. 아들 친구네와 갑작스레 의기투합이 된 강원도 속초 여행은 낙산사 산길을 오르고픈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8월, 여름의 끝물 향기를 맡았던 때로부터 백여 일이 지났다. 백일 기념을 하려 했던 것도 아닌데. 상대편 지인 가족은 오륙 년만이라던가. 어쨌든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적당한 오르막은 아이들에게도, 배 나온 중년의 남성들에게도, 아줌마에게도, 즐겁기만 했다.
낙산사하면 신라 671년(문무왕 11)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의상대는 의상대사가 앉아서 수행을 하던 정자라던가. 관동팔경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은 금강산, 설악산과 함께 관동의 3대 명산에 해당되는 오봉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의상을 논할 땐 원효와 함께 한 일화가 유명하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다시 한번! 어느 날, 이 둘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도중 원효는 하룻밤을 묵은 곳에서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뒤 유학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 많은 책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의상은 그대로 유학을 떠나 중국에서 수학한 화엄사상을 전파하며 여러 절들을 지어낸다. 이곳 외 경북 영주 '부석사'가 의상이 지은 절로 유명하다. 원효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를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본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사전)에서 유시민 작가가 설명했던 말이 어떤 텍스트보다 깊고 쉽게 여운이 남아 있었다.
동해안의 잔잔한 바다도 흔치 않은 구경거리였다. 해안 절벽의 홍련암 가는 길과 의상대는 언제 봐도 빼어난 풍광에 넋을 잃곤 한다. 그런데다 쉽게 접근한 역사가 함께하다니. 하나 더, 나는 그곳에서 무엇보다 남편의 여유를 보아서 좋았다. 다른 가족들이 함께 하니 남편도 안온하게 여행의 주체와 참관자가 되어 주는 것 같았다. 급한 여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금까지의 나의 여행 시선을 맞춰주려 노력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짐짓 다른 가족을 위해 자신의 내면의 정체성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러 방법과 과정을 통해 가족과의 소통을 알아가는 것이니까. 알았을 테니까.
모든 것이 즉흥이었다. 총체적인 틀 하나만 두고 서로서로 즐거움이 따르는 과정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는 남편들의 희생이 도와주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남편에 치여 젊음의 느낌도 잊고, 잃고 싶지 않은 아내들의 발랄함의 시선도 함께.
주문진의 도깨비 촬영 장소가 그랬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젊은 커플들 속에 홀로 선 아줌마들의 고군분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이들은 그사이 찬 바닷물을 몸으로 받아버렸고, 남편들은 지루한 감상을 다른 수다로 풀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이 커가니 여행은 그렇게 잔잔한 파도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아들 친구 동생 녀석이 명언을 남긴다.
바닷물에 흠뻑 젖은 옷을 한숨을 쉬며 바라보는 어른들 앞에,
"내일이면 마르겠죠. 뭐."란다.
맞다. 여행은 이런 자세다. 예측되지 않는 일도 미리 계획되지 않는 상황도 받아야만 한다. 미처 옷이 준비가 안되었을 때 사서 가져올 수 있는 어른들의 행동력과 아이들은 덜덜 떨어보는 당황스러움도 추억이 될 것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위험 요소는 미리 차단하고 안전을 챙기는 게 우선이지만.
여행은 아이들처럼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변덕을 부리기 때문이다.
<겨울이 왔다, 나미래>
눈살 만들어 햇볕을 양껏 안았다
바다 너머 길을 타고 달려온 바람
겨울을 실었다 알리면서 미안허요라
푸른 하늘은 미세먼지를 잊게 했고
산 그림자 화폭에 놀란 잎새의 희망
사람들의 소원을 먹고 입고 느끼고
나무둥치 숯칠에도 올곧게 살아남아
보타낙가산 관음보살 다시 머물게요
명산의 등 타는 얄궂은 기침 소리도
바다의 수평선과 이곳에서 놀다 가리
겨울이 왔다
나미래의 詩詩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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