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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Nov 14. 2016

#23해바라기 샤워

나미래의 마당 이야기_해바라기씨를 남기고 가을이 익었다

     

  올봄, 친정 언니는 비닐봉지 한가득 해바라씨를 선물로 보내왔다.


  우리 집 뜰에도 노란 해바라기 그림을 올릴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이 들었다. 키를 올릴 굵은 해바라씨(키가 큰 종자)를 뿌린 것은 4월 중순에 들었을 무렵이었다. ‘너무 일찍 심으면 여름 내내 키만 키운다.’는 큰언니 말을 들었지만 날이 풀리고 상활한 기운을 맞보니 손이 간질거렸다. 간질인 손에 호미를 들고 앞뒤 마당을 분주히 움직였다.


  언니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던 것은 6월 게 무렵부터였다. 키만 커가는 줄기 때문이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왜소한 몸뚱이를 유지한 채 하릴없이 오도카니 흔들거리며 서 있는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작년에 친정 큰언니가 노지에서 가꾼 해바라기씨를 한가득 선물로 보내왔다. 이걸 다 뿌려야 하나 라고 생각했지만, 껍질을 까서 견과류로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설핏하게 햇볕이 드는 뒤뜰의 해바라기들이 빛의 양분이 하루 절반 이상을 받는 앞뜰에 비해 유난히 잎과 대를 불렸다. 그리고 키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채소를 심기 위해 뿌려놓은 거름의 양분을 해바라기가 다른 식물들에 앞서 뿌리 곁에 탑승시켰기 때문이다. 씨알은 굵직했다. 단단한 해바라기씨는 땅에 심는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뿌리 하나를 보고서도 얼마나 키를 키워낼 것인지 감히 짐작이 더해졌다. 해바라기씨는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땅속에서 발화가 되었고, 널찍한 떡잎이 발화가 된 이후에는 거침없이 몸을 불리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무더운 바람이 끈끈하게 불어오는 여름 한낮의 더위는 해바라기의 키만 제대로 키워주고 있었다. 또한 비구름이 몰려오지 않았던 올해의 건조한 여름 날씨 탓에 울타리 사이에 뿌리를 내린 많은 해바라기가 말라비틀어지기도 다. 살 길을 도모하는 작은 벌레들은 커다란 잎에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나는 그런 해바라기 아래서 여름과 초가을의 휴식을 보내기도 했다. 뒤뜰의 나무 탁자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을 때 해바라기가 바람에 흔들리면 작은 벌레들이 내 시야 앞으로 뚝뚝 떨어졌다.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면서도 그곳에 앉아 계속 커가는 해바라기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제 곧 꽃을 피우겠노라’는 그 감동의 소리를 들었는지 모른다. 꽃은 정확히 음력 8월 15일, 추석날 아침에 피었다. 샛노란 꽃잎을 하나 둘 펼칠 때 ‘그래도 날아드는 벌레에 굴하지 않으며, 무질 하지 않고 기다리길 잘했다.’의 감상이 가장 먼저였다. 반가움은 온통 해바라기 얼굴을 응시한 채 미소를 머금은 나는 늦은 가을을 맞고 있었다.


9월 15일(음력 8월 15일)에 피어낸 해바라기 꽃잎, 노란색이 정말 선명해서 눈이 부실 정도다.
왼쪽 해바라기를 더 잘보이게 하려 머리를 틀다 낫에 잘렸다.

     

  오랫동안 집을 비운 남편은 뒤뜰 정원 정리와 함께 해바라기를 걷어 들이는 작업에 열중이었다. 여름 내 자연이 주는 영양분이 키로만 갔던 터라 열대우림의 생장을 방불케 했던 해바라기. 이제는 굵직한 견과류의 씨앗을 남기고, 우리 집 가족들의 눈을 즐겨주고 세상을 떠났다. 커다란 머리에서 규칙을 가지고 씨앗을 탄생시킨 해바라기 집은 우리들의 눈요기가 되어 주었다.


  해바라기씨는 잘 알려진 만큼 사람들이 애용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가장 큰 효능으로는 혈관 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는데, 고지혈증이 있는 내게 어울리는 견과류이지 싶다. 그리고 엽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빈혈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물을 묻힌 수건에 해바라기씨를 넣어놓고 까면 금방 껍질이 벗겨진다는 노하우를 전해 들었다. 조금은 견과류로 만들어 몸에 좋은 기운을 안겨줘 볼까.

촘촘히 박힌 해바라기 씨앗. 세 덩어리가 가을의 선물로 남았다.
올해 추석부터 두 달 동안 마당의 키다리로 남아준 해바라기 샤워기에 행복한 눈요기를 했다.

     

  시원스러운 색감 연출로 늦가을이 오는 소리를 들었다. 둔중한 무게감으로 주변 야생화들에게 거칫거렸던 자리였지만, 해바라기 샤워로 전해졌던 따뜻한 자연의 맘을 알 것 같다.


올해 수확한 우리 집 해바라기씨, 든실하게 살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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