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을 맞은 아들은 ‘야호! 방학이다’를 화려하게 외치지 못했다. 몇 달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4주간 겨울 방학 영어캠프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엄마가 진행시켜 놓은 캠프에 감 놔라 배 놔라 딴지를 걸 수도 없는 상황을 미리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학교를 벗어난 건 큰 기쁨 아니었을까? '야호 방학이다!' 의 단어 속엔 이것저것 재지않은 방학을 시작하는 설렘 그 자체일 것이다. 일 년 또 다른 많은 성장이 있었지만 어른들이 막아버린 언어의 장벽이 여기저기에 도처해 있었지. 자유롭게 한국어와 남의 나라 말로 그 넋두리 다 풀다 오시길!
큐브를 몇 개 가방 안에 챙겨가는 아들. 힘들 땐 큐브를 하면서 마음을 푸시길!, 2019.1.6.
“엄마, 오늘이 마지막 밤이네요.”
“엄마, 비행기 타는 것만 아니면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엄마, 제 생일을 그곳에서 보내야 하다니. 갔다 오면 큐브 좀 사주세요. 좋은 큐브로.”
“엄마, 한번 열심히 해볼까요? 그런데 아침부터 단어테스트라니요??”
“엄마, 엄마도 필리핀에 같이 가면 좋겠어요.”
이 수많은 문장들은 캠프를 떠나기 전, 내게 뱉었던 녀석의 참된 마음의 표현이었다. “여러 복잡한 마음은 알겠지만 이왕 계획을 했으니 한 달 잘 보내고 왔으면 좋겠는데.”라고 어르고 달래기도 했다.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엄마의 케어가 없는 것에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아들은 박식한 항공 지식과 공항의 관심으로 공항 주변이면 늘 기쁨이 넘친다. 인천공항의 내부 구조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 혼자서도 비행기를 타고 나갈 수 있을 정도다. 물론 필리핀도 이미 연수를 한번 다녀온 경험이 있기에 그곳도 익숙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만 15세 미만의 아이들은 책임 동반자가 함께해야 하고 확인 공증 서류가 필요하게 된다. 20명 정도로 구성된 이번 겨울방학 필리핀 클락, 노블레스 국제학교 영어캠프에는 현지 한국인 담당자가 체류하며 아이들을 관리하는 관리형 영어캠프의 조건은 매력 있어 보였다.
그래서 캠프의 비용이 차이가 나겠지만. 우리 아이는 4주에 350만 원(여기엔 항공권, 용돈은 제외)을 지불했다. 관리형이 아니라면 엄마와 함께 이 금액에 조금만 보태어 함께 캠프를 떠날 수(2016년 아들과 함께 같은 지역 클락으로 영어 가족캠프를 떠난 적이 있다. 결국 여러 문제로 실패하고 중도에 돌아온 아픈 기억이 있지만)도 있다.
사실 아들이 떠난다고 하지만, 그렇게 마음이 바쁘지도 않았다. 가방에 짐을 꾸리기 전에 가져갈 물건들을 빈 상자에 전부 넣어놓고 전날 꼭 필요한 것들을 엄선하여 빼고 넣는 방식으로 취했기에. 상대 국가가 여름이라 옷 덕분에 짐을 꾸리기가 아주 쉬었다. 여권과 항공권, 영문 주민등록등본, 보험, 쓸 용돈만 챙겨준다면 전혀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는다. 떠나기 이틀 전까지 여행자 보험을 들지 않아 마음이 급해졌던 것만 빼고.
저녁 9시가 넘는 시간에 출발하지만, 오후 6시경에 출국 미팅을 했다. 대부분 아이들만 보내는 부모님들, 자매, 형제가 함께한 팀, 가족연수로 부모와 있는 두 팀을 제외하곤 아들보다 나이가 든 형들이 많아 안심이라면 안심이었다.
인천공항에 집결해 (하루 뒤에 출발하는 김해공항 팀은 제외)만난 캠프 참가자들.
아들에겐 지난 2년 영어 학습을 하는 동안 학원에 돈을 쏟아 넣지 않았다(그 돈을 모아 방학 때 이렇게 영어캠프를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 물론 영어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은 것도 아니다. 기본 발음과 기초는 학원을 의지했다고 볼 수 있다. 방과후 영어교실도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추첨제 형식이라 원할 때 받을 수도 없었다. 또한 아이들 스타일과 실력에 맞춰주지 않는 느려 터지거나 학생수가 너무 많은 영어 교육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며 연락한 아들은 새벽 3시가 넘어 클락 공항에 도착했다 한다.
학원을 떼고 내가 눈을 돌렸던 것은 필리핀 원어민과의 화상영어였다. 문법도 문법이지만, 말을 하는데 있어 두려움을 극복하는 취지였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말해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은 어학에 있어 진리라는 것. 현지에 함께한 원장님으로부터 아들의 스피킹과 발음이 좋다는 칭찬을 들었다. 비행기 옆 자리에서 만난 필리핀 현지인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는 아들의 말도 들을 수 있었다. 미리 인터뷰를 한 셈이다.
‘비행기 타는 시간만 빼고 즐겁지 않을 것 같다’고 한 아들의 말이 곧 몸으로 차려입을 경험적 사실과 멀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