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詩詩한 게임 이야기, 화투를 할까? 말까?
[화투놀이, 나미래]
화투를 치면 불건전해 보이는가?
특히, 아이와 함께이면 부모가 무식해 보이는가?
여러분들은 어떤가?
나는 어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쉽게 단언하지는 못하겠다. 지금까지 화투에 대해 내가 느낀 감정은 놀음이나 저급한 놀이문화로 여겨온 것이 사실이니까. 작년에 아들이 화투에 대해 내게 언급한 적이 있다.
“엄마, 우리 반에요. 할리갈리라는 게임을 하는데 종을 찰 지게 잘 치는 친구가 있는 거예요. 왜 이렇게 잘하냐고 물어봤더니 화투를 쳤다고 하던데요.”
“화투를 한다고?”
“글쎄, 시골 할머니께 배웠다더라고요. 자기가 타짜래요. 하하”
이 말을 듣자마자, ‘화투는 좀 그렇지 않니?’라는 말을 아들에게 바로 했던 것을 보면 내 안에 화투놀이는 분명 불건전한 놀이로 각인되어 있음에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주동하여 얼마 전 온 식구가 모여 앉아 화투 놀이를 했다. 그 놀이를 하기 전에 집에 있을 것만 같은 화투를 찾다가 언젠가 전부 쓰레기통에 버려버린 것을 생각해냈다. ‘일가구 일화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화투는 대국민적으로 편안하게 소지하듯 우리 집에도 분명히 존재했었다. 주말 저녁, 불현듯 화투 놀이를 하고 싶어 없애버린 화투를 다시 사러 나갔던 것은 아들과 나였다.
아들은 화투의 게임 방식에 폭 빠지는 것 같았다. 아들에게 화투를 가르치는 것이 조금 내키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은 한번 재미를 붙이면 머릿속에 꾹꾹 눌러 담고, 승기를 올리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 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화투는 사실 알게 되면 재미있게 빠져드는 놀이이지 않은가. 나같이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도 화투의 쉬운 규칙을 알고 나면 바로 게임에 투입이 될 수 있으니. 집에 있는 십 원짜리, 백 원짜리 동전을 다 긁어모아 점 당 10원으로 기준을 정하고 가족 경기를 시작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아이의 아빠는 어느 정도 게임이 길어진다 싶으면 빨리 싫증을 내는 유형이라 재미는 재미로서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더하고 싶은 눈치였던 아들도 집안의 분위기를 읽는 것 같았다. 아들과는 조건을 걸어두는 것도 있지 않았다. 식구들 모여 재미 삼아 놀이에 동참하는 것 이외에는 너무 큰 관심을 두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말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화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해서인지 화투를 해본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화투 실력도 그다지 좋지 않다. 게임 방식도 금방 잊을 때가 다반사여서 매번 남편에게 물으면서 놀이를 하곤 한다.
고도리의 점수가 5점이라는 사실을 나는 매번 잊어 먹는 것을 보면 알만하다. 그러고 보니 '고도리'라는 뜻은 다섯 마리의 새라는 것. 다섯의 고(ご)와 새라는 뜻의 일본어 도리(どり)의 합성어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일본어도 잘아는 내가. 그래서 2월 매화의 새(1마리), 4월 싸리의 새(1마리), 10월 공산명월의 새(3마리)를 맞추면 5점이었구나! 라며 감탄을 하고 있던 나. 그런 내 모습이 남편이나 아들은 재미있었나 보다. 놀리기도 하고, 남편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웃고 웃는 가족 간의 게임놀이 시간도 건강한 엔도르핀을 안겨 주는 것 같았다.
요즘 재미 삼아 유튜브에서 보고 있는 30여 전의 전원일기 MBC 드라마에서도 화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역시나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는 듯한 내용을 추억해보자면,
회장님 집에서는 툇마루에 앉은 회장님이 손자 영남이에게 종이에 한자를 쓰며 가르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던 이웃의 일용이 흐뭇한 미소로 부러워하는 눈빛을 내보인다. 일용네 집에서는 일용엄니와 손녀 복길이가 화투를 치고 있다. “할머니 나 뭐 먹어? 뭐 먹어?”라고 묻는 복길이와 할머니는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회장님 집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일용은 “아빠, 나 홍단 했어요.”라고 자랑하는 딸의 말을 듣는다. 화투를 치고 있는 엄마와 그런 자신의 딸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급기야는 ‘무식한 어머니, 아이가 뭘 배우겠냐'라는 식의 언행을 주고받는다. 이로써 일용엄니는 삐치며 집을 나가고 결국 아들과 화해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드라마를 함께 보자마자 아들과 함께 눈빛을 교환하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무분별한 내기 문화, 놀음으로 이어질 거라는 곱지 않은 시선의 탄생이 아닐 수 없다. 저급한 놀이가 되지 않도록 즐기는 선이 된다면. 그래서 서로 노력해야 할 책무를 지게 되었다. 우리 가족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