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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May 08. 2019

엄마의 그 바람에 반하다

나미래의 詩詩한 여행 이야기, 친정은 최고의·최선의 여행지


중천에 오른 태양을 이고 밭일에 열중이고자 오른 언덕 비탈진 밭. 저 멀리 바닷가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in 거금도.


5월이 다가오면 왠지 친정엘 방문하고 싶어 진다. 중요한 행사에 맞춰가는 시댁보다 한참 밀리게 되어버린 곳. 그런 친정이다 보니 휴일이 길게 찾아오면 고향 땅이 그저 그립다. 말로 다 표현이 되진 않지만.


5월 1일부터 시작된  아들 학교의 단기 봄방학. 그 막바지엔 고향으로의 출발 시간부터 번잡스럽기만 했다. 2달 전에 태어난 두 마리의 새끼 강아지들의 첫 여행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며 새끼들의 상태를 궁금해하던 나에게 “엄마, 아가야들 잘 자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흔들리는 차 안의 주파수가 사람이나 강아지들이 잠이 들기에 아주 최적의 상태래요.”라고 과학지에서 읽은 기사를 소개해주며 안심을 시켜주는 아들도 있어 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생후 2개월이 된 퍼그 산동이 새끼 아가야들.



초저녁에 출발하여 새벽 2시경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들을 보고 친정 엄마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새끼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온 모습에 어이없어했던 것은 아니었던지. 그래도 좋다고 했다. 바쁜 농번기에 딸의 손놀림이 일손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래전부터 징그럽게(‘많이, 심하게’의 고향 거금도 표현법) 농사철의 일손을 도와 왔던 터라 결혼 후부터는 게으름을 많이 피우기도 했다. 심지어 아들을 핑계 대고 친정을 방문할 때면 다른 지역을 방문하기 위한 거점으로만 이용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일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노인성 관절염으로 다리 쓰기가 불편한 아버지. 그의 몸은 방안이요 잔소리는 바깥으로도 넘나드는 희한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또한 당뇨와 알코올을 달고 사는 늙은 오빠는 더 늙은 엄마의 슬하로 들어와 지내고 있었기에. 아버지의 강성과 잔소리가 멈추지 않는 이유를 충분히 알 것도 같았다.   



엄마와 함께하는 잡초 작업. 태양은 높고 강렬하게 우리를 못살게 했다. 이미 거금도에는 늙어가는 봄날에 여름과 토닥이고 있는 듯 싶더라.



답답한 두 남자들을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법을 알고 있는 엄마다. 궂은일도 궂거나 싫다고 말하지 않고 제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그녀를 따라 비탈진 밭으로 향해본다. 오늘의 작업은 무성하게 자란 잡초(지심) 밭에 로터리(땅을 고르기 위한 기계 작업)를 치는 것이다. 깨 씨를 잡초가 무성한 밭에 미리 뿌리고 땅을 고르는 일의 순서가 신기했다고나 할까. 그 후, 고른 밭에 앉아 삐죽하게 나온 잡초를 뽑거나 호미로 가볍게 골을 쳐가며 잡초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 몫의 일이었다.


어설프게 일을 하는 딸이었지만, 엄마는 그래도 좋단다. 도란도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바라만 봐도 예쁜 딸의 웃음꽃이 오래간만에 피어올랐으니. 챙겨간 간식과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늙어가는 봄날의 이른 땡볕을 잠재워주는 가도 싶었다. 그래도 그을음과 땀샘을 자극하는 태양빛은 멈추지를 않는다. 언덕 너머로 바람 한 점이 불어올 때였다.


  “아따, 시원하다. 이 바람에 반하겠다.”라고 고개를 올린 엄마가 환하게 웃는다. 나는 그런 엄마의 긍정 표현에 반해버렸다. 늙은 시인이 내 곁에 있었네 하며. 엄마가 반한 바람은 자주 늘 그곳에 있었다는 것도.

 





 

<바람에 반하다, 나미래>

친정엔
늙은 시인이 있다네

묽어진 근육을 이고
비탈밭 존경하던
허름한 아이 걸음마

이른 여름 투정
그을음과 땀냄새
올라탄 갯바람에

'바람에 반하겠다'던
울 엄마가 시인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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