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의 이륙 직전까지 모자에겐 기분 좋은 설렘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들은 가방에 달려 있는 빨간 인형을 이리저리 흔들며 달리기 바쁘다. 온통 초록 빛깔이었던 S7 항공사의 비행기에 넋을 놓기도 했다. 비행기가 온통 초록색이라니. ‘뭐야 러시아의 널따란 땅을 비유한 것일까?’의 의문은 횡단 열차를 타니 답이 구해지고 있었다. 그들의 너른 땅, 끝없는 거리의 깊은 숲에 경이로움을 표현하고 싶어 졌다.
비행기에 대한 아들의 관심은 꼬리부터 이어지는 동체 구조를 엄마에게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신나 하는 아들의 말을 자르는(꿈과 희망을 자르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조금은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간혹 영혼이 없는 대답을 할 때는 금세 귀신처럼 알아내고 그 똑같은 설명을 다시 하고야 만다. 이 어린이는 엄마가 자신의 언어와 취미를 다 알아주길 바란다. 엄마의 품에서 아직 떠나지 않은 11살의 귀여운 초등생답다.
아들은 여행 경험 부족으로(아니다 너무 많이 알고 있었던 비행기의 정보로) 자신의 심장이 얼었다고 표현한 일이 발생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비행기 날개의 움직임이 시작됨을 감지하고 엄마에게 비행 운행의 순서를 읊어내는 아들이었다. 공항 내부의 사람들의 움직임, 활주로가 통합되어 있으나 바람에 방향에 따라 활주로의 방향이 바꿔지는 유동성을 지녔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비행기 기내에서 자세를 갖추고 이륙 준비를 기다렸다.
이륙은 순조로웠으면 했다. 아들의 말에 따르면 이륙 후 6분과 착륙 전 7분이 사고 위험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많은 비행기들의 사고 이착륙을 보면서 사건의 개요, 문제점,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들과의 일상 대화이기도 하기에. 이번에도 이륙을 하는 비행기의 상태에 대해 말이 많아지는 아들이다.
이번 비행기는 고도를 향해 오르는 비행기의 흔들림이 많이 불안정해 보였다. 무언가 긴장감이 돈다. 아들은 ‘실속(失速,stall: 항공기 날개에서 급격히 양력이 감소하여 정상적인 비행을 어렵게 만드는 현상 중 하나)’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고 있었다. 오른 지 3분도 되지 않았던 때였다.
S7항공 기내에서 선물 받은 어린이용 선물꾸러미 중.
“엄마, 실속(Stall) 같아. 비행기 너무 불안한데요. 이게 뭐야 씨”
“그러게 이게 뭐야. 이륙이 너무 엉성하다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한참 억지의 흔들림이 계속되었다. 고도를 올리는데 오랜 시간 안정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징표는 계속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비행기는 아들과 나의 심장을 밖으로 내보려는 듯 불안전한 흔들림을 계속하고 있었다. 무사히 안정권에 들어 아들 얼굴을 쳐다봤다.
"이거, 분명 기장이 운전하는 게 아닐거예요. 이렇게 못할 수가 없단 말이에요. 부기장을 시켰나? 신참일까요?"
그러면서 내게 무섭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나는 아들의 이 말이 많이 의아하게 들렸다. 좋아하는 비행기가 무섭게 느껴진 것에 안타까움이 들어 있던 반응이었다.
“지산아 그런데 실속이 뭐야. 너 아까 실속이라고 하던데?”
“속도를 잃고 사고 나는 거요. 완전 실속 같은 안 좋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그렇긴 하드라. 이륙하면서 이렇게 불안전하기는 나도 처음이네. 그런데, 너 그렇게 무서워해서 파일럿 꿈이 좀 무색하지 않니?”
“엄마도 참. 그럴 수도 있지. 비행 나갈 때 기도하는 사람 많다잖아요.”
“그래도 너 너무 무서워하면 안 되잖아. 어떻게 하누?”라고 했더니
그만 놀리란다. 계속 놀리니 눈가가 촉촉해 지려는 찰나를 포착했다.
“엄마, 무서운 감정을 좋아하는 감정이 이길 거잖아.” 란다.
아들은 돌아와서 만난 아빠에게 비행기의 깊은 사정을 설명한다. 흥분한아들에게 남편은 명쾌한 한마디를 또 남긴다.
"저가라서 그래! 비행기가 가볍잖아."
여행을 마무리하며,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아래는 워드로 작성한 아들의 체험학습 보고서이다. 여러 날들의 여행을 자세하게 적을 법도 한데 비행 관련 정보로 채우면서 쓰기에 부담을 줄여버리는 아들! 정말 잔머리 하나는 대단하다.
<시베리아에서의 여러 날들, 출처: 학교에 제출하는 아들의 체험학습 보고서>
이번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계획은 횡단 열차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이었다. 인터넷을 열심히 찾다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차를 타다가 역에 내려서 여행을 하다가 다시 기차에 타고 하는 것을 원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차를 탄 뒤에 기차 안에서 6박 7일을 지내고 모스크바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가는 일정을 짰다.
그러고는 항공편을 예약했다. 갈 때는 러시아의 저가항공사인 시베리아 항공이었다. S7 항공으로 인천에서 2019년 6월 8일 오후 3시 55분에 출발하는 S76272였다. 올 때는 대한항공 제1 국영항공사인 대한항공 KE924이었다. 이 비행기는 러시아 아에로 폴 로트 항공사가 SU4030라는 편명으로 코드셰어를(항공사 간 대표적인 제휴 방식 가운데 하나로, 편명 공유·좌석 공유 또는 기내 좌석 공유를 말한다) 한 비행기였다.
우리가 오래 여행할 기차를 예매했는데 No.099기 차였다. 3등석으로 5호실 27, 28번으로 1층과 2층을 예매하였다.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환전도 하고 엄마 핸드폰 로밍도 하였다. 비행기를 탔는데 글쎄 비행기가 이륙할 때 휘청휘청거려서 엄청 심장이 떨렸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해서는 107번 버스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가서 3시간 정도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를 타고 나선 지긋지긋한 기차여행을 약 7일 동안 하게 됐다. 그 기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화장실 냄새가 너무 심했던 점이다.
그렇게 7일을 기차에서 놀다가 보내다 보니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도착해서는 숙소에서 쉬다가 놀고 싶을 때 나와서 놀았다. 재미있게 놀고 구경했던 곳은 붉은 광장, 크렘린, 러시아 국립도서관, 아산 몰, 굼 백화점 등이었다. 그렇게 놀다 보니 3일이 후딱 갔다. 시내 아산 몰을 들렸다 바로 공항으로 가서 3시간 정도 기다려서 비행기를 탔다.
이 비행기는 한국까지 7시간이 걸리고 시차는 6시간이나 차이가 난다. 나는 태어나서 가장 멀리 가본 것이 괌이었다. 비행기도 4시간 30분까지밖에 못 타봤는데, 이 비행기는 밥도 두 번 주고 담요하고 헤드셋도 줘서 놀랐다. 그렇게 7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에 기분은 시차 때문에 약 13시간에 가까운 비행을 한 것이 너무 피곤하고 지쳤다. 공항에 아빠가 데리러 와주셨다.
그리고 집에 들어갔는데 이래서 집이 너무 편하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재미있고 유쾌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