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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Jul 07. 2019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9, #식량을 사수하라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 2019.6.11, 울란우데 계단에서 넘어지다


  

30분 이상 정차하는 역에서는 움직임이 참 여유롭다. 열차 안의 우리 자리를 가리키고 있는 아들.



  3일째로 접어드는 횡단 열차 생활.

  횡단 열차를 타기 직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 가지고 온 비상식량들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는 슬슬 한국식 부식(볶음 김치, 한국 맛 나는 컵라면, 구운 김)의 가미가 아닌 오롯이 러시아인들과 이방인들이 찾는 음식을 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여행을 시작할 때 아들에게 10만 원을 건네주었다. 공항에서 직접 환전을 하고 자신이 사 먹고 싶은 것들은 직접 사며 자주적인 용돈 운영을 하라는 의미였다. 5만 원 한 장과 만 원 권 5장을 건넸더니 아들은 이리저리 고개를 흔든다.  ‘엄마, 혹시 이 돈  용돈에서 가져온 것은 아니겠죠? 엄마.’한다. 녀석 눈치 하나는 LTE급이다. ‘그래 거기서 가져왔다’라고 순박하게 말하기는 싫어 '엄마를 그렇게 보지 말라!'고 안심을 시켰다. 점점 나의 계획안으로 아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랬더니 이미 올초 1월, 혼자 떠났던 필리핀 영어 연수 시 그런 경험을 다 해봤다며 의기양양의 끝판을 달리듯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아들은 열차 안에서도 간식은 뭐가 판매되고 있는지 벌써 탐사가 끝난 상태였다. 초코파이 두 개를 사들고 와 먹어보란 소리 한마디 안 하고 열심히 흡입을 한다. ‘뭐, 잘 먹으니 됐다’면서도 나중엔 꼭 뒤끝이 남는 나는 ‘한 마디라도 먹으라 하면 좋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아들에게 토로한다. 아들이니까 가능한 대화이기도 하다.



열차와 열차 사이에 있는 플랫폼 작은 집들은 열차 안의 간이 매점이다. 이곳에서 간식을 공수하고 음료를 사 먹으며 기뻐한다.  



   어디 그뿐인가 사이다 한 병까지 사 와서는 즐거운 간식 타임을 넉넉히 즐길 줄 아는 녀석이 부러웠다. 이 어린 시절, 두고두고 기억날 열차 여행에서의 추억이 단순히 가벼운 먹거리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좁은 공간에서 이것저것 다 흘리고 먹을 때마다 엄마와의 신경전이 표출되지만 그것 또한 좋았을 것이다. 우리 두 모자 행간의 공통점을 찾을 거니까.


  울란우레라 역에서 30분 정도 정차했을 때 매점을 찾기로 했다. 그곳과 꽤 먼 거리에 열차가 정차를 해서인지 마음을 조급하게 먹은 게 화근이었다. 고무 샌들을 신고 함께 달리던 아들이 계단에서 주룩 미끄러지고 말았다. 내가 아들의 손을 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미끄러진 거리가 상당했을 것이다. 물론 몸의 상처까지도. 긴바지를 입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아픔은 아랑곳없이 이후에 다가올 공복을 대비해 먹거리를 사러 달려가는 아들은 임무를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투철해 보였다. 나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한 두 개의 숫자 러시아어를 외워두고 있는 아들은 매점에 들어가서는 꼭 그 말을 써먹고자 애를 쓴다. 그렇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계단에서 넘어지면서까지 힘차게 달려가 매점 앞에 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열심히 물건에 손짓을 하며 주문을 해보지만 이것저것 헛갈려한다. 그런 주인(직원)이 왜 그리 답답하게 보였던지. 한국 아줌마의 근성이 폭발하는 단계에 올랐다. 물건이 놓인 곳으로 들어가 결국 하나하나 내가 꺼내고 말았더니 직원이 민망했는지? 당황한 것인지? 웃는다.  


  나는 ‘그것도 못 알아먹고 장사하겠냐!’는 말과 한숨 대신 입꼬리를 올린 미소와 눈빛을 지어 보냈다. 믿거나 말거나(웃음).

횡단열차 안에서 파는 과자, 음료수, 컵라면, 장난감, 컵, 편의 용품들이 컬러로 인쇄되어 있다. 영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모든 것이 금방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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