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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Jul 08. 2019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10, #사색의 늪, 녹색의 늪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 횡단 열차는 누구에게든 사색의 늪으로 빠지게 한다

  



그녀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거였다. 아들이 유럽 여행 노래를 멈추어 주었기에 러시아로의 여행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여러 날 열차를 타고 가면서 그녀에게 들었던 가장 많은 생각은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나?’였다.


  열차에서는 배에서 곡물을 찾는 소리가 정기적이지 않다. 적당한 시간에 식량을 공급해주고 나면 더 이상 그녀의 할 일은 없어진다. 그것은 그녀의 아들인 여행 동지에게 배려하는 최소한의 예의 같은 것이었다. 열차 안은 단순했다. 그녀도 단순해졌다. 오롯이 옆이나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을 관찰하다 지치면 노트를 펼쳐 글을 쓴다. 집으로 돌아가면 여행 노트(SIBERIA`S TRAIN 2019 JUN)에 적어둔 시들을 조금씩 다듬어보리라. 지나치고 온 여행이 어떤 기억으로 다시 재현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수십 시간을 달려도 연초록이 날리는 선들이 있었다. 하늘 가까운 곳을 바라보다 저 멀리에서부터 비슷한 거리를 유지하며 열차를 따라오는 늪지대에 시선을 빼앗겼다. 넓은 창문 안으로 다 들어오지 못한 풍경을 마주하는 그녀의 눈은 호강에 겨웠다. 봄 햇살의 유혹에 점점 빠져들어 투명 유리에 머리를 찢기도 한다. 보이기도 하고 때론 보이지 않는 나뭇잎의 소리까지 듣고 있었다. 햇살의 향연에 눈이 아프도록 바라보고 싶어 그녀는 열차 안에서 선글라스를 집어 들었다.


  다음날 오전이면 모스크바 야로슬라블 역에 도착한다. 열차 여행의 막바지라고 생각하니 아쉬움도 밀려왔다. 아니다 그녀는 얼른 내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젠 번잡한 도시를 보고 싶다고! 사색만 충만하게 한 너른 늪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을 아들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녀의 아들은 이미 중반을 넘어갈 무렵부터 지도를 꺼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횡단 거리를 확보하고, 하루에 두 시간씩도 느려지는 시차를 되짚으며 지루한 열차 일상을 극복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소소한 열차 안, 좁은 곳에서 함께 여행을 해주는 그녀의 아들이 고마웠다. 유별난 자신의 엄마 성격을 다 맞춰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때 외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의 초등생 아들이 그저 대견스러웠다.


  어린 아들이 아니었으면 지금 시점에 그녀 혼자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가 이해되지 않는 그녀의 남편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 아들을 매개체로 한 남편과의 여행 협상에서는 ‘위험한 나라야! 조심해.’로 반대 의견을 소심하게 표출하고야 만다. 오래전부터 버킷리스트로만 간직해온 이 대륙의 횡단을 흥분한 상태로 즐기고 있는 그녀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다른 방식의 일상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있겠지. 집 울타리를 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한국어 교실에서 학습자 아이들과 만났을 것이고 외국인들과 함께 하는 한국어 시간을 그려냈을 것이다.





   열차 안에서 너른 늪을 곁에 두다 보면 자주 넋을 놓게 된다. 어느 순간 멀어진 오랜 친구들과 지인들도 생각 속으로 들어왔다. 마누라의 잔소리를 피해 동굴을 파고 들어가는 남편을 생각하기도 했다. 순발력 좋은 언어 표현이 이 남자의 최고 장점이라는 것을 다시 알아가야겠다. 여행 에세이 출판 이후, 책 속에 실은 사진 때문에 오해를 샀던 일도 빠르게 지나갔다. 사진 게재 시 절차 확인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던 것은 분명 나의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대화가 오가니 오해는 이해가 되어갔다. 자존심의 꽃을 버리니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질 것만 같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경험한 만큼 각별하게 주의를 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느낀 일화였다.  


 저 푸른 나무들처럼 당차지만 부드럽게 서 있고 싶다. 저들은 말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참고 견디겠는가. 무심히 지나치는 바람에 할 말은 다 토해내기도 하겠지. 곧 지쳐버릴 노릇한 여름 더위에게도. 무조건 참는 것만이 모두가 잘 사는 것이라 믿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침묵을 위한 침묵이 가끔 필요할 때다. 어쨌든 우리는 어딘가에서 다시 돌고 도는 인연으로 반갑게 맞이할 터다. 오늘의 이 열차 안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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