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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Nov 23. 2016

#25장(醬) 이야기

나미래의 한국문화 이야기_장독에서 나는 숨소리



  나는 한국 사람이다.

  외국에 나가면 표면으로 나타나는 한국 사람 이외 심연에서 느끼게 하는 정체성은 음식이 그것을 결정한다. 현지 음식만으로는 서너 끼도 잘 참지 못하고 한식을 찾는 나의 몸 습관 때문에  뼛속에 박힌 한국인의 근성이 표출된다. 많은 한국인 또한 그럴 것이다. 의식주 중에서도 의(衣)와 주(住)에 대한 사고는 서양 사고에 잘 적응하면서도 유독 식(食)에 관련된 것에는 한국 사람이라는 미각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증거들이 상당히 많다.

     

이규태의 코너(1985-1990)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혓바닥에는 달고 쓰고 시고 맵고 짜고 등의 오미를 감지하는 미역(味域)이 따로 돼 있으며 각기 다른 신경을 통해 인지하게 된다. 한데 외국사람에게는 아예 없거나 발달되지 않은 미역 하나가 우리 한국 사람의 혓바닥에는 발달되어 있다.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류, 젓갈 같은 발효식품에서 나는 미역이다.   

     

  한국 사람은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한국음식의 큰 특징이다. 간단하지만, 복잡하고, 특별한 동일성을 또한 지니고 있다. 국난을 당해 임금님이 피난 가게 되면 반드시 합장사(合醬使)를 미리 피난지에 보내 된장을 마련해 놓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이라 한다.

     

  올해 1월, 나는 아이와 함께 2주 정도 필리핀 가족연수여행을 다녀왔다. 무거운 여행 가방에 다른 것은 몰라도 고이 간직하며 조심히 넣어 갔던 ‘장’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고추장'이었다. '이 몸도 임금님과 같은 생각을 했구려!'라고 웃음 띤 입속말로 침샘을 자극했다. 현지 음식이 지긋지긋해지고, 한국음식 차림을 식단으로 받아먹어도 조미료 맛 덕분으로 이도 저도 아닌, 이 맛도 저 맛도 아닐 때가 오면 비밀병기로 풀어내어 밥을 비벼 먹으리라는 심산이었다. 한 달 일정이었지만, 일찍 돌아오게 되면서 여행 가방 안에 꼬깃꼬깃 넣어 갔던 고. 추. 장. 님은 같은 동질감으로 무장한 한국인 어머님들에게 풀어놓고 돌아왔다.

     

  나는 어릴 적부터 부엌과 지근거리에 있는 장독대에서 장을 퍼다 나르며 음식을 만들어 주던 엄마의 장맛을 맛보고 살았다. 우리 집 된장인지? 다른 집, 다른 지역 된장인지? 어떤 고추장인지 금방 알아내는 절대미각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에서 얻은 곡물의 보은을 바로 맛볼 수 있게 만들어내는 엄마의 손맛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년마다 친정엄마가 보내주는 각종 장음식들


     찬바람이 일어나려면 엄마는 장을 담기 위해 날을 택일하고, 장독을 깨끗이 씻어 올렸다. 그리고 벌래와 유해 물질을 없애기 위해 마당에서 짚단이나 종이를 태워 장독 안에 넣어 열을 가했다. 무거운 장독을 움직이며 가족 모두가 힘을 합해야 했던 일련의 가족행사가 되었다. 부엌살림을 책임지는 엄마의 이런 행동들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장 담그기의 시대상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 행위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이 되었을지는 모르나 먹을거리에 정성을 다하는 기본 마음은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우리나라의 장 담기의 전통은 첫째 택일을 하고, 둘째, 택일을 하면 사흘 전부터 외출과 방사를 금해 부정을 타지 말아야 했으며, 셋째, 당일에는 목욕재계하여 고사를 지냈으며, 넷째, 장 담그기는 작업을 할 때 한지로 입을 봉해 음기의 발산을 막는 일종의 성스러운 행위를 고했다. 그만큼 정성을 들여야 장맛이 좋고 변질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대상은 지금도 많은 곳에서 그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한국 인천공항에 내리면, 된장냄새와 김치 냄새가 난다는 우스갯말도 있다. 아니 사실일 것이다. 내게, 우리에게 익숙한 그 냄새를 외국사람들을 생소할 테니까 말이다. 옛말에도 있지 않던가! 한국적 건강을 '된장 살'이라 하며, 한국인의 끈기를 '된장 힘', '김치 힘'이라고 하였으니 가장 적절한 비유 아닌가.

     

  그런 된장과 김치, 장을 담아내는 그릇! 그 옹기도 장맛만큼이나 한국의 내셔널리즘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본연의 맛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말이다. 변질되지 않는 맛을 위해 우리는 토박이를 원하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저장하기를 우리는 늘 원하고 원했던 것이다. 그래도 시대상이 빚어낸 김치냉장고의 쓰임은 우리의 일반적인 아파트와 현대 주거 공간에서 최대의 발명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시골 친정엄마는 해마다 정갈하게 단장하고 담은 장거리를 조금씩 보내준다. 아니, 보내기 전이라면 시골을 향하며 조금씩 엄마의 살림을 탈취하는 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딸이 훔친다는 표현보다는 자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정성스럽게 담는 장음식들은 엄마의 기쁨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오래된 엄마의 장맛은 나를 있게 하고, 가족을 있게 했다.

     
  이렇게 플라스틱 투명 통은 장음식들은 이동을 하는데 편리한 도구다. 이대로 오래 두면 맛은 분명 변질되어 갈 것이다. 정성스레 받아온 장음식들을 담기 위해 타운하우스의 주택으로 이사하며 가장 먼저 사 두었던 물건이 작은 옹기들이었다. 고추장과 된장 집장을 보관할 녀석들을 찾아내고 씻어내고 한 달여를 밖에서 소독을 하니 말끔한 기분이다.

     

친정엄마에게 받은 장을 담기 위해  소금물로 소독해 준비해둔 옹기

 

  한국인에게, 한국 사람에게, 나의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장음식들을 잘 보관해서 먹을거리에 향을 입히고 있다. 이렇게 플라스틱 용기에서 조심스레 꺼내 옛 옹기에 음식물을 넣어두니 마음이 부자가 되었다. 이렇게 싱그럽고 반갑기까지 하다니. 색깔과 크기가 다른 녀석들도 이제 조금씩 더 들여 장독대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시골스럽고 투박한 집간장이 옹기에 자리를 잡았다. 고종이 가져다 먹었다는 창의문 된장, 통도사 된장, 남한산성의 산성 토장, 전주 남문 된장 등, 이름난 된장에 비해 뭐 그렇게 훌륭한 맛은 아닐지라도 무엇보다 우리 장옥희 여사의 남도 거금도 금산의 된장으로 빚어낸 장맛은 내게 있어 대한민국의 최고의 맛이라 자부한다. 여름내 고흥반도가 키워낸 메주콩은 시원스러운 성장에 비해 수확이 까다롭다. 가지가지에 붙은 간질거리는 잔털이 수확하는 자의 몸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손수 얻어낸 농작물은 자손이 건강해지도록 하지 않았던가. 사십 년 이상을 어머니의 손맛 안에서 곡식은 소중함을 알았다

.



 

  투박스럽지만, 집된장만 있으면 식사 해결이 가능하니 이 어찌 귀중한 음식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한국 사람들이 많이 먹는 쌀만큼이나 된장과 얽힌 삶은 우리의 일상이다.   
    

  장독의 공간이 무너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60-70년대 아파트 대 건설 붐일 때도 무너뜨리려 했던 장독 문화는 아직 그 명을 잘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정이요. 한국의 문화요. 한국의 정신이며, 한국의 어머니들의 모습일 것이다. 장문화로 보는 시골과 도시의 삶과 지역의 맛의 차이는 다름이 발견되었지만, 그래도 그 장맛을 유지시키는 한국인의 정서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반가운 음식의 일인자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장맛은! 그 공간에 올려진 정서는 엄마다. 엄마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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