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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Nov 28. 2016

#27토리의 시골생활

나미래의 추억 이야기_호박고구마를 사랑한 강아지


  

  나의 이름은 도토리이다.

  내가 입양이 된 것은 10년 전 어느 가을 무렵이었다. 갓 결혼한 엄마 아빠와 가정을 이룬 나는 무척이나 작은 몸이었다. 오롯이 내게 전하던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옮겨 갔던 것은 일 년 반 정도 후부터였다. 바로 우리 집에 나보다 머리 큰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부터는 모든 관심의 방향이 두 살 어린 동생 쪽으로 향해갔다.


     

햇볕이 드는 곳에서 엄마는 글을 쓴다. 나는 나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작은 행복하다.

 

  엄마가 나를 데리고 동생과 산후조리를 했던 곳은 내가 뛰어놀기에 안성맞춤이었던 시골 할아버집이었다. 친척들은 해년마다 고구마를 캐기 위해 밭에서 모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생애 처음 땅의 냄새를 흠뻑 맡았던 것도 그 무렵 밭이랑을 오가면서였다.


  이후에도 엄마와 아빠는 고향을 자주 찾았다. 나를 차에 태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때문에 할아버지의 집 안팎 곳곳의 냄새까지 익숙했다. 그들의 고향 땅 냄새가 좋았다. 그곳에서는 먹을거리의 자연 냄새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지루한 여러 개의 고속도로를 지나고, 바다와 육지가 맞닿아 그림을 그려내는 고흥반도 아래 작은 거금도는 그들이 태어나 자란 고향이라 했다. 고향을 향할 때마다 부모는 즐거워했고, 목소리가 커졌다.


10여 년을 함께 사는 가족이 있어 좋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처음엔 잘 몰랐지만, 나는 동생인 그 녀석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골 할아버지의 집으로 보내졌다. 익숙한 곳이었지만 할아버지 집에서는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 엄마가 있었다면 할아버지 마음을 사로잡아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허락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떠났고, 겨울엔 따뜻한 방마저 없어졌다. 계절마다 여러 농작물을 넣어둔 가마니가 가득한 창고가 나의 방이 되었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찬바람과 추위를 허름하게 막아주는 곳으로 나를 넣어주었다.  



“지산이가 너의 말을 너무 따라 해. 이러다 사람 말을 못 할 것 같아. 토리야 미안해. 조금만 할아버지 집에 가 있자. 곧 데리러 올게.”


  라며 엄마는 계속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작은 위로를 보내왔다. ‘동생은 왜 내 말을 따라 할까?’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나는 나의 큰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고, 엄마, 아빠의 자동차 소리에 더욱 민감해져 동네가 울리도록 짖어댔다. 물론 나를 시골로 보내 놓았지만 엄마는 그런 나를 자주 만나러 왔다.


  나보다 키가 커가는 동생 녀석은 뛰기도 능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나는 엄마가 올 때마다 무거운 줄에서 풀려났다. 음울했던 기분은 금세 사라졌다. 꼬리를 심하게 흔들고 할아버지가 키워내는 농작물 밭으로 산책을 나갔다. 묶여 있는 나보다는 역시 달리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나와 동생의 산책에서는 내가 뒤쳐질 때도 있었다.


  할아버지의 밭 중에서는 고구마 밭 곁을 돌아다닐 때 제일 야단을 적게 맞았다. 냄새도 더 익숙했기 때문에 밭이랑을 찾아 잘 걸을 수 있었다. 동생 녀석을 앞서거니 하면서 언덕을 올랐다. 고구마의 푸른 잎들이 펼쳐진 그곳을 향해 뛰고 걸으며 오르고 또 올랐다.


  이른 초여름에 줄기가 뻗고 땅속에서 노란 살을 채우는 고구마를 생으로 먹는 것은 다른 사람들 몫이었다. 그러나 삶거나 굽고, 다른 요리로 탄생되었을 때는 조금씩 얻어먹기 전부터 침샘을 자극하는 마력을 지녔다. 고구마는. 이렇게 늦가을에서 겨울에 젖어들 때면 자연스레 호박고구마를 들고 아빠와 동생은 허기진 배를 채운다. 그런 장면은 나를 종종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호박고구마의 냄새는 정말 향기롭다. 하루종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데 내겐 참아야 하는 인내심을 요한다.



  이 년 정도 함께 한 할아버지는 잔소리가 많았다. 동생이 말을 할 무렵이 되어서야 나는 엄마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동생은 외갓집에 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도 가족과 함께 동행하면 꼬리를 흔들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에게 갑작스러운 사랑을 받게 된 사건이 일어났는데 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내 생에 최대의 행운이었다.


   그날도 고구마를 캐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온 가족들이 밭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걱정이 많으신 분이다. 농기구를 밭에 그대로 두고, 호박고구마를 넣어 둔 수많은 가마니를 밭에 놓아두고 가족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이 끝나지 않은 중간에 짐을 다 나를 수 없었기에, 얼른 점심을 먹고 올라오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다. 점심을 하고 있는 사이사이에도 할아버지의 근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가족들의 식사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빨리 밭으로 올라가자는 것이었다.


  가족들에겐 아무 말 없이 나는 이미 조금씩 걷어둔 고구마 밭으로 향했다. 2년 동안 할아버지와 살며 그의 고집을 충분히 알기 때문이었다. 고구마 줄기가 뽑혀 있는 이랑 사이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호박고구마가 가득 찬 가마니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온 가족은 밭에서 함께 내려와 집에 있었던 내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리고 놀랐다고 했다. 밭으로 미리 올라와 앉아 있었던 나를 보고 안심하는 가족들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는 내가 고구마 밭을 지켰던 사건 이후, 시골에 내려가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고구마 효능만큼 내가 많이 입을 댈 수 없지만, 우리 가족은 호박고구마를 사이에 두고 나의 이야기를 추억하며 웃음 담소를 나눈다.  



가족과 할아버지의 고구마 밭을 산책하는 것은 시골을 찾는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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