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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Dec 01. 2016

#28 아버지의 겨울국

나미래의 여행 이야기_겨울이면 아버지는 매생이국을 드신다


  상활한 기운만큼이나 화려한 꽃비로 물이 오르는 이른 봄, 은빛 햇살 파도에 아이들이 풍덩하고, 곡식들의 살이 오르는 맹렬한 여름, 초록빛 얼굴에서 오색 날리는 서릿가을과 겨울의 손님이 되어 고흥반도 남해안으로 여행을 떠난다. 사계절 먹을거리가 풍부한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며, 남편이 유년시절을 보낸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팔색조로 변신하는 고향땅을 자주 찾는다. 친정여행은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해안가를 따라 여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추억여행에 동참하는 것은 친정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운 놀이 중에 하나다.


겨울에 외갓집을 놀러가면 꽁꽁 언 바다를 둘러보게 된다.


 

  동네 방파제를 한 바퀴 도는 것은 아버지의 소소한 일상의 한 장면이다. 그곳에서 그는 유독 겨울의 한 장면을 떠올린 듯하다. 방파제는 정박된 배를 풀어주고 아버지를 줄곧 기다려 왔다. 생계를 위해 거친 바닷바람을 뚫고 먹을거리를 찾던 바다사나이는 바다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아버지의 오래된 겨울은 김(海衣, 해의) 생산을 위한 움직임이 전부였다. 서슬 푸른 겨울바다와 맞선 김발 작업은 겨울이 되면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생계 노동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새벽마다 나를 깨우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자동 반응하여 김을 뜨는 곳에서 김을 집어내는 일을 도왔다.

  

  전날 채취해온 김의 양에 따라 기상 시간이 정해지지만 평균 새벽 1시 정도면 부모는 일 준비에 몸을 움직였다. 생김을 가늘고 둥그렇고 잘게 잘라내어 물과 김을 큰 통에서 고루 섞는다. 다른 한쪽 큰 통에서 작은 두레박(김발 한 장에 잘 퍼지도록 삼각형 두레박 모양의 바가지)으로 한 바가지씩 퍼내 발장(시중에 팔고 있는 김밥용 크기로 예전에는 풀의 한 종류였던 떼로 만든 것)에 얇게 펴내어 한 장 한 장 까만 검은 김을 만들어 냈다.

 


  내가 일어나기 전까지 엄마는 아버지의 빠른 손놀림에 뒤지지 않게 집어내며 박자를 맞춘다. 눈을 비비고 내가 창고의 작업장으로 들어서면 아버지가 했던 일은 엄마가 이어받고 엄마의 일은 내가 이어받아 새로운 팀을 꾸려 일을 시작한다.


 아버지는 엄마와 내가 한 팀이 되어 일을 시작하면 곤로 위에 밤공기에 차가워진 국 냄비를 올려놓는다. 국이 데워지는 속도에 맞춰 소주 한 잔을 기울인다. 그 한 잔에 국물을 넣어 지친 몸을 달래곤 했다. 저녁으로 먹고 남은 매생이국이었다.


  매생이국은 이미 시려진 몸을 따끈따끈하게 데우는 속풀이용으로 제격이었지 싶다. 끓이고 또 끓여도 김이 나지 않는 매생이국을 후후 불며 마시는 아버지의 등이 편안해 보였다. 오래 끓이면 그 걸쭉한 끈적끈적함이 남지 않고 바다의 짠 냄새가 어느새 사라지는 달달함의 보약으로 변하니 말이다.



 

 요즘에는 영양식으로 각광받는 귀한 몸 대접을 받고 있는 매생이는 국 이외 요리의 종류도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매생이를 이용한 음식으로는 굴을 넣은 매생이탕, 매생이죽, 매생이 전, 매생이칼국수 등 그 이름도 새롭다. 이렇게 타 지역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매생이가 알려지게 된 배경에는 뛰어난 영양 효과에 있다. 파래보다 단맛이 있어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을 예방하고 술 마신 후 숙취 작용이 뛰어나다.

   아버지는 분명 주식으로 애용하며 매생이의 뛰어난 효능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을 터다. 뿐만 아니라 저지방 저 콜레스테롤을 섭취해야 하는 고혈압 및 동맥경화 환자 요법 치료로써 효과가 있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겨울은 매생이국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먹어온 엄마표 돼지고기 매생이국이었다. 매생이라는 흔한 맛의 음식과 부의 상징이라는 돼지고기를 조합시켜 새로운 음식을 창조했던 어머니들의 손맛은 사라져서는 안 될 우리 지역의 향토음식인 것이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얄밉고 미운 사위에게 매생이국을 준다.’라는 속담이 있다. 영양가 만점인 매생이국을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속담이 나왔을까 의아해진다. 그러나 그 속뜻을 알고 나니 어려운 사위에게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매생이는 뜨겁게 끓고 있어도 심하게 김이 나지 않는 성질을 가진 음식이다. 뜨겁지 않을 것이라 방심하면서 국을 후루루 입에 넣는 순간 입천장이 데었다고 하니 음식에도 해학이 묻어난다.       


  아들로 태어나서, 사위가 되었고, 아버지가 되어갔던 일생의 통과의례를 거쳐 간 여러 계절의 순간에도 겨울의 노동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연기 흔적 남기지 않는 모습으로, 오래 끊이면 더욱 맛있고, 따뜻함이 오래 남았던 돼지고기 매생이국은 아버지의 겨울을 위로하지 않았을까.    




 

겨울의 음울하고 거친 바다는 여름에는 환한 바다로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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