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詩와 마당 이야기_가을 단상에서
<달팽이가 누웠다>
검은 이슬 먹고 나타나
벗어던진 허물은
가을 채전(菜田)의 답을 풀어낸다
하늘 뚫린 가을비 맞고,
서리 이슬 몸으로 적셨지
바스락, 바스락
뒤꿈치 들어 걸어올랐다
한 잎 한 잎,
올곧게 벌린 배추잎들 사이
맛집 음식 샅샅이 소화시켰다
‘먹으면 다 죽어라우’
농약 집 사장님 무서운 한 문장,
그리고 달팽이가 누웠다
뒤뜰의 안에서
자연 생태계를 유린시켰다
<가을 단상>
3주 전, 가을배추와 무를 사다 심었다. 그 사이 달팽이가 몰래 배추 이파리를 씹어먹고 수 없이 달아나기를. 눈에만 띄어라 잡아줄 테다! 했다.
두어 마리 민달팽이를 잡고 난 후, 소문이 났는지 배추 속살이 멀쩡하게 제법 올라오고 있다.
아니 이틀 명절 비바람을 쐰 덕분인가도 싶다.
이 아이들이 정신 차리고 있다. 그래도 녀석들한테 계속 뜯기는 듯한 기분.
추석명절에 친정에 들었다. 달팽이! 억지로 잡지 않아도 되는 명약을 구해왔다. "약 먹으면 다 죽어라우. 달팽이가." 웃긴 여운을 남겨준 그 사장님의 말이 딱 맞았다. 뒷날부터 달팽이들이 흙고랑 근처에서 드디어 드러누웠다.
2016.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