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을 읽고 글을 쓴 게 벌써 4년 전이다. 원제인 ‘접속의 시대’라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그동안 세상의 무게 중심은 보다 더 ‘접속’으로 기울었다. 포르투갈어로 번역된 책의 제목은 <A Era Do Acesso>다. 절판되었으니 이젠 브라질 아마존 같은 온라인 서점에 접속해야 종이책을 살 수 있다.
‘공유 경제’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오늘날, 리프킨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수많은 일을 ‘접속’을 통해 처리한다. 메일 서버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늘 이메일을 주고받고 살아가며, 백과사전을 소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검색엔진을 통해 지식을 다운로드한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도 매일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전자상거래 플랫폼에만 접속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접속’이 물처럼 흔하게 된 이유는 누구나 소유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점점 더 ‘연결 중심’으로 바뀌어, 접속을 제공하는 사람(서버) 아니면 접속하는 사람(클라이언트)으로 양분된다. 사회구조가 인터넷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독점되던 지식도 이제는 무한히 공유된다. 배움에 드는 비용이 거의 0(제로)에 가까워지고 있다. 배움은 이제 의지의 문제,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레싱Gotthold Epharaim Lessing의 말은 오늘날 더 빛나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공로는 그가 소유한 지식에 있지 않고 그 지식을 얻으려고 쏟은 노력에 있다.” <천 개의 문장들, p22>
“O mérito do homem não reside no conhecimento que tem, mas no esforço que despendeu para alcançá-lo.”
사실 우리는 지금 소유의 종말보다는 노동의 종말을 더 두려워한다. 앞으로 오는 세상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동화와 인공지능 그리고 접속은 인간의 조건이 될 확률이 높다. ‘커넥서스’가 되길 거부하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