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책보다 텍스트

천 개의 문장 속으로

by 미래지기

최근에 자가출판 시스템으로 두 번째 책을 낸 지인을 만났다.

- 책은 많이 팔리고 있나요?

- 아니오. 요즘 누가 책을 읽나요?


책은 돈을 벌려고 쓰는 게 아니라는 말에 공감을 했다. 그러나 책 쓰기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분명히 책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다만 누구나 그런 작가가 쉽게 되지는 않는다는 게 현실이다. 출판사에 원고를 넣을 때마다 퇴짜를 당하다가 어렵사리 출판한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사례도 적지 않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일부러 차고 나온 뒤,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책만 읽다가 전업 작가가 된 사례도 있다. 대표작 한 권 없이 평생을 무명작가로 살았던 한 미국 여인이 영국에 있는 작은 서점 직원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가 훗날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어 많은 이를 위로하고 감동시킨 사례도 있다. 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책 쓰기로 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는 그럴 만큼 충분한 양을 쓰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한 소설가가 경찰의 자문을 맡아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미국 드라마 ‘Castle (캐슬)’이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유명한 작가인데, 어느 날 자신의 명성을 위협할만한 젊은 작가가 등장한다. 이 신인은 ‘차세대 캐슬’이라 불리며 스타 작가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그는 캐슬을 만난 자리에서 조언을 구한다. “선생님처럼 오래도록 명성을 얻는 소설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극 중의 긴장이 해소될 무렵 캐슬은 이렇게 말한다. “나도 자네처럼 첫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됐지. 나는 유명세를 뒤로 하고 돌아가서 열 권을 더 썼네.” 최근의 인공지능이 성과를 내는 과정을 살펴봐도 확인할 수 있다. 양은 질을 바꾼다.


소설이나 철학, 자기 개발서가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통찰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때가 있다. 그동안 누적된 경험이나 지식이 임계치에 도달해서인지, 아니면 스토리텔링의 수준이 높아서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책도 하나의 미디어일 뿐이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인터넷 미디어가 경제적인 부를 창출할 수 있다면 책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텍스트 자체는 예전부터 그랬듯이 지금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얼마든지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어진다. 생각해 보면 책이 돈이 안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책’은 처음부터 돈을 주어야 살 수 있는 ‘상품’이었으니까.


21세기는 텍스트가 다른 미디어의 기초가 되어 서사를 제공하는 시대다. 그래서 텍스트, 즉 책의 가능성은 과거에 비해 더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원작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가 되어 ‘역주행’을 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하류 문화로 취급되던 만화는 거대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유니버스로 탈바꿈하여 전 세계인의 문화를 이끈다. ‘책’이라는 전통적인 형식을 벗어난 텍스트는 파일이 되어 재능마켓에서 절찬리에 판매된다. 형식을 벗어버린 책은 인터넷 속에서 웹소설로 등장하거나, 출퇴근하는 지하철 속에서 읽는 ‘story paper’로 바뀌기도 한다. 과거에는 출판 플랫폼에 ‘작가’로서 입성해야 했다면, 지금은 커피를 마시는 동안 파일을 복사하면 종이책이 나오는 시대다. 아무리 온라인 서점이라도 해외로는 배송이 어렵거나 해외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책이 많다. 그런데 모든 책이 전자책으로 제공된다면? 구입한 전차책을 가까운 자가출판 플랫폼에 업로드해서 나만의 종이책으로 인쇄하면 될 것이다. 이는 ‘3D 책 프린팅’의 초기 단계가 아닐까?


책을 만드는 게 경제성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책이 아닌 텍스트에 초점을 맞춰보자. 책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고 팔리는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한다면, 책에 대한 모독일까? 팔리는 텍스트란 그 안에 독특한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텍스트 속에 나만의 세계관을 짓는 일이다. 철학자 김용석의 <서사철학>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하면
‘말 되는’ 이야기는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사실이든 허구이든, 세계관이 구축되어야 책도 쓸 수 있다. 잘 구축된 세계관이라면 그것이 책이든, 영화든, 만화든 아니면 게임으로 만들어지든 간에 성공하는 텍스트가 될 것이다. ‘책’은 지금도 팔리는 상품 아이템이다.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기에 팔리지 않는다면, 책을 텍스트라는 단위로 인수분해하여 다른 매체의 좌표에 그릴 수 있도록 나만의 함수를 만들어 보자. 그 ‘안 팔리는’ 분야를 이미 다른 미디어가 점령해 버렸다면 말이다. 책은 우리를 닮아 갈 것이다. 책은 읽지 않아도 텍스트는 늘 읽고 있는 우리를.


책에 대한 통찰을 한국어와 포르투갈어로 볼 수 있는 책

<천 개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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