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소개한 Clarice.ai 인공지능 서비스를 1년 유료 구독했다. 그동안 무료 서비스만 쓰다가 50% 할인이라는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늘 눈여겨보고 있었던 서비스인데 유혹이라니? 때가 된 거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지구에서 영미권 문화를 받아들인 나라에서는 해마다 연말이 왔음을 알리는 네 가지 행사가 열린다. 핼러윈, 블랙 프라이데이,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11월 26일 금요일이며 지금은 한창 블랙 프라이데이를 지나가고 있다. 팔고 남은 상품을 보관하는 비용과 마케팅 비용의 부담을 없애기 위한, 그러니까 ‘재고 정리’ 기능을 제공하는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는 대형 쇼핑몰과 유통사들에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블랙 프라이데이는 수많은 나라에 도입되었다.
재고와는 상관없는 디지털 상품을 판매하는 곳에서도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특별한 이벤트에 편승한다. 여러 OTT 서비스, 이미지 판매 사이트, 웹호스팅 업체, SNS 속의 수많은 커뮤니티 등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라면 이 시즌을 피할 수는 없다. 오히려 블랙 프라이데이에 맞추어 특별한 판매가를 제시하지 않는 곳이 이상해 보일 정도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디지털 제품을 판매하는 곳에 더 적합해 보인다. 재고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문화 활동과 경제 활동이 ‘소유’에서 ‘접속’으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를 찾는다면 늘어난 ‘구독 경제’를 눈여겨 보라.
주변을 둘러보면 정기적인 결제 방식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전기, 수도, 가스, 휴대전화, 인터넷 접속, 정수기 필터, 자동차, 아파트, 신문, 잡지, 책, 영화, 동영상, 음원, 헬스클럽, 학교, 학원, 게임, 만화,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 보험, 연금, 각종 수수료 등 이처럼 정기적으로 결제하지 않고 오로지 단 한번 구입하여 ‘소유’하고 있는 것이 몇이나 될까? 이런 서비스들의 공통점은 바로 그것이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내가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접속, 즉 구독을 제시할 수 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이 ‘구독 경제’야 말로 ‘지속 가능한 경제’라고 믿는 것 같다.
인생은 반복의 연속이다. 하루를 24시간, 한 시간을 60분으로 정하여 반복하며, 1년을 365일로 나누어 반복하면서 그 분절된 시간 속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게 지구인의 일상인 것이다. 그래서 정기적인 결제, 즉 구독이란 인간을 닮은 경제적 산물이다. 부동산이라고 예외일까? 그렇지 않다. 국가에 바치는 세금도 결국 정기결제다. 결제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것은 구독이 아니라 구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iOS 업데이트가 안 되는 아이패드는 하드웨어가 아무리 멀쩡해도 그 생명은 다 했다고 봐야 한다. 몇 년 만에 새 모델을 구입한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면, 이미 태블릿 컴퓨팅의 ‘경험’을 구독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참에 다른 OS의 하드웨어로 갈아탄다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구독이 유지되는 이유는 습관을 바꿈으로써 감당해야 하는 비용과 시간, 불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경제란 중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라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시작이 반이다. Bem começado, meio terminado.
매일 먹는 ‘음식’과 매일 갈아입는 ‘옷’도 정기 구독제로 가고 있다. 평소에 먹기 어려운 다양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고, 개인의 영양 상태에 맞춘 식단을 정기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면? 명품 브랜드의 옷이나 액세서리, 특별한 자리에 필요한 의상도 구독제 만으로 제공된다면? 더 나아가 개인정보가 알고리즘이 처리하는 빅데이터가 되어, 플랫폼이 내리는 결정이 개인의 결정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처음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하지만 반복되면 자연스러워진다.
연필을 꺼내 종이에 적어보자. 물론, 스마트폰으로 해도 된다. 내가 정기적으로 구독하거나 결제하는 서비스나 상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말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이어야 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다. 내가 만드는 콘텐츠를 과연 구독 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을까? 상상력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내 생각과 습관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남의 습관을 바꿔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