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지니는 중요성은 반복해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작명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라틴어로는 NOMEN, 그리스어로는 ONOMA라고 한다. 뜻은 같다. “사람을 구분하는 데 쓰는 말”이다. 사물과 사람, 일반적으로 말해 존재를 구분하기 위한 언어적 상징이 바로 이름인 것이다. ‘정보’는 구분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구분하는 이름이 없다면 정보도 없다.
이름이 가진 상징성의 중요함을 나타내는 유명한 시가 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꽃’이라고 불러주기 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즉,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존재하기 위해 있어야 하는 이름. 세상과 내가 관계를 맺는 최초의 인터페이스로써의 이름. 그 이름을 짓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최초의 인류인 아담도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 창세기 2장 19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온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Havendo, pois, o Senhor Deus formado da terra todo o animal do campo, e toda a ave dos céus, os trouxe a Adão, para este ver como lhes chamaria; e tudo o que Adão chamou a toda a alma vivente, isso foi o seu nome.” - Gênesis 2 : 19
어떤 언어를 배우든, 이름을 가리키는 말을 ‘명사’라고 하여 하나의 독립된 품사로 배운다. ‘명사’가 얼마나 중요하면 이를 대신해서 쓰는 ‘대명사’가 발달했을까. 언어학의 세계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에는 이름이 존재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도 인식의 대상이 된다면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다. 추상명사가 그렇다. 수(數)라는 개념도 숫자가 있어야 비로소 인식된다. 분자식에도 이름이 있고, 바이러스도 변이가 일어나면 새로운 이름이 생긴다. 글도 제목이라는 이름이 있고, 이름이 없는 그림도 <무제>라는 이름이 있다. 가수 이소라의 7집에 있는 노래의 제목은 없지만 있다. 트랙 1, 트랙 2, 트랙 3,... 이런 식이다. 이름 없는 음악은 없고, 이름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분이 없는 사람도 ‘무명’이라는 이름이 존재한다. 전자우편(이메일) 주소는 각각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이름이다.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려면 아이디(ID), 즉 남과 구분되는 이름을 만들어야 한다. 물질을 이루는 최초의 입자도 이름이 있어야 하고, 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도 이름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려면 우주 속에 존재하는 ‘것’들의 이름을 끝도 없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름을 없앨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이런 곳이다.
이름은 언어를 통해 전달되고 형상화되고 저장된 뒤 관념, 즉 생각으로 자리 잡는다. 개념이 되고, 고정관념이 된다. 한 번 정하면 바꾸기 어렵다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오히려 권장된다. 정해진 이름이라는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또는 정체성에 변화를 주기 위해 용기를 내어 자신에게 주어진 최초의 이름을 바꾼다. 바꾸지 못한다면 아예 다른 이름을 만들어 가진다. 개인만이 아니다. 회사도 필요에 의해 사명(社名)을 바꾼다. 이름이 곧 그 소유자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세계만큼의 이름을 갖는다. 직업이나 사회적인 위치에 따른 이름뿐만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에서 활동하기 위해 다양한 이름을 갖는다. 다양한 이름이란, 다양한 인격을 의미한다. 메타버스라는 평행우주가 보편화된다면 자신의 아바타에도 별도의 이름을 부여하고 그 정체성에 맞게 인격을 형성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름’은 새로운 존재가 탄생할 때마다 만들어질 것이다. 나의 최초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지금 몇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나? 이름을 바꾸고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이유는 언젠가 여행을 마쳐야 하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터널스’도 이름이 있기에 필멸의 존재일 것이다. 노자가 말한 것처럼 말이다.
이해될 수 있는 지성은 영원한 지성이 아니다. 명명할 수 있는 존재는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
O intelecto que pode ser compreendido não é um intelecto eterno; o ser que pode ser nomeado não é um ser eter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