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 <어원은 스토리텔링이다>

천 개의 문장 속으로

by 미래지기

어원은 말의 뿌리를 의미한다. 어원은 영어로 ‘etymology’인데, 그리스어 étumos(사실)과 logos(학문)의 합성어다. 말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천해 왔으며, 그 뿌리는 어디인지, 무엇이 사실인지를 찾는 학문이 어원학이다. 그래서 역사학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나간 흔적을 더듬어 사실을 발견하는 작업이기에 고고학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렇다.

어원은 언어의 과거 이야기다.


인간은 현재를 살기 위해 과거에 머물 수 없는 존재다. 과거를 잊어야 현재의 기억을 담을 수 있다. 그래서 현재를 사는 동안 과거는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고, 탐구하지 않으면 그 내막을 알 수 없는 시간이 되어 버린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사건이 중첩되어 발생하는 세상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을 살다 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외 없이 과거와 단절된 채 태어나게 된다. 과거의 말을 배우며 살다가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고 마감한다. 말은 살아있는 생명을 닮아 멈추는 법이 없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절된 시간이 이어져 있는 모습인 것이다. 마디마디 이어진 연속된 사슬 사이에서, 말은 과거의 기억을 전달하며 소멸되고 새로운 마디와 이어지며 의미가 탄생한다. 어원은 그렇게 형성된다.


어원을 탐구하는 목적은 다양하다. 최근에는 단어 공부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어원을 적극 활용한다. 서양말을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dict, doc, equ, ex, fac 같은 라틴어나 그리스어 접두사의 의미를 알고 있다면 파생되는 수많은 단어의 뜻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레고 블록처럼 의미를 조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거나, 단어를 이미 알려진 의미 블록으로 나누어 그 뜻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어근이나 접사로 유추할 수 없는 단어는 고유의 의미와 역사를 지니고 있다. ‘봉급’으로 해석되는 salary라는 단어 안에는 ‘소금(sal, salt)’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과거의 ‘소금’이 어떻게 현대의 ‘봉급’이 되었을까? 로마제국 시절에 봉급을 소금으로 받았다는 이야기가 단어와 같이 전해진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것을 어원이라고 믿고 있다. 단어에 얽힌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마디처럼 끊어진 단서와 기록을 찾아 연결해서 가장 가능성 높은 가설을 받아들인 뒤 그것을 다시 기록에 남겨 후대에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소금을 봉급으로 받기 전에는 ‘봉급’이라는 말은 어떤 단어였을까? 왜 그 단어는 사라지고 지금은 salary라는 말을 ‘봉급’으로 쓰고 있는 것일까? 100년 후 ‘봉급’으로 쓰게 될 단어는 무엇일까? 오랜 시간이 지나면 봉급을 받는다는 개념조차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때 다시 salary의 어원을 찾는다면, 그때에도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이야기를 정설로 받아들이게 될까? 어원은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시대에 쓰는 단어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 이야기, 그리고 현재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소금’과 같은 맛을 내는 이야기다.


“단어는 단지 질료에 대한 이미지에 불과하다. 단어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림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 프랜시스 베이컨

“As palavras não passam de imagens da matéria. Apaixionar-se por elas é apaixionar-se por um quadro.”

<천 개의 문장들, p125>


단어를 배우는 이유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단어가 가진 뜻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이때 어원을 탐구하는 일은 매우 유용하다. 베이컨은 “단어는 단지 질료에 대한 이미지에 불과하다”라고 했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일련의 의미가 담기기까지에는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어원을 탐구하면 단어 속에 있는 온갖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어원 중에는 그 뿌리가 오롯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지만, 가설에 불과하거나 창작된 이야기도 있다. 진위를 판별하는 문제는 언어학자나 역사학자, 고고학자에게 맡기자. 우리는 어원을 탐구하면서 역사를 접할 때마다,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을 보면서 인간과 사회 그리고 문화를 배우는 기회로 삼으면 된다. 단어장을 통해 외운 단어가 아니라 풍부한 이야기가 담긴 단어로 문장을 쓴다면, 어원을 찾는 일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단어 공부이며 동시에 무엇보다 행복한 인문학 공부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천 개의 문장 속으로> 칼럼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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