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유튜브 프리미엄>이라는 구독 서비스는, 사용자로 하여금 스스로 비용을 지불하게 해서 '중독'이라는 관성에 적극적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영상을 시청하면서 방해받지 않을 구독자의 시간은 소중하다. 그러나 중간중간 나오는 광고를 허용하는 게, 오히려 불편하지만 일방적인 미디어 세례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강제로나마 유지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중독은 시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기에.
유튜브에서 영상을 시청하면 비슷한 주제의 영상이 자동적으로 추천되어 주변에 배치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디어 편식에 빠져들기 쉽다. 다른 생각을 듣고 싶으면 검색을 하면 된다. 그러나 어떤 영상을 보여줄 것인가는 나의 터치나 클릭을 반영한 구글의 알고리즘이 결정한다. 유튜브는 영양가 있게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균형 있는 미디어 식단을 구독자를 위해 자동적으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최근에는 <유튜브 읽어주는 남자>라는 한 채널을 가져와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니시노 아키히노'라는 일본인 강사가 최고의 인사이트(insight)를 선사한다는 '벨라지오 호텔'에 대한 이야기다.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비용을 지불하는 VIP 덕분에 가난한 사용자들도 같은 플랫폼을 거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제 원리에 대한 강연이다. '정신이 아찔하다 못해 멍해질 정도'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끝내 감탄하고 마는 이유는, 왜 항공료가 차별화되어 책정되는지에 대한 엄청난 통찰일까 아니면 적절한 연출에 어울리는 강사의 뛰어난 설득력일까? 아니면 이들의 조합이 만들어낸 극적 효과일까?
유튜브의 시대는 온라인 강연의 시대다. 강연을 통해 전달되는 지식은 새롭게 버무려진 음식과 같다. 보다 맛깔스럽게 보이고 보다 신선해 보이지만 그 속의 재료는 대부분 우리가 오래전부터 텍스트를 통해 배우고 또 전달해 온 내용이다. 유튜브 강연의 원천은 책, 출판물, 즉 텍스트다. 틀린 생각일까?
<경제를 보는 눈> 128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영화관이 학생에게 할인혜택을 주는 것도 ... 학생들은 영화비에 대한 가격탄력성이 높은 계층이기 때문에 할인 혜택을 줄 경우 영화를 더 많이 보게 할 수 있다. 극장들이 학생보다 더 사회적 약자인 노인에 대해서는 할인혜택을 따로 주지 않는 이유는 할인을 해줘봐야 노인들은 영화관을 잘 찾지 않기 때문이다. ... 제값에는 영화를 보지 않을 사람들에게 할인혜택을 주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 영화관으로서는 훨씬 더 이익인 셈이다."
그렇다. 위에서 예를 들은 니시노 아키히로의 강연은 바로 가격탄력성과 가격차별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주제를 유튜브를 통해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굉장한 인사이트가 담긴 영상이라며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지식이 아니다. 새로운 면은 내용이 아니라 '편집' 또는 '연출'에 있다. 위의 강연은 텍스트로 출판된 지식 속에서 한 가지 주제를 가져와서 '강의 쇼(show)'라는 형식으로 재가공한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책 보다 감동적이고 극적이다. 책 보다 현장감이 느껴지며 책 보다 재미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스토리텔링 연출력에 있다.
텍스트가 지식을 기록(writing)했다면, 영상은 콘텐츠를 이야기(telling)한다. 유튜브는 스토리텔링을 하기에 좋은 시스템인 것이다. 책도 스토리텔링을 기록하는 훌륭한 매체다. 영화나 연극 등 다른 매체의 대본이 텍스트로 작성되는 이유가 바로 그 증거다. 유튜브 영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콘텐츠를 기록해서 보존할 1차 매체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글, 즉 텍스트다. 매력적인 영상 뒤에는 이를 뒷받침 하는 매력적인 텍스트가 존재한다.
'가상현실'이라는 것이 현실 위에 구축된 새로운 플랫폼인 것처럼, 영상매체도 문자 매체 위에 구축된 새로운 플랫폼이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새로운 영상을 보게 되었을 때, 영상만을 시청하고 해당 주제를 다 이해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 배경에 있는 텍스트, 다시 말해 원래의 출처를 찾아 읽는 여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비교해 보는 과정을 거쳐야 콘텐츠라는 이름의 지식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책과 유튜브를 골고루 탐색해야 영양가 있는 미디어 식단을 누려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시대에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갈등하면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인사이트(통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