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언어적 관습'이 숙어는 아니다. 연어도 그렇다.
'연어'를 구글링 하면 '연어목 연어과에 속한다'는 salmon이 검색의 첫 페이지를 장식합니다.
연어 鰱魚 - salmão
하지만 우리가 이 글에서 찾는 연어는 물고기가 아니라 20세기 초에 영국의 언어학자 퍼스(J. R. Firth)가 처음 소개했다는 문법으로서의 '連語'입니다. 연어(連語)란 '하나의 낱말을 다른 낱말과 이어주는 말' 또는 '이어진 단어 쌍'입니다. 두 개 이상의 낱말이 서로 연결되어 일련의 의미를 전달할 때, 이 낱말들이 아무렇게나 연결되는 게 아니라 특정한 방향성을 갖고 연결된다는 게 '연어'입니다.
連語 현상은 한국어나 영어, 포르투갈어는 물론 거의 모든 자연언어에서 나타납니다. 영어로는 collocation이라고 합니다. 자꾸 물고기 연어가 연상된다고요? 그렇다면 '이은말'이라는 순화어로 기억하는 건 어떨까요?
연어 連語 - colocação 또는 coligação
연어는 한 마디로 낱말의 '짝꿍'입니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속담처럼, 말이 되기 위해서는 낱말마다 어울리는 낱말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옷을 입다"와 "양말을 신다"는 말이 되지만, "옷을 신다"와 "양말을 입다"는 어색합니다. '옷'은 '입는' 것이고, '양말'은 '신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한국어의 연어 체계입니다. 이런 특징을 무시하고 말을 하면 혹시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외국인이 아닐까 하고 의심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언어마다 어떤 의미를 표현할 때 선호하는 어휘 조합 방식이 있다. 그러한 선호가 발행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우선 첫 번째 원인은 명제적 관계다. (선택적 제약) ... 두 번째 원인은 언어 공동체의 관습적인 언어 사용 방식이다. (연어적 제한)" / 윤영삼 <갈등하는 번역>
연어는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번역을 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납니다. "버튼을 누르다"라는 영어 표현에는 "push the button"과 "press the button" 두 가지가 있는데, 전자는 미국에서 쓰고 후자는 영국에서 주로 쓰는 표현입니다. 같은 영어인데도 이렇게 나라마다 낱말의 선호도가 다릅니다.
gato - 고양이 - cat
cão - 개 - dog
cachorro - 강아지, 개 - dog, puppy (강아지)
한국어에서는 '고양이와 개'보다는 '개와 고양이'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포르투갈어에서 'cão e gato'는 자연스러운 어순이 되지만 'cachorro e gato'는 좀 어색합니다. 굳이 cão 대신 cachorro를 넣겠다고요? 그러면 낱말의 배열이 바뀝니다. 'gato e cachorro'로 말이죠. 참고로, '핫도그'는 'cão-quente'가 아니라 'cachorro-quente'입니다.
'Merry Christmas'에서 merry의 의미는 'happy'입니다. 우리는 그냥 '메리 크리스마스' 또는 '기쁜 성탄'이라고 하는데 포르투갈어로는 'Feliz Natal'입니다. Happy Birthday라고는 하면서, 왜 Happy Christmas라고는 하지 않느냐고요? 그것이 바로 연어collocation입니다. 연어는 문화를 반영할뿐만 아니라 직관마저 무시합니다.
feliz - 행복한, 만족스러운
Natal - 크리스마스, 성탄
한국어에서는 검은색을 먼저 말한 뒤 다른 색을 붙입니다. '흑백논리'라고 하지, '백흑논리'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영어나 포르투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black and white'는 'preto e branco'입니다. 그러나 스페인어에서는 순서가 바뀝니다. 'blanco y negro'라고 해야 자연스럽습니다. 한국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라고 말을 하지, '불물을 가리고'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공통점'이라고 해석되는 영어 'common ground'의 포르투갈어 표현은 'terreno comum'이 아니라 'interesse comum'입니다. '흑설탕'을 뜻하는 영어 'brown sugar'의 포르투갈어 표현은 'açúcar marrom'이 아니라 'açúcar mascavo'입니다. 또한, '철새'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ave migratória'를 영어로 쓸 때는 'migratory bird'가 아니라 'bird of passage'라고 해야 자연스럽습니다. 낱말을 따로따로 외우면서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연어colocação의 세계로 발을 옮길 때가 된 것입니다.
"연어는 언어적 관습에서 굳어진 표현이기 때문에 모국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은 자칫 실수를 범하기 쉽다. ... 언어란 어디까지나 관습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왜 이렇게 일관성이 없느냐고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 김욱동 <번역의 미로>
연어와 숙어(관용어)는 '언어적 관습'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았습니다. 그래서 두 개 이상의 낱말로 이루어진 그 모든 것을 지금까지 '숙어expressão idiomárica'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외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연어와 숙어 사이에는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예를 들어 'puxar o saco'라는 표현은 영어로 하면 'pull the bag'이 아니라 'brown-nose'입니다. '아부를 한다'는 뜻을 지닌 비속어죠. 그런데 이 말은 연어가 아니라 숙어입니다. 글자 그대로는 'saco(주머니)를 당긴다(puxar)'인데, saco 대신 sacola(쇼핑백, 봉지)를 쓰지 않아서가 아니라 '표현의 뜻이 글자 그대로의 해석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puxar o saco'를 '알랑거린다'라고 곧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뿐입니다. 외국인이라면 학습을 해서 외워야 하는 '숙어'입니다. 하지만 '소시지를 넣은 빵'을 왜 하필 'hot dog'라고 부르는가를 밝히는 일은, 'hot dog'를 'cão-quente'가 아니라 'cachorro-quente'로 쓰는게 맞다는 것과는 별개의 다는 문제입니다. 전자는 어원을 밝히는 문제이지만 후자는 낱말의 배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숙어나 연어는 모두 어렵습니다. 그래서 긴 문장은 둘째치고 어절이나 구locução를 만들어 보려고만 해도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게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빈번합니다. 특히 포르투갈어와 한국어 사이에는 아직 마땅한 연어/숙어 사전이 없으므로, 원어민에게 물어볼 수 없다면 인터넷 검색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roteiro final / shooting script / 촬영 대본
incentivos fiscais / tax incentives / 세제혜택
imposto sindical / union dues / 조합비
faca cega / blunt knife / 무딘 칼
inglês macarrônico / broken English / 엉터리 영어
inseto nocivo / insect pest / 해충
instalações sanitárias / sanitary facilities / 위생 시설
enxerto ósseo / bone graft / 뼈이식
연어鰱魚는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회귀본능의 원인은 아직 가설로만 떠다니고 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연어連語를 잘 구사하는 일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자신의 강 줄기를 찾아가는 물고기처럼, 수많은 문장을 경험해서 어떤 문장이 자연스러운가 아닌가를 몸으로 체득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외국어를 학습하는 데 있어서 잘할 줄 아는 또 다른 외국어가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포르투갈어-영어 이중언어 사전의 도움을 받는다면 연어 공부도 더욱 쉬워지지 않을까요?
platonic love / amor platônico / 플라토닉 사랑
leap year / ano bissexto / 윤년
air-raid shelter / abrigo antiaéreo / 방공호
fake self / falso self / 거짓 자아
lap of honor / volta olímpica / 승리의 일주
duty-free zone / zona franca / 무관세 지역
no-go zone / zona proibida / 접근금지 지역
ceiling price / preço máximo / 최고 가격
step up grade / aclive acentuado / 급경사
lame duck / patinho feio / 레임덕
▨ 미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