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사고뭉치 연구원 연재 시작
잠을 설쳤다. 왜? 소소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실 남들이 보기에는 잠을 설칠 일까지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나름 꼼꼼하다고 자부하던 사람이었는데 문제가 발생하니, 심지어 내 탓이 아닌 이유로 문제가 발생해서 속상했던 것이었다.
현재 나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원생도 아니고 계약직 연구원. 왜 이러고 있느냐고 물으면 어찌저찌 세상의 흐름에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연구원 생활은 재미있다. 원래도 환자를 보는 것보다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고, 담당 교수님이 너무 좋다. 기여분이 있으면 공저자라도 꼭 넣어주고, 하고 싶은 주제를 들고 오면 할 수 있게 해 주고, 월급도 채워주신다고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넣어주신다. 실험보다는 데이터를 다루는 드라이랩이라 재택근무를 주로 하는데 집에서 쓰라고 의자도 사주시고, 대면 출근을 하면 밥도 사 주신다.
참고로 우리 연구소에는 연구원이 나밖에 없다.
받는 게 많은 만큼, 나도 연구를 열심히 한다. 대충 어림잡아 6~7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일단, 컴퓨터 3대를 쓰고 있다. 학교에 있는 성능 좋은 데스크탑 컴퓨터, 올해 새로 산 내 노트북, 7년 되어서 성능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쓸만한 내 과거 노트북. 두 대로는 열심히 프로그램을 돌리고 한 대로는 열심히 논문 및 서류를 작성한다. 그리고 방법론이 겹치는 프로젝트들이 좀 있다. 한 번 잘 코드를 만들어놓으면 변수만 바꿔서 돌리면 되니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소소한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A프로젝트에 써야 하는 변수를 B프로젝트에 잘못 넣고, 저장 파일 이름 동일하게 해서 덮어씌워지고, 마감일 서로 뒤집어 기억하고...
지금보다 어렸을 적에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사고라면 이야기하지 않고 해결하고 통보했었다. 당시에는 잘 못한다는 평가를 받을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사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였던 적도 많은데.
요즘은 그냥 말을 꺼낸다. 생각해 보면 혼자 알고 혼자 해결하면 좀 불안하다. 그러면 연구 진행도 더뎌지고,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고 마음 편히 해결하는 게 나은 것 같다. 또한 교수님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잠재적인 문제까지 함께 알아채는 경우도 많다.
사고 발생 시에는 창피하더라도 알리자.
이 브런치북에서는 내가 저질렀던, 경험했던 여러 소소한 사고들을 글로 써보고자 한다. 몇 개는 창피하기도 하지만 억울하고 당황스러운 일들도 많다. 나 같은 누군가에게 내 글들이 미리 사건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도움이 되면 좋겠다.
하찮은 사고뭉치 연구원,
제발 계속 하찮은 사고만 칠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