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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Nov 01. 2020

조작된 결과: 콜라와 팝콘 실험

제임스 비카리의 서브리미널 효과

나는 신경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도 관심은 많지만 어릴 때만큼이나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다. 요즘 의학공부를 하다 보면 정말 새롭고 재미있는 분야가 많아서 이것저것 흥미가 생기기 때문에 내가 그 어릴 적 꿈을 지켜나갈지, 바꿀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하여간 중학생 때까지, 아니 어쩌면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꿈이 확고했고 관련 책, 강의 등을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이해를 잘 못했는데 여러 번 접하다 보니 슬슬 이해가 가기 시작했고, 도서관에 있는 신경과학 관련 책들은 거의 다 읽어보았다. 그리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뇌, 신경 관련된 책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읽은 책과 겹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중과학서의 문제를 꼽자면 흥미 위주의 제한된 지식이 중복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도 강연의 경우는 본인 연구도 소개하고 새로운 내용을 들을 수 있는데 책은 진짜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러다가 올해 코로나 19로 주변 도서관들이 다 문을 닫는 바람에 전자책 어플을 뒤져보고 있었는데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이번 학기 정신과랑 신경학 수업 듣는데 오랜만에 이쪽 분야를 읽어볼까, 하고 대출을 하였다. 그리고 누워서 폰을 슥슥 넘겨가며 읽다가 순간 흠칫했다. 

내가 중학생 때 읽은 책에 소개되었던 실험이
사실 가짜였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실험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화 중간에 1/3000초 동안 '코카콜라를 마셔(Drink Coca Cola)', '배고파? 팝콘을 먹어(Hungry? Eat popcorn)'의 문구를 보여주었더니 영화 끝나고 극장 내 코카콜라 판매량은 57.8% 증가하였고, 팝콘은 18.1% 증가하였다고 한다. 연구자인 제임스 비카리는 영화 속 메시지가 관객들의 잠재의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하였다.

난 그 책을 읽고 여기저기 이야기해주고 다녔는데, 뭐야 진짜가 아니고 가짜였어? 인터넷을 켜서 검색을 해 보았다. 연구자가 조작된 것이라고 인정을 한 게 맞았다. 아니, 조작되었다기보다 그냥 실험을 안 했다고 인정했다. 그게 무려 1962년.... 참고로 거짓 실험을 진짜인 양 밝힌 것이 1957년도로, 꽤 오랫동안 거짓말을 들키지 않았다.

아니 내가 중학교 때 읽은 책 누가 감수한 걸까? 번역자는 모를 수 있다 하더라도 감수자는 알았어야지... 하고 찾아봤는데, 무려 2020년인 지금에도 정설인 양 작성되어 있는 글이 많았다. 그러니까... 비카리 씨는 참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그 사람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간접적인 메시지가 어떤 영향이 있을까, 어떻게 해야 광고 효과를 늘릴 수 있을까 등 다양한 연구가 시행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는 사기꾼인데, 임팩트가 커서 그 사람이 사실인 양 보도되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까운 것 같다. 너무 뭐랄까, 불안감을 조성한다고 해야 하나. 1/3000초 동안 콜라 마시라는 글을 봐봤자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는데, 미디어가 굉장히 짧은 시간 내에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다니 뭐니...

예방의학과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그랬다. 너네는 앞으로 수많은 유사과학, 비과학들과 싸워야 한다고... 안타까운 사실이다. 과학적인 근거가 아무리 있어봤자 사람들이 안 믿기로 결정하면 끝이다. 그냥 비과학적인 공포를 믿어버리고, 우리 모두를 안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면 거기서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은 별로 없다. 최근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직업이 굉장히 늘어나고 있는데 그런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혼란을 줄이고, 근거가 충분한 과학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소통에 노력을 하는 것 아닐까...

앞으로는 과학이 밝히지 못한 애매한 지점에서의 혼란 말고, 
명확한 부분에서의 혼란은 생기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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