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레티아 Nov 24. 2020

사소했던 잘못된 생각: 카타제너 증후군

장기가 뒤집히는 카타제너 증후군 ≠ 원발성 섬모 운동 이상증

시험문제에는 중요한 것이 나오고, 내 머릿속에는 재밌는 것이 남는다.


난 영재교를 나왔다. 과학을 좋아했고, 연구를 해보고 싶었고, 집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가 평판이 좋지 않아서 도피처로 선택했는데 운 좋게도 합격했다. 그런데 난 생각보다 어리바리했어서 합격 후에 우리 교육과정이 일반적인 고등학교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구만 추가되는 줄 알았지 생물학을 3년 내내 캠벨로 배운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 고1 때 모든 게 새로웠고 기대감도 컸다.

그래서 수업도 열심히 듣고 복습도 열심히 했다. 시험에 안 나올 것 같은, 그냥 지나가듯 언급한 것조차도 필기노트에 적어두었다. 그때 적어둔 것 중 아직도 기억하는 것이 '카타제너 증후군'이었다. 세포 소기관에 대해 공부할 때 나온 것인데, 섬모의 운동기능에 이상이 생겨서 내장의 좌우가 바뀌는 병이었다. 난 그래서 막연히 심장을 비롯한 장기들이 발생 과정에서 회전하는 줄 알았다. 섬모가 운동이 이상하니까, 있어야 할 위치로 가지 못하고 발생 초기 위치에 머물러있다고 막연히 생각한 것이었다. 더 찾아보려고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믿었고,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그런데 몇 주 전 소아과를 배우는데 카타제너 증후군이 나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원발성 섬모 운동 이상증'이 나왔다. 이 질병이 있으면 섬모 운동에 이상이 생겨서 장기가 랜덤하게 위치하게 되므로 50%의 확률로 내장이 반대로 되어있는 카타제너 증후군이 된다고 했다. 즉, 카타제너 증후군은 섬모가 제기능을 못하는 병이 맞지만, 섬모가 제기능을 못하는 병이 반드시 카타제너 증후군은 아닌, 포함관계에 있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원발성 섬모 운동 이상증의 분류.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rimary_ciliary_dyskinesia


지금까지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난 왜 더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짐작을 믿어버렸을까?
난 왜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했을까?


짐작을 믿고 싶은 경우는 많다. 가끔은 그 편이 편하기도 하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꼬치꼬치 따져 물으려는 태도가 남들에겐 까칠하게 거슬리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고, 스스로에게도 굉장히 부담을 준다. 하지만 사소한 마음속 오류를 믿어버리다가 오해만 쌓이고 자칫 잘못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따져 물으려는 태도, 그리고 반대로 어느 정도 용인을 하려는 태도는 상황에 따라 잘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난 그 균형이 아직 힘든 것 같다. 내가 지칠 때면 그냥 묻지 않으려 하고, 에너지가 넘칠 때면 모든 것을 물어보려고 한다. 조금 더 성숙해지면, 잘할 수 있을까. 내가 힘들지 않으면서도 오해를 사지 않는 그 지점에 잘 머무를 수 있을까. 고민이 드는 하루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작된 결과: 콜라와 팝콘 실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