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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Nov 29. 2020

어릴 때 일부만 배우는 과학

비타민 D 결핍증에 대한 고민

'수능 생물은 생물이 아니다.' 대학에 와서 친구들끼리 하던 이야기이다. 수능 생물은 그냥 암기력 테스트지, 정교한 논리적 과정으로 쌓인 과학이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어 '생물'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이 너무 억울한 느낌이다. 하여간, 내가 지금까지 정규 교육과정을 배우면서 느낀 것이 우리는 만날 똑같은 내용을 추가하여 배우고, 덧붙여서 배운다. 예를 들어 보면 초등학교 때 산염기를 배웠다. '리트머스 시험지와 양배추 지시약 등으로 색깔이 변해요! 산성 물질에는 뭐가 있을까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중학교 때는 좀 더 자세히' H+를 내놓는 물질이 산이고 OH-를 내놓는 물질이 염기다, 산성 물질과 염기성 물질은 전해질이다', 뭐 이런 내용으로 배우다가 갑자기 고등학교 때는 '사실 산염기의 정의는 다양하단다... 후후....' 그러면서 로그를 계산하고 강산, 강염기, 약산, 약염기를 나눠서 그래프를 봐야 한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면 'hard, soft 산염기가 있고 이러쿵저러쿵...' 등 뭐가 계속 추가된다!

그래서 난 불만이었다. 나는 좀 빨리 배우는 학생이라서 처음부터 배울 때 제대로 배울 것이지, 왜 만날 '사실 너네가 지금까지 알던 것은 거짓말이고, 이게 진짜야!' 느낌으로 배우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가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이에 따라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르고 생각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다 가르칠 순 없고 조금씩 빼먹고 가르치는 것이 맞다. 그때는 자만했었지 뭐... 요즘 배우는 거 보면 빼먹고 배웠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학생 과정에서 일부를 빼고 배우다 보니 최근에 수업을 들으면서 굉장히 많은 내용들을 새로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비타민 결핍증이었는데, 비타민 D 결핍증이 생기면 초등학생 시절부터 계속 구루병이 생긴다고 배웠다.

비타민 결핍증, 출처 대교학습백과 http://dlegongbuwarac.edupia.com/xmlPrint.aspx?did=40202

구루병은 간단히 말해 뼈가 말랑말랑해져서 휘어지는 그런 병이다. 그런데 최근 정형외과를 배우다 보니... '비타민 D 부족=구루병'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비타민 D가 부족해야 구루병이 생기고, 성장판이 닫히면 '골연화증'이라고 보통은 뼈의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 대신 뼈가 물러져서 잘 부러지긴 한다. 그래서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아는 구루병, 성인은 골연화증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걸 배우고 나니 어릴 적 교과서에 대한 기억과 그래 뭔가 이상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날 구루병 옆에 자료사진으로 나오는 것이 소아의 X-ray였고, 키가 안 큰다고 그러고 막... 다 아이들 이야기잖아!

왜 어릴 적에는 구루병만 배웠을까? 우리가 그 당시 소아였기에 그런 건가? 아니면 '골연화증'이라는 용어가 너무 어려워서? 제일 합리적인 이유는 비타민 D 부족으로 인한 골연화증이 드물어서 그런 것 같다(골연화증은 비타민D 부족 외에도 종양, 약물 등에 의해 생길 수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수업자료 외에 자료를 더 찾아보았는데, 2007년에 쓰인 논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최근 본 교실에서는 태양광선 및 영양 결핍과 관련된 심한 비타민 D 결핍증에 의한 골연화증의 증례를 경험하였다. 관련 문헌을 확인한 바 이와 같은 골연화증의 증례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20여 년간 보고된 바 없었기에 이를 보고하고자 한다. 
-김석연, et al. "성인에서 심한 비타민 D 결핍증에 의한 골연화증 1 예." 대한내분비학회지: 제 22.1 (2007).

...하여간 정규 교육과정에서 안 가르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cf. 골연화증은 영어로 osteomalacia인데 이걸 동기 오빠가 '뼈 말랑증'이라 대답한 적이 있다. malacia, /말라시아/, 말랑증, 왠지 말이 되는데? 아마 평생 안 까먹을 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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