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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Feb 22. 2021

편견을 조장하려는 것은 아닌데

질환 특이적인 얼굴 모양

몇 달 전 뉴스를 보다가 '태아알코올증후군'을 소개하는 기사를 보았다. 태아 알코올 증후군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임신 기간 중 알코올 섭취로 인해 아기에게 생기는 여러 증상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말이다. 이 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은 얼굴이 특이하다. 인중이 불명확하고, 윗입술이 짧고, 코도 짧고 낮다. 내가 본 기사는 그 얼굴 특징을 비교적 잘 설명하면서 임신 중 술을 마시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그런데 제일 추천 수가 높은 댓글이 '이 기사가 과학적인 것이 맞느냐, 외모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글 아니냐'면서 트집을 잡는 댓글이었다. 밑으로 쭉 내려보니, '제대로 알고 쓰는 거냐'면서 비슷한 맥락의 비난 댓글이 많았다.

태아알코올증후군 환자의 얼굴 특징. 출처: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58626689_Drinking_it_in
편견을 조장하려는 것은 아닌데, 과학적인 것은 맞다.

태아알코올증후군이 조금 생소할 수 있는 질병이라서 이해가 어려울 수 있는데, 다운증후군을 생각해보면 이 말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다운증후군 환자를 처음 본 것은 미취학 혹은 초등 저학년 때 가족과 함께 등산을 갔을 때였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환자와 비질환자를 구별하고 부모님께 질문을 했었다. 아마도 다들 뭐라 설명은 못 하겠지만 다운증후군 환자 분들을 보면 그 특유의 얼굴을 느낄 것이다. 납작한 얼굴, 올라간 눈꼬리, 작은 코, 입, 귀. 그래도 외모로 질환을 유추할 수 있다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조로병'을 검색해보길 바란다. 그 질환 특유의 얼굴을 굳이 말로 설명 안 해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의학을 배울 때 늘 교수님들이 강조하는 것이 있다. '환자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진찰이 시작되는 것이다.' 환자의 외모는 어떤지, 걸어 들어오는 모습은 정상적인지, 위생 수준은 어떠한지 등등. 얼굴은 아무래도 유전병이나 주산기 질환 등에 의해 얼굴 모양이 많이 정해 지므로 소아과에 특히 강조했었다.

다운 증후군 환아의 특징. 출처: https://www.punekarnews.in/downs-syndrome-the-birth-of-a-unique-child/
조로병 관련 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utchinson-Gilford_Progeria_Syndrome.png

생각해보면 외모지상주의니, 성형공화국이니,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여러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들을 보면 외모와 관련된 내용이 사회적 편견과 그로 인한 다양한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외모에 대한 서술은 굉장히 예민하게 살펴봐야 하는 부분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댓글을 달아주신 분처럼, 외모로 인한 편견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늘 경각심을 가지고 TV나 유튜브 등에서 소비되는 모습에 대해 비판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올곧은 가치관 때문에 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민한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좋을까?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나쁜 편견을 조장하지 않고
예민한 과학적 사실을 전달할 수 있을까?

1번, 모르는 게 낫다. 이건 아닌 것 같다. 아기가 태어났는데 얼굴이 이상하다, 어 그러면 혹시 이러이러한 병이 아닐까 의심하고 병원에 가서 검사 한 번 받아보는 것이 낫지 '개성 있는 얼굴이구나'라고 인정하고 넘어가면 질환으로 인한 문제가 더 커질 수 있고,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 

2번, 여과 없이 알려준다. 이것은 책을 비롯한 문헌으로 따지면 괜찮은 방법이지만 기사로 전달하기에는 안 좋은 방법이다. 생각해봐라, 요즘 누가 인터넷 기사를 정독하는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제목 보고 훑고 댓글 보고 끝. 후루룩 지나가다가 우연찮게 해당 질병의 여러 얼굴 특징 중 하나라도 본인에게 해당된다면 기분이 매우 나쁘다. 특히 낮은 코. (TMI: 연도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코 수술은 성형수술 희망 부위 3위 이내에 든다.)

3번.... 음. 잘 모르겠다. 글을 다 안 읽으면 다음 창으로 못 넘어가는 기능을 만들까? 그럼 글의 일부만 보고 생기는 고정관념을 없앨 수 있을 텐데. 그런데 그러면 헤드라인만 보는 사람들은...? 거참, 진짜 모르겠다.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나? 하지만 편견이나 차별 등은 가르쳐서 없어지는 것 같지 않던데... 심지어 요즘은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밈이 돌고 있어서 온라인 상에서 외모 차별이 심해지는 것 같던데...

그냥 외모에 따른 차별, 환자에 대한 차별 등을 없애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물론 차이는 없앨 수 없다. 모든 사람 얼굴을 동일하게 뜯어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다만 차별은 없앨 수 있다. 인정하고, 배려하고 그러면 되지 않는가. 그게 제일 나은 것 같다.

cf) 조금 잔인한 소리일 수도 있는데, 과학을 배우다 보면 외모 외에도 사회의 '올바른 가치', 혹은 '바람직한 가치'에 위배되는 내용을 많이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지능. 폭력성. 기타 등등. 지금까지 과학이 밝힌 것이 '절대적 진실'이지는 않겠지만, nature가 nurture보다 우선된다는 발견은 너무나도 안타깝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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