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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Jan 06. 2021

시끄러우면 눈까지 닫지요

사람이 그리운 코로나 시국

만화를 보면 표정이 굉장히 다양하다. 나는 표정이 그렇게 다양한 편이 아니라서 만화를 보면서 우스꽝스럽다, 혹은 과장되었네,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정말 만화 캐릭터의 표정을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그리는 사람들은 대단한 것 같다.

다양한 표정들. 출처: https://www.freepik.com/free-vector/facial-mood-expression-icons-set_4561528.htm

그래서 만화를 많이 보다 보면 표정 그리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그리면 잘 표현되겠구나'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다. 눈썹의 가쪽을 위로 올리면 화가 났구나, 반대로 눈썹 가쪽이 아래로 내려가면 슬프구나. 치아를 앙 다물고 있으면서 얼굴이 벌게지면 분노에 차 있구나 등등. 참 재미있게도,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서 깜짝 놀랄 때는 귀를 손으로 막으면서 이마를 찡그리고, 눈을 감는다. 아니, 그런데 눈은 왜 감지? 실제로 우리가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 눈을 감나? 

출처: https://ac-illust.com/ko/clip-art/431177/%EA%B7%80%EB%A5%BC-%EB%A7%89%EB%8A%94

그렇다, 우리는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 눈을 감는다. 오늘 신경과 수업에서 '신경학적 검사'에 대해 배웠다. 신경학적 검사란 환자가 왔을 때 어떤 부분에 병변이 있는지, 얼마나 심한 것인지 등을 판단하는 여러 가지 검사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그로 인해 추가 검사도 할 수 있고, 진단도 내릴 수 있다. 모든 환자에게 모든 검사를 했다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이므로 주된 증상을 토대로 일부는 자세하게 하고, 일부는 대강 넘어가기도 한다고 했다. (보통 후각신경 검사는 넘어간다고 한다.) 이 중에서 7번 뇌신경인 얼굴 신경(Facial nerve)의 반사 기능 검사 중, 박수 소리와 같이 큰 소리를 들려주는 검사가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눈을 질끈 감고, 얼굴을 찡그린다. 이렇게 반사적으로 얼굴이 움직이는 것을 우리 교수님은 Cochleopalpebral reflex라고 하셨지만 교재나 인터넷을 찾아보았을 때 그 표현보다는 Acoustic startle reflex이라고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한국어로는 '청각 놀람 반사'라고 하는 것 같은데 잘 안 나온다...)

아무래도 우리가 임상을 배우다 보니까 사람과 환자, 질병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왜 이런 반사가 생기게 되었는지 진화론적인 설명과 세부적인 이유는 들을 수 없었지만, 아마도 큰 소리는 위험을 의미하니까 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는 위험할 때 눈을 감으면 더 위험한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눈에 뭐가 들어가면 문제이니까 감는 건가? 싶기도 하고, 궁금증이 많이 남는 반사이다.


어찌 되었든 오늘 수업을 들으면서 생각보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많이 관찰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온라인 수업이니 서로의 얼굴을 관찰할 일이 적다. 아니, 사실 대면 수업이어도 서로를 관찰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뭔가 다들 책과 컴퓨터를 더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학생 때도 그렇게 얼굴을 쳐다보며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화에 큰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내 할 일 하면서 수다 떨고, 다른 일 하면서 이야기하고. 길 가면서 이야기하면 앞만 보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진지하게 마주 보며 이야기해 본 적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이 까마득하다.

가끔은 걱정된다. 이렇게 살다가 결국에는 비언어적 표현을 어떻게 읽는지 까먹게 되는 것 아닐까? 저 사람이 내가 싫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나는 눈치채지 못하고 해맑게 좋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표정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만화를 보면서도 이게 실제 표정을 따왔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까. 

참 사람이 그리운 코로나 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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