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비 Apr 08. 2024

그래도, 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영장공원


https://youtu.be/PLDH-rcYd8c?si=qLxNDOMydkLnctjE

아이유 「봄 안녕 봄」

봄이 짧아져서인지

오는 봄에게 인사하기 무섭게

작별인사를 해야 할 것만 같아요.

봄처럼 아름다운 시간이 없는데

봄을 맞기엔 우리가 너무

어리석고 욕심이 많아서 일까요


(글 첫머리엔 계속 노래 한 곡씩

띄워놓을게요.

같이 들으며 걸어주세요)



2024. 04. 06. 성남 영장공원

1

무작정 헤매는 글을

무작정 써봐야겠다 했지만

어찌되었든 그 처음은 동네 뒷산이 될 거란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처음을

생각보다 먼 을왕리로 떠났네요.


그건 일종의 프롤로그다 생각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가까운 곳부터

헤매볼 생각입니다.

(이래놓고 다음 장소가 또 뚝 떨어진 어드메일지도...)


매년 봄이면 혼자 뒷산에서

짧은 봄나들이를 합니다.

누구에게도 봄나들이인 것을 들키지 않고

봄을 맞으러 갈 수 있어서 좋거든요.


가끔 출퇴근 길에 흘끔흘끔

뒷산의 동태를 살펴보는데

월요일까지 잠잠하더니만

화요일 아침에 갑자기 한꺼번에 활짝 피어서

과연 주말까지 날 기다려주려나

괜히 조바심을 내며

남은 하루하루를 보냈던 한 주였어요.

2024. 04. 06. 성남 영장공원

2

언젠가 태풍이 오고

뒷산 나무들이 여럿 쓰러졌는데

그때 시에서 쓰러진 나무 대신

벚나무들을 심고 길을 가꾸더군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삭막한 동네 뒷산에

괜히 일만 벌이는 거 아닌가도 했는데

누군가 신경을 쓰면

작은 공간도 꽤나 아름다워지더군요.

처음엔 작고 가냘프던 나무들이

이제 나름 키가 컸어요.

2024. 04. 06. 성남 영장공원

이 날은 할 일이 많았습니다.

사전선거도 해야 했고,

미용실에도 가야 했고,

도서관에 가서 책 반납도 해야했고,

저녁 땐 친구 모임도 있었고요.

할 수만 있다면

밀린 글숙제도 조금 해 둘 요량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오늘이 아니면 벚꽃을 아예 못 볼 거 같아."

자꾸 그런 말을 하더군요.


뭔가 머릿속이 번잡할 때는 역시

마음이 시키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마음이 시키면

때론 중요하다 생각했던 일 조차

미룰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실 마음의 말을 듣는 것보다

중요하고 급한 일은 없거든요.

2024. 04. 06. 성남 영장공원

3

안그래야지 하는데도 솔직히

벚꽃 하면 이상하게 일본 생각이 나죠.

불후의 명작인

타짜의 명대사

"사쿠라네." "사쿠라야?"

(당연히 배경음악은 따라리라리라라...)

가 마치 파블로프의 개마냥

연상되기도 하고요.


어디서 오고 무엇을 생각나게 하는지

그런 것 다 잊고 싶을만큼

벚꽃은 아름답습니다.

허나

아름다우니 모든 것을 잊어버리자

그런 건 별로입니다.


하지만 또

사실 벚꽃에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벚꽃을 상징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한 거죠.

사람을 미워해야지

꽃을 미워할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2024. 04. 06. 성남 영장공원

4

주말이라 그런지

평범한 동네 뒷산인데도

많이들 나오셨더라고요.

연인들도 보이고

손주들을 데리고 나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도 보이고요.


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너그럽게 아름답습니다.

차별이 없어서

어리석고 모자란 제게도

아름다움을 나눠줍니다.

제게 어떤 나눌만한 것이 있다면

저도 과연 저 꽃처럼 공평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2024. 04. 06. 성남 영장공원

5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봄은 또 가겠죠.

듣게되는 노래도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말고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봄은 미련없이 떠납니다.

남겨진 사람들만 미련을 품게 되죠.

그렇게 생각하면 봄은

아름답지만 조금 못됐습니다.

그래도 아름다워서

도무지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가끔 봄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이상하게도 미리

미움 받을 연습을 하는 걸 봅니다.

미리 움츠리고 미리 아파하고 미리 도망가죠.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봄만큼 아름다우니

봄처럼 조금은 맘대로,

조금 못되게 굴어도 괜찮습니다.

기억하세요.

당신은 정말 괜찮습니다.

2024. 04. 06. 성남 영장공원



성남 영장공원


주소: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대중교통:

수인분당선 가천대역 혹은

태평역에서

마을버스 77번을 타시고

봉국사 정류장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사진 찍느라 늦게 걸어서 그렇지

약 1km남짓한 거리였어요.


혹시나 이 곳을 지나시다가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를 쓴

뚱뚱한 남자가 멧돼지마냥 훅 지나가도

부디 못  척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바다 끝, 여기서부터 헤매기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