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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Apr 22. 2024

세계의 끝, 벚꽃 엔딩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 (동호)



https://youtu.be/jrYIZ9VgmKo?si=E0B9OJlbauWBROL3

버스커버스커 「벚꽃엔딩」


24. 04. 21.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

1

지난번 석촌호수를 찾았을 땐

가지마다 벚꽃 몽우리가

막 솟아있을 무렵이었거든요.


조금 이르다 싶기도 했는데

풋풋한 벚꽃마냥

풋풋한 연인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도저히 그 사이로

지나갈 엄두가 나질 않는 겁니다.


속으로 '후퇴하라'를 외치며

채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돌아왔는데

오늘은 확실히 벚꽃도 없고

연인도 별로 없어서

용기가 조금 생겼습니다.

덩치만 커다랗지

의외로 엄청 소심하거든요.

24. 04. 21.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

2

석촌호수라고 하면

생각나는 단편소설이 있어요.

김연수 작가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 라는 소설인데요.

읽은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내용은 가물가물한데

풋사랑을 떠나보내는 마음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거죠.

여자친구가 돌아서서 떠나갑니다.

나는 더는 그 사람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내가 서 있는 여기는 바로

'세계의 끝'이 되는 거죠.

그녀는 내가 갈 수 없는 세계로 가 버렸습니다.


나로서는 도저히 한 발 앞으로

내딛을 수 없는 세계의 끝을

사람들은 태연히 지나갑니다.

온 몸이 굳어버린 나는 그저

그 세계의 끝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 수 밖에요.

24. 04. 21.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

소설 속에 나온

그 '세계의 끝'이 바로 석촌호수였어요.

신기했습니다.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세계의 끝이 될 수 있겠구나.


맞아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걷는 모든 거리와 지나치는 모든 장소는

누군가에게는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아픔일 수 있죠.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시작이고,

누군가에게는 세계의 끝이고요.

그런데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사실 제게 석촌호수는

군대가기 직전

방이동에 있는 김광석LP 술집에서

술 진탕 마시고 취해서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숙을 했던 곳으로 남아있어요.


잠깐만 앉아서 쉬고 가자 했는데

눈떠보니 전 여기 벤치,

친구는 저기 벤치에 누워있고

새벽 조깅을 나오신 어르신들이

흘끔흘끔 쳐다보고 가시더군요.

누가 친절(?)을 베푸신 건지

신문지도 덮여있고...

24. 04. 21.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

3

솔직히 처음 롯데월드타워가 들어섰을 때

'저게 뭔가' 싶었어요.

누군 와인병이라고 했고

누군 미사일이라고 했고

누군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루만의 탑 같다고 했죠.


그렇게 어색하기만 하더니

이젠 익숙해졌는지 아무런 감흥이 없네요.

물론 여전히 고갤 돌리다 시선이 걸릴 때면

조금은 쌩뚱맞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참, 아직도 전망대에 가보진 않았네요.

언젠가 가 볼 일이 있겠죠?

당장은 아니겠습니다만.

전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곳은 어지럽거든요.

24. 04. 21.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

4

만개했던 벚꽃이 사라지고

일상으로 돌아온 호수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래도 한참 꽃피던 때의 번잡함은

사라지고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날도 흐리고

별다른 눈 둘 곳도 없다 싶었는데

이상하게 그 일상성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24. 04. 21.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난 왜 걷기로 한 거지?'

어떤 장소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는 건

정말 멋진 일이 맞는데

그런 일은 저랑은 잘 맞는 일은 아닙니다.

실력도 없고요.


그냥 혼자 걷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친구와 같이 걸어야지 했는데

마땅히 동행이 되어주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찾아오지 않은 것 같아요.

조금 더 걸어봐야겠죠.

24. 04. 21.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

5

걷다가 가끔 심심해지면

이제 초록잎이 덮인 나무들에

벛꽃 색을 칠해보았습니다.

이어폰에선 계속 벚꽃엔딩이 흐르고 있으니

상상으로 허공에

흩날리는 벛꽃잎을 띄워도 보고요.


그 때 마침 좋은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은 늘 그 고민을 하게 만들어요.

'이걸 어떻게 문장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지면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의 곁에도

마침 좋은 바람이 불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그저

"지금 바로 그 친구의 친구였어요."

라고만 하면 될 텐데...


맞아요. 이상한 생각입니다.

24. 04. 21.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




송파구 석촌호수


주소:

서울특별시 송파구 신천동


대중교통:

지하철 2,8호선 잠실역이나

지하철 8, 9호선 석촌역으로 오시면 됩니다.

버스정류장은

잠실광역환승센터나

'석촌호수,한솔병원'정류장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저는 '호수임광아파트'정류장을

이용하긴 했는데 버스가 많지 않아요.

22. 10. 26.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

문득 예전 러버덕 왔을 때가 생각나

사진을 찾아보니 아직 있네요 ㅎㅎㅎ

가끔 이런저런 행사도 하니

맞춰서 가시면

엄청난 인파를 구경하실 수 있을 겁니다...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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