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를 배신하는 피조물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의 그림자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06] <트론: 아레스>

by 양미르 에디터
4721_4685_413.jpg 사진 = 영화 '트론: 아레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메리 셸리가 1818년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창조주는 자신이 만든 존재에게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피조물은 창조주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가? 요아킴 뢰닝 감독의 <트론: 아레스>는 이 200년 된 물음을 챗GPT 시대로 끌고 온다. 가상 세계 '그리드'에서 탄생한 AI 병기 '아레스'(자레드 레토)가 자신을 '100%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창조주 '줄리안 딜린저'(에반 피터스)에게 반기를 든다는 설정 자체는 흥미롭다. 문제는 영화가 이 질문을 진지하게 파고들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딜린저 시스템'의 CEO '줄리안'은 가상 세계의 존재를 현실로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3D 프린터처럼 작동하는 레이저가 '그리드'의 프로그램들을 물질화시키지만, 치명적 결함이 있다. 현실 세계에서 딱 29분만 버틸 수 있다는 것. '줄리안'은 이 기술로 무한 재생 가능한 AI 전사들을 군대에 팔아 떼돈을 벌 꿈을 꾸지만, 29분 제한을 해결하지 못하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다. 그가 노리는 건 경쟁사 '엔컴'의 CEO '이브 킴'(그레타 리)이 발견한 '영속성 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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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드만 있으면 디지털 창조물이 영구히 현실에 존재할 수 있다. '줄리안'은 자신의 최고 전투 프로그램 '아레스'와 부관 '아테나'(조디 터너-스미스)를 현실로 보내 '이브'를 납치하려 한다. 그런데 '아레스'가 이상하다. 명령을 수행하던 병기가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 '이브'가 영속성 코드를 파괴하자 '줄리안'은 '이브'의 기억에서 코드를 추출하려 하고, '아레스'는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한다. 명령을 거부하고 '이브' 편에 서는 것.

요아킴 뢰닝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관객들이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주얼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상 세계 장면의 카메라 무빙은 마치 인간이 아닌 기계가 렌즈를 조작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라는 그의 말처럼, 영화는 인간적 움직임을 배제한 촬영에 공을 들였다. 실제로 '시수'의 모션 컨트롤 로봇 팔을 활용해 정밀하고 비인간적인 카메라워크를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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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슈트 제작 과정을 보면 제작진의 노력이 느껴진다. 몰드로 성형한 폴리우레탄 소재에 LED 패널을 심고, 각 슈트의 등에 라이트 디스크를 장착했다. 헬멧은 별도 전원 장치를 갖췄고, 배우들이 하루 10시간씩 입어도 견딜 수 있게 다섯 가지 경도의 우레탄으로 제작했다. 비 오는 날 촬영까지 고려해 방수와 감전 방지 처리를 했다.

라이트 사이클도 마찬가지다. 전기 오토바이 프레임 위에 맞춤 제작한 넥과 후방 스윙 암을 장착하고, 내부에 1만 개의 LED를 심었다. 표면에는 고광택 자동차용 마감재를 입혀 칠이 벗겨지지 않게 했다. 촬영 현장을 물로 적셔 라이트 사이클이 더 멋지게 보이도록 했고, 카메라에 물보라가 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호 장치까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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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션 디자이너 대런 길포드가 설계한 세 개의 '그리드'('엔컴'-초록, '딜린저'-빨강, '플린'-파랑)는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각 그리드는 RGB 색상 체계로 나뉘어 관객이 혼동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밴쿠버 시내에서 촬영된 라이트 사이클이 경찰차를 정확히 두 동강 내는 장면은 CGI가 아닌 실제 차량을 절단해 구현한 인카메라 촬영이었다. 특수효과팀이 경찰차 5~6대를 반으로 잘라 다시 이어 붙인 뒤, VFX 스튜디오 ILM이 빛의 장벽 효과를 입혔다. 이 모든 기술적 성취가 빛을 발하는 건 IMAX 스크린이다. 실제로 극장에서 보는 <트론: 아레스>는 2시간짜리 감각적 체험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아레스'의 인간성 각성이 너무 허술하다. 그가 인간다워지고 있다는 증거로 영화가 제시하는 건 '디페시 모드'를 좋아한다는 것, 빗방울을 신기해한다는 것, "왜?"라고 묻는다는 것뿐이다. 모차르트보다 디페시 모드가 낫다는 '아레스'의 취향은 1980년대 향수를 자극하려는 제작진의 의도일 뿐, 캐릭터의 내면을 보여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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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밀턴의 <실낙원>을 읽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뇌했다. <블레이드 러너>(1982년)의 '로이 배티'(룻거 하우어)는 "시간 속으로 사라질 눈물처럼" 자신의 죽음을 시로 승화시켰다. <에이 아이>(2001년)의 '데이비드'(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동화 속 푸른 요정을 찾아 바다 밑으로 떠났다. 그런데 '아레스'는 캐릭터 디자인이 아니라, 디페시 모드의 플레이리스트를 원했다.

'이브 킴'이 '아레스'를 돕는 이유도 모호하다. 동생을 잃은 슬픔, 기술로 세상을 구하고 싶은 열망은 이해한다. 그런데 왜 갑자기 통제 불능 AI를 믿고 협력하는가? 둘 사이에 쌓이는 신뢰의 과정이 생략돼 있다. 영화에서 디지털 창조물이 현실에서 29분만 존재할 수 있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이 시간 제한은 긴장감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정작 영화는 이 룰을 일관되게 지키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는 29분이 중요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잊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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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제한이 서사의 핵심 동력이 되려면 <롤라 런>(1998년)처럼 카운트다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거나, <인 타임>(2011년)처럼 시간 자체를 화폐로 만들어야 한다. <트론: 아레스>는 29분 설정을 스토리 전개에 편리하게 갖다 쓸 뿐이다. '영속성 코드'라는 맥거핀도 마찬가지다. '케빈 플린'(제프 브리지스)이 남긴 코드가 왜 중요한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다. 그냥 "이걸 가진 사람이 미래를 지배한다"는 식의 대사로 때운다. 플로피 디스크에 숨겨져 있었다는 설정은 레트로 감성을 노린 것이겠지만, 세계관의 논리성은 약화시킨다.

<프랑켄슈타인> 서사가 200년 넘게 되풀이되는 이유는 창조와 책임, 자유와 소속이라는 보편적 질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트론: 아레스>는 이 질문을 AI 시대로 가져왔지만, 답을 찾을 생각이 없다. AI가 인간처럼 느끼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챗GPT가 "나는 존재하고 싶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2025년 현재 실제로 논의되고 있다. <트론: 아레스>는 이 시대의 영화지만, 시대의 고민과는 무관하다. 화려한 네온 빛 뒤에는 텅 빈 공간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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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브리지스가 '케빈 플린' 역할로 등장해 '아레스'에게 "베리 굿, 맨!"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것이다. 깊이 없는 칭찬, 내용 없는 격려. '프랑켄슈타인'의 질문은 메아리처럼 울려 퍼져야 하는데, 나인 인치 네일스의 강렬한 비트에 묻혀버렸다. 기술력과 아이디어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껍데기는 아름다웠지만, 안에 담을 영혼을 만들지 못했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이러니다. ★★★

2025/10/01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


※ 영화 리뷰
- 제목 : <트론: 아레스> (Tron: Ares, 2025)
- 개봉일 : 2025. 10. 08.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19분
- 장르 : 액션, SF
- 등급 : 12세 관람가
- 감독 : 요아킴 뢰닝
- 출연 : 자레드 레토, 그레타 리, 에반 피터스, 질리언 앤더슨, 제프 브리지스 등
- 화면비율 : 1.90:1(IMAX 일부 장면)/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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