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07]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폭격기 조종사의 관물대를 비추는 첫 번째 샷. 그 안에 '뽀로로' 인형이 놓여 있다. 평화로운 일상 속 작은 행운의 부적처럼. 그리고 두 번째 샷. 핵전쟁 출동 명령이 떨어진 순간, 같은 '뽀로로'가 관물대에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던 것과 떨어지는 것. 그 사이의 간극은 평화와 종말만큼이나 멀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를 보는 내내, 나는 그 작은 파란 펭귄이 자꾸 눈에 밟혔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캐릭터가 미국 군인의 사물함에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서가 아니다. 그 인형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며, 정작 이 전쟁 시뮬레이션의 가장 가까운 당사자인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동해 어딘가(영화는 'Sea of Japan'이라 표기했지만)에서 발사된 정체불명의 미사일이 미국 시카고를 향해 날아가는 18분을 그린다.
백악관 상황실의 '올리비아 워커' 대위(레베카 퍼거슨)는 처음엔 이것이 북한의 일상적인 미사일 실험일 거로 생각한다. 곧 착탄 예상 지점이 시카고라는 것이 밝혀지고, 예상 사망자 1,000만 명이라는 수치가 화면에 떠오른다. 요격 미사일이 발사되지만 실패한다. "총알로 총알을 맞추는 것"이라던 누군가의 말처럼, 미국이 자랑하던 5,000개 이상의 핵무기와 첨단 방어 시스템은 이 한 발의 미사일 앞에서 무력하다.
'워커'는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월차를 낸 남편에게 '워커'는 "가능한 한 서쪽으로, 계속 서쪽으로 가라"고만 말한다. '워커'의 상관 '밀러' 대령(제이슨 클락)은 지정생존자로 지정되어 펜실베이니아의 '레이븐 록' 벙커로 옮겨진다. 상황실에 남은 '워커'는 국방장관과 대통령이 참여하는 화상 회의를 지켜본다. 이것이 연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워커'는 모니터 속 사람들의 표정으로 알아챈다.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0년)처럼 같은 18분을 세 번 반복한다. 두 번째는 국방장관 '리드 베이커'(자레드 해리스)의 시선이다. 그의 딸은 시카고에 산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소원해진 관계였지만, 그는 딸에게 전화를 건다. 그는 딸이 몇 분 후 죽을 것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레이븐 록'으로 가는 헬기에 타기 직전, '베이커'는 어떤 선택을 한다.
세 번째는 대통령(이드리스 엘바)의 관점이다. 그는 초등학교 농구팀 자선 행사에 참석 중이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2001년 9·11 테러 소식을 들었던 것처럼, 그도 아이들 앞에서 '세상의 종말'을 고지받는다. 헬기로 이동하며 그는 케냐에서 동물보호 캠페인 중인 영부인(르네 엘리스 골즈베리)에게 전화를 건다. 군사 전문가도 아닌 아내에게 묻는다. "단추를 눌러야 할까, 아니면 1%의 오발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야 할까?"
'브래디' 장군(트레이시 레츠)은 즉각 대응 핵 공격을 주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국을 종이호랑이로 볼 것"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은 그것이 전 세계의 멸망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 항복이냐, 자살이냐. 그사이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여러 국가가 몇 분 안에 문명을 끝낼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일종의 집단적 무감각, 생각할 수 없는 것의 조용한 정상화가 있다." 영화는 그 무감각을 깨우려 한다. 시카고가 불타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상상한다. 1,000만 명의 죽음을. 일리노이주 전체의 소멸을. 그리고 그다음에 올 러시아와 중국의 반격을. 끝없는 보복의 연쇄를.
영화를 만든 각본가 노아 오펜하임은 전직 NBC 뉴스 회장답게 군사 전문가들과 전직 관료들을 인터뷰하며 철저히 취재했다고 한다. 데프콘 체계, 지정생존자, '레이븐 록' 같은 용어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영화의 목표는 그 방대한 군사 지식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수십 년간의 시뮬레이션, 두꺼운 매뉴얼, 정밀한 요격 시스템 등 모든 것이 한 발의 미사일 앞에서 무너진 것.
이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배리 애크로이드의 촬영은 핸드헬드 카메라로 초조함을 극대화하고, 아카데미 2회 수상에 버금가는 커크 백스터의 편집은 다이아몬드처럼 정밀하다. 볼커 베텔만의 스코어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년), <콘클라베>(2024년)의 음악이 그러했듯 관객의 심장을 쥐어짠다. 레베카 퍼거슨은 울지 않으려는 표정 하나로 관객을 울게 만들고, 이드리스 엘바는 신임 대통령의 불안과 무게를 동시에 표현한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철저히 미국의 시선으로 만들어졌다. 시카고의 1,000만 명을 걱정하는데, 미사일이 발사된 동해, 그 바다와 가장 가까운 나라는 미국이 아니다. 영화는 북한을 가능성 중 하나로 언급하지만, 정작 북한과 가장 가까운 한국은 서사에서 부재한다. 미국은 18분의 시간이라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2~3분이면 충분하다. "서쪽으로 계속 가라"는 조언도 우리에겐 의미가 없다. 우리의 국토는 너무 좁고, 도망칠 서쪽도 없다.
'뽀로로'를 만든 나라. 우리의 문화 콘텐츠는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K팝, K드라마, K영화가 국경을 넘는다. 하지만 그 콘텐츠를 만든 나라는 여전히 이 시뮬레이션의 최전선에 서 있다. 영화 속 미국인들이 두려워하는 그 공포를, 우리는 더 가까이에서, 더 오래 경험해 왔다. 한반도는 '데프콘4'가 '평시'이기 때문. 미국의 5,000개 핵무기가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을 보며,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영화 제목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3부의 제목 '다이너마이트로 채워진 집'에서 가져왔다. 대통령이 듣던 팟캐스트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다이너마이트가 가득한 집에 살고 있는 거야.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데 좋다고 그 안에 머문 거지." 이 말은 미국만을 향한 게 아닐 것이다.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우리 모두는 그 집에 산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허트 로커>(2008년)를 통해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고, 빈 라덴을 잡기 위한 이야기를 담은 <제로 다크 서티>(2012년)로는 미국 중심적 시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부를 '전쟁부'로 개칭한 2025년의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영화 자체는 미국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유능하고 도덕적인 관료들, 고뇌하는 대통령, 가족을 생각하는 군인들. 이들은 모두 선하다. 그렇기에 더 무섭다. 선한 사람들의 선한 의도가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통령이 단추를 누르는 순간도 보여주지 않는다. 열린 결말이라는 침묵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묻게 된다. 다이너마이트로 채워진 이 집에서, '뽀로로'가 떨어지는 이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2025/10/09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A House of Dynamite, 2025)
- 개봉일 : 2025. 10. 08.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12분
- 장르 : 스릴러
- 등급 : 12세 관람가
- 감독 : 캐서린 비글로우
- 출연 : 이드리스 엘바, 레베카 퍼거슨, 가브리엘 바쏘, 자레드 해리스, 안소니 라모스 등
- 화면비율 : 2.3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