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정자들을 만날 수 있는 올해의 엽기 작품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12] <스퍼마게돈: 사정의 날>

by 양미르 에디터
4755_4779_929.jpg 사진 = 영화 '스퍼마게돈: 사정의 날' ⓒ (주)원더스튜디오

노르웨이에서 건너온 <스퍼마게돈: 사정의 날>은 누구도 감히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던 곳, 바로 인간의 생식기관 내부를 무대로 삼는다. 이건 그저 엽기적인 소재 선택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거쳐온, 그러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출발선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두 개의 세계를 오간다. 하나는 평범한 10대 소년 '옌스'(크리스티안 프레드릭 미켈슨 목소리)의 일상이다.


<스타워즈>와 <반지의 제왕>을 사랑하는 전형적인 너드 소년인 그는 짝사랑하던 소녀 '리사'(나스린 쿠스라위 목소리)와 여름 캠프에서 만난다. 어색한 술자리, 병돌리기 게임, 그리고 어느새 찾아온 첫 경험의 순간들. 이 장면들은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옌스'와 '리사'의 첫 경험은 서툴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가끔은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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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의 세계는 '옌스'의 고환 안이다. 여기엔 수억 개의 정자들이 '사정의 날'을 준비하며 살아간다. 마치 군대처럼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이 있고, 교육기관도 존재하며, 심지어 '스타벅스' 같은 카페도 볼 수 있다. 책벌레 정자 '시멘'(엑셀 헨니 목소리)과 그의 절친 '쿠밀라'(마틸드 토민 스톰 목소리)는 이곳에서 '살트스막' 교수(비욘 선드퀴스트 목소리)의 강의를 듣는다. 교수가 보여주는 교육 영상은 정자들이 맞이할 수 있는 비참한 최후들을 낱낱이 보여준다. 양말 속에서의 죽음, 위산에 녹는 고통, 콘돔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의 절망.

이 설정을 듣고 있으면 우디 앨런 감독의 <섹스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1972년)이 떠오른다. 그 영화에서도 우디 앨런은 혼란스러워하는 정자 역할을 맡아 관객들을 웃겼다. <스퍼마게돈: 사정의 날>은 그 안에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시멘'은 수정 따위엔 관심 없다. 그는 인간 세계에 대한 책을 읽으며, 자신이 사는 이 좁은 세계 너머를 꿈꾼다. 반면 '쿠밀라'는 철저히 훈련받은 엘리트 정자다. '쿠밀라'에게는 하나의 목표만 있다. 난자에 도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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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백미는 이 두 세계가 교차하는 순간들이다. '옌스'와 '리사'가 키스하면, 정자 세계에선 비상벨이 울린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오면, 수억 마리의 정자들이 일제히 출발선에 선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악당 '지즈모'(크리스티안 루벡 목소리)다. 그는 다른 정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빨간색 금속 슈트를 입고, 가슴에는 원형 아크가 빛난다. 어디서 많이 본 디자인으로, '토니 스타크'의 '아이언맨'이다.

'지즈모'는 '불공정한 출발선'의 은유처럼 그려진다. 똑같은 정자로 태어났지만, 누군가는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누군가는 맨몸으로 달려야 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 아닌가? 토미 위르콜라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지즈모'는 모든 규칙을 어기는 캐릭터다. 그는 콘돔도 뚫고, 살정제도 견뎌낸다. 하지만 결국 그가 원하는 건 다른 정자들과 똑같다. 1등이 되는 것." 욕망의 본질은 같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의 차이가 불평등을 만든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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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퍼마게돈: 사정의 날>의 정체성을 두고, 분명 관객의 반응은 엇갈릴 것이다. 어떤 이는 "밀레니얼 세대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성교육"이라 평하고, 어떤 이는 "그저 웃기려고 만든 저질 코미디"라고 폄하할 것이다. 둘 다 일리 있다고 본다. 이 영화는 분명 교육적이다. 콘돔의 중요성, 사후피임약의 존재,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선택권. 이 모든 걸 노골적이지만 정확하게 보여준다.

인상적인 건 '옌스'의 부모가 그려지는 방식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콘돔을 건네며, 자신의 첫 경험담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취해서 토하고 경찰서 신세를 졌다는 것. 이런 부모는 미국 영화에선 찾기 힘들지만,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에선 이게 보편적인 태도다. 위르콜라 감독도 "우리는 섹스를 금기시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은 어차피 할 거다. 그렇다면 안전하게, 책임감 있게 하도록 가르치는 게 어른들의 역할"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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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관객에게 "추천하느냐? 마느냐?"를 묻는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다르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저속한 유머를 견딜 수 있는가? 80분 동안 말장난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애니메이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용의가 있는가? 이 질문들에 "예"라고 답한다면, <스퍼마게돈: 사정의 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영화는 말하고 싶어 한다.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기적이다."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이 메시지가 정자의 입을 통해 나오면 묘하게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는 모두 그 레이스의 승자다. 3억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여기 도착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달리고 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관계에서. 때로는 '지즈모'처럼 불공정한 장비를 가진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고, 때로는 '시멘'처럼 원치 않는 레이스에 떠밀린다. 하지만 달리는 동안, 우리는 살아있다. ★★★


※ 영화 리뷰
- 제목 : <스퍼마게돈: 사정의 날> (Spermageddon, 2024)
- 개봉일 : 2025. 10. 23.
- 제작국 : 노르웨이
- 러닝타임 : 79분
- 장르 : 애니메이션, 뮤지컬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감독 : 토미 위르콜라, 라스무스 A. 실버르센
- 목소리 출연 : 나스린 쿠스라위, 크리스티안 프레드릭 미켈슨, 엑셀 헨니, 마틸드 토민 스톰, 크리스티안 루벡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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