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개반이상만 #39] <릴로 & 스티치>
2002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릴로 & 스티치>가 실사로 돌아왔습니다. 이 작품은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실험체로 분류된 '626'의 이야기로 시작하죠. 과학자 '점바 주키바'(자흐 갈리피아나키스) 박사의 불법 유전자 실험으로 탄생한 '626'은 모든 것을 파괴하도록 설계되었지만, 재판 과정에서 탈출해 지구의 하와이에 불시착합니다. 강아지로 위장한 '626'은 유기견 보호소에서 부모를 잃고 언니 '나니'(시드니 엘리자베스 아구동)와 단둘이 사는 여섯 살 소녀 '릴로'(마이아 케알로하)를 만나죠. 친구가 간절했던 외로운 '릴로'는 이 특별한 '강아지'를 입양하며 '스티치'(크리스 샌더스 목소리)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은 오래가지 않는데요. '스티치'를 되찾으려는 외계 요원들이 지구에 파견되고, 외계인의 존재를 감지한 CIA 요원까지 가세하면서 하와이는 쫓고 쫓기는 무대가 됩니다. 한편 '스티치'의 예측 불가한 행동들로 인해 '나니'는 직장을 잃게 되고, 사회복지사의 개입으로 자매는 헤어질 위기에 처하죠. 파괴 본능으로 가득했던 '스티치'는 점차 '릴로'와의 교감을 통해 '오하나(가족)'의 의미를 깨달아가지만, 그를 체포하려는 세력들의 위협은 계속됩니다.
<릴로 & 스티치>는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2021년)로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오르며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보여준 딘 플레이셔-캠프 감독의 신작입니다. 조개껍데기라는 독창적 캐릭터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자연스럽게 결합하며, 공동체 복원이라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섬세하게 풀어낸 감독의 전작은 그야말로 예술적 성취였죠.
개인적이고 실험적이었던 전작과 달리, <릴로 & 스티치>에서는 대중적 어필과 기존 IP 각색이라는 제약 등 상당 부분 타협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래도 최근 몇 년간 연달아 실패작을 양산하며 원작 파괴 논란에 시달렸던 디즈니 실사화 영화들의 참담한 행보를 떠올리면, 이 작품은 분명 의미 있는 전환점이죠. <릴로 & 스티치>의 성취 중 하나는 '스티치'라는 캐릭터의 완벽한 실사화인데요. ILM이 담당한 CG 작업은 보송보송한 파란 털의 질감부터 장난기 가득한 표정 변화까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구현해 냈죠.
'릴로'의 캐스팅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실제로 하와이에 거주하는 신인 마이아 케알로하는 15번의 오디션을 거쳐 '릴로' 역을 꿰찼는데, 노력만큼이나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주죠. 최근 디즈니가 〈인어공주〉(2023년)나 〈백설공주〉(2025년)에서 보여준 논란 캐스팅과는 달리, <릴로 & 스티치>는 원작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현지화를 이뤄냈습니다. 하와이 출신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된 것도 이 지역의 문화적 정서를 존중하려는 제작진의 의도로 읽히죠.
흥미롭게도 실사화로 전환되면서, 애니메이션에서 보이지 않았던 사회적 메시지는 선명해졌는데요. 현재로 시간대를 각색하는 가운데, 영화는 의도적으로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부각합니다. 부모가 없는 자매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히 "'스티치'의 장난"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불안정과 허술한 사회 안전망이 근본 원인임을 보여주죠. 우수한 성적을 보유했으나, 대학을 포기하고 동생을 키워야 하는 '나니'는 언제나 해고당할 수 있는 관광업, 서비스업에 종사합니다.
'나니'가 사회복지사의 지속적인 개입을 받고, 건강보험을 걱정하는 모습은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줄 수 없는 현실적 압박이죠. "가족은 누구도 버리지 않는다"라고 말하지만, 시스템이 가족을 해체하려 하는 모습은 '오하나' 메시지의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최근 디즈니 영화들이 정치적 올바름만 외치며 놓쳤던 진짜 사회적 이슈를 지적하면서,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진정성 있는 시선을 회복했음을 볼 수 있죠.
하지만 아쉬움도 분명 존재합니다. 원작 대비 25분 연장된 상영 시간은 딱히 새로운 깊이를 더하지 못한 채 다소 늘어진 느낌을 주죠. 무엇보다 '디즈니 실사화'라는 프레임 자체가 가진 "원작의 클립을 재생산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라는 한계는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는데요.
그래도 단순히 인종만 바꾸면 될 것이라는 피상적인 정치적 올바름 대신 현실의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원작이 가진 순수한 매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릴로 & 스티치>는 1990년대 가족 영화의 명가였던 디즈니의 클래스가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때로는 혁신보다 겸손한 완성도가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 파란 털북숭이 외계인이 증명해 낸 셈이죠. ★★★☆
2025/05/21 메가박스 군자
※ 영화 리뷰
- 제목 : <릴로 & 스티치> (Lilo & Stitch, 2025)
- 개봉일 : 2025. 05. 21.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08분
- 장르 : 애니메이션
- 등급 : 전체 관람가
- 감독 : 딘 플레이셔-캠프
- 출연 : 크리스 샌더스, 마이아 케알로하, 시드니 엘리자베스 아구동, 카이포 두도이트, 코트니 B. 반스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