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만난 보석 같은 영화들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14] 27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감상작

by 양미르 에디터
4767_4823_2235.jpg 사진 = 영화 '차오'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27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하 BIAF2025)이 10월 24일, 한국만화박물관에서 개막식을 열며 5일간의 축제 시작을 알렸다. 한국 유일의 '아카데미 공식지정 국제영화제'인 BIAF2025는 전 세계 31개국 155편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상영된다. 개막식에서는 <플로우>(2024년)로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프로듀서 론 다인스와, 학생 영화제였던 PISAF를 세계적인 국제영화제로 성장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故 장동렬 교수가 명예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몇몇 작품을 감상한 에디터의 짤막한 후기들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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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오>
- 섹션 : 개막작/국제경쟁
- 감독 : 아오키 야스히로
- 출연 : 스즈카 오지, 야마다 안나, 우메하라 유이치로 등
- 등급 : 전체 관람가 / 상영시간 : 90분

젊은 기자가 인간과 인어족의 화합을 이끈 남자 '스테판'(스즈카 오지 목소리)을 취재하는 과정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웅장한 서사시가 펼쳐질 것만 같지만, '스테판'의 이야기는 영웅담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조선 회사의 평범한 엔지니어일 뿐이고, 그가 개발하던 '에어 제트' 프로펠러 프로젝트는 수익성 문제로 좌초 직전이다. 그런 그의 앞에 인어 공주 '차오'(야마다 안나 목소리)가 만난 적도 없는 사이인데 나타나 청혼을 한다.

'스테판'은 당황스럽지만, '보스'(야마사토 료타 목소리)는 이 결혼이 회사에 가져올 이익을 계산하며 그를 압박한다. 결국 '스테판'은 떠밀리듯 약혼을 받아들인다. '차오'는 땅 위에서 거대한 주황색 잉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물속에 들어가면, 혹은 편안함을 느끼면 '차오'는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 변신은 '인어공주' 이야기의 전복이자, 외면과 내면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다.

BIAF2025의 개막작이자,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장편 심사위원상을 받은 <차오>는 9년이라는 시간, 10만 장의 그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화면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작품이다. 인간과 인어가 공존하는 세계관이나 미래의 상하이 배경 작화는 훌륭하지만, 이기적인 남자 주인공이 사랑을 통해 변화하는 이야기는 다소 아쉽다. '스테판'의 심정 변화가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 것. 영화를 30분 남기고 등장하는 반전도 억지스러워 아쉬움을 준다. 로맨틱 코미디, 사회 풍자, 환경 우화, 성장 이야기, 모두를 다루기엔 힘든 시나리오였다.

4767_4825_2317.jpg 사진 = 영화 '마야, 제목을 정해줘'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2. <마야, 제목을 정해줘>

- 섹션 : 국제경쟁
- 감독 : 미셸 공드리
- 출연 : 피에르 니네이, 마야 공드리, 미리암 마테요브스키 등
- 등급 : 전체 관람가 / 상영시간 : 63분

미셸 공드리 감독은 언제나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건넨다. <이터널 선샤인>(2004년)으로 기억의 미로를 걸었던 그가 이번엔 색종이와 가위를 들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한 아버지가 딸과의 연결을 잃지 않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영화 만들기'였다는 사실, 그것도 아이가 던진 한 문장을 온전히 믿고 따라가는 방식이었다는 점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마야, 오늘의 제목은 뭐야?" 이 질문 하나로 시작되는 61분간의 여정은, 얼핏 보면 가벼운 가족 프로젝트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가볍다는 게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이 영화는 무게를 덜어낸 자리에 순수함을 채워 넣었다. 4살부터 10살까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빠는 딸의 상상을 받아 적고, 그것을 2주에서 6주에 걸쳐 종이 인형극으로 완성해 보냈다. 완성된 애니메이션을 받아본 마야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화면 너머 아빠가 자신을 위해 손수 오리고 붙인 세계. 그 안에서 자신이 주인공으로 뛰어다니는 모습.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는가.

영화는 여러 개의 독립된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파리에 지진이 일어나고, 어린 '마야'는 용감하게도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이어지는 에피소드에서는 작아진 '마야'가 배수구로 빠져들어 가 하수도를 탐험하는데, 기발하면서도 약간은 섬뜩하다. 다음 에피소드는 케첩으로 오염된 바다를 정화하는 방법이 벨기에산 감자튀김이라는 마법 같은 발상이 등장한다. 아이의 순수한 아이디어와 어른의 정교한 구현이 만나는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마법이 일어난 것이다.

4767_4826_2339.jpg 사진 = 영화 '모호의 숲'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3. <모호의 숲>

- 섹션 : 국제경쟁
- 감독 : 펠릭스 뒤포 라페리에르
- 출연 : 제넙 블랑쳇, 카렐 트렘블레이, 바르바라 울리히 등
- 등급 : 12세 관람가 / 상영시간 : 72분

혁명은 실패했고, '엘렌'(제넙 블랑쳇 목소리)은 도망쳤다. 부유한 지주 가족을 습격하던 활동가 그룹의 총격전은 순식간에 끝났다. 동료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순간, 방아쇠를 당겨야 할 그 순간에 '엘렌'은 얼어붙었다. 그리고 숲으로 달아났다. <모호의 숲>은 바로 이 도주 이후의 이야기다. 액션 영화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총성이 멈춘 뒤의 침묵을 다룬다. 행동하지 못한 자의 죄책감, 살아남은 자의 비겁함, 그리고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의 내면을 펼친다.

숲속에서 '엘렌'은 죽은 동료 '마농'(카렐 트렘블레이 목소리)을 만난다. 정확하게 '마농'의 환영은 '엘렌'을 비난하면서도 안내한다. 이어 영화는 현실과 환상, 과거와 미래,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한 몽환의 세계로 접어든다. '엘렌'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만나고, 늑대가 양을 찢어 먹는 광경을 목격하며, 죽었던 양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본다. 연인이었던 '마르크'(마티스 사바드 버호벤 목소리)는 편지 한 통을 남겼고, 그 편지는 끝까지 열리지 않은 채 "평범한 삶"이라는 또 다른 유혹으로 남는다.

펠릭스 뒤포 라페리에르 감독은 이 작품을 1960~70년대에 활동한 FLQ(퀘벡 해방 전선)의 긴박함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시간 왜곡을 결합한 톤 실험이라고 언급했다. '엘렌'이 자연 속에 있을 때 '엘렌'의 몸은 녹색이 된다. 나무, 풀, 땅과 구분되지 않는다. 저택의 흰색 공간에서 '엘렌'은 투명해지고, 트라우마의 순간들은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번진다. 이 색의 변주는 '엘렌'의 정체성이 환경에 따라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지우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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