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32] <윗집 사람들>
'정아'(공효진)와 '현수'(김동욱)는 한때 서로의 유머 감각에 반해 결혼했지만, 이제는 말끝마다 "안 웃겨"를 달고 산다. 각방을 쓴 지 오래고, 대화는 메신저로만 나눈다. 미술 강사인 '정아'가 집안을 세련되게 꾸민 건 부부 관계의 권태를 극복해 보려는 몸부림이었지만, 독립영화 감독 '현수'는 불편한 대화가 시작되면 제 방으로 도망치기에 바쁘다.
이들의 삶에 균열을 내는 건 매일 밤 천장을 뚫고 내려오는 윗집의 격렬한 소음이다. '현수'에게 그건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지만, '정아'에게는 잊고 살았던 욕망을 일깨우는 신호탄이다. '정아'는 오랜 기간 인테리어 공사 소음을 참아준 윗집 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저녁 식사를 제안한다. '현수'는 이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오히려 층간소음 민원을 제기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식탁에 마주 앉은 윗집 부부 '김 선생'(하정우)과 '수경'(이하늬)은 첫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고등학교 한문 교사와 정신과 전문의라는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이들은 요가 퍼포먼스를 시연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성생활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초면에 이런 거 하는 거 좋아해요"라는 '김 선생'의 말처럼, 이들은 사회적 예의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아랫집 부부에게 상상도 못 한 제안을 건넨다. 그리고 이 제안을 둘러싼 '정아'와 '현수'의 정반대 반응 속에서, 곪아있던 부부 갈등이 폭발한다.
<윗집 사람들>을 보는 내내 JTBC <이혼숙려캠프>가 떠올랐다. 이혼 위기의 부부들이 캠프에 입소해 '새로 과정'과 '고침 과정'을 거치며 관계를 되돌아보는 그 예능 말이다. 영화 속 윗집 부부는 마치 캠프 진행자처럼 등장해, 아랫집 부부를 하룻밤 압축 버전 이혼숙려 과정에 밀어 넣는다. 다만 실제 예능이 진지하고 때로 무거운 분위기라면, 하정우 감독은 이 과정을 19금 코미디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하정우는 이번 작품에서 감독으로서 비로소 자기 색깔을 찾은 듯하다. <롤러코스터>(2013년)에서는 말장난이 공회전했고, <로비>(2025년)에서는 빽빽한 대사에 지루함이 찾아왔다. 그러나 <윗집 사람들>은 말맛과 서사 사이의 균형점을 찾았다. 스페인 원작 <센티멘탈>(2020년)의 뼈대를 가져오되, 하정우식 티키타카와 19금 직설화법을 입혔다. 특히 전작에서 지적받았던 "대사가 안 들린다"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어 자막을 전편에 삽입한 건 영리한 선택이었다.
하정우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독특한 방식을 택했다. "매일 아침 '리딩 뷰'를 만들어서 그날 장면을 배우들과 함께 각색했다"라는 그의 말처럼, 촬영 현장에서 대사를 계속 조율했다. 네 배우의 말맛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고, 결과적으로 각 캐릭터의 개성이 살아 숨 쉬는 대사를 만들어냈다.
<윗집 사람들>의 가장 큰 미덕은 한 치의 노출도 없이 청불 등급을 받았다는 점이다. '김선생'과 '수경'이 쏟아내는 직설적인 대사들은 맨살보다 더 적나라하다. "저 맞는 거 좋아한다고요", "항문 섹스도 즐기죠" 같은 대사가 태연하게 오가는데, 이상하게도 불쾌하기보다는 웃음이 터진다. 하정우 특유의 능청과 이하늬의 우아한 말투가 야함을 유머로 치환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파격이 정말로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지는 의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성을 자유롭게 다루는 듯 보이지만, 여성 캐릭터들이 내뱉는 대사가 과연 그들의 진짜 욕망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관객을 자극하기 위해 설계된 건지 모호하다. '정아'가 "'김 선생'이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체로 거실에 서 있었다"라는 고백은 서사적 필연성보다는 상황을 과장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그리고 초중반 내내 19금 티키타카로 관객을 몰입시키던 영화는 화해의 국면에 들어서자, 급격히 톤을 바꾼다. 정신과 전문의 '수경'이 마치 상담가처럼 나서서 '정아'와 '현수'의 갈등을 조목조목 짚어주고, 두 사람은 그 말을 따라가며 서로를 끌어안는다. 이 장면이 어색한 건 지금까지 쌓아온 리듬을 스스로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말맛과 유머로 승부를 보던 영화가 갑자기 해설 방송처럼 변한다. 화해가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폭발하는 게 아니라, 제3자의 조언으로 완성되면서 이야기의 주도권이 빠져나간다.
마치 JTBC <이혼숙려캠프>에서 전문가가 등장해 솔루션을 제시하는 순간처럼, 영화적 긴장감은 사라지고 예능 포맷이 남는다. 하정우 감독은 "'김 선생'과 '수경'이 관계 회복을 도울 수 있다"라는 설정을 믿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 장치가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정아'와 '현수'가 진짜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게 아니라, 윗집 부부라는 촉매제에 의해 화해하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윗집 사람들>은 분명 새롭다. 한국 상업영화가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던 성담론을 과감하게 꺼내 들었고, 부부 관계의 권태를 유머로 풀어냈다. 하정우 감독은 전작들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딛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한층 선명하게 구축했다. 네 배우의 연기 향연은 한정된 공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묘한 허전함이 남는다. <윗집 사람들>은 유쾌한 이혼숙려캠프로서는 충분히 즐겁지만, 그 캠프를 나온 뒤 정말로 관계가 달라질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 영화다. ★★★
2025/12/04 CGV 영등포타임스퀘어
※ 영화 리뷰
- 제목 : <윗집 사람들> (The People Upstairs, 2025)
- 개봉일 : 2025. 12. 03.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07분
- 장르 : 드라마, 코미디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감독 : 하정우
- 출연 : 하정우, 공효진, 김동욱, 이하늬, 현봉식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