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사이에 펼쳐지는 부부 관계 극약처방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32] <윗집 사람들>

by 양미르 에디터
4873_5177_237.jpg 사진 = 영화 '윗집 사람들'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정아'(공효진)와 '현수'(김동욱)는 한때 서로의 유머 감각에 반해 결혼했지만, 이제는 말끝마다 "안 웃겨"를 달고 산다. 각방을 쓴 지 오래고, 대화는 메신저로만 나눈다. 미술 강사인 '정아'가 집안을 세련되게 꾸민 건 부부 관계의 권태를 극복해 보려는 몸부림이었지만, 독립영화 감독 '현수'는 불편한 대화가 시작되면 제 방으로 도망치기에 바쁘다.


이들의 삶에 균열을 내는 건 매일 밤 천장을 뚫고 내려오는 윗집의 격렬한 소음이다. '현수'에게 그건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지만, '정아'에게는 잊고 살았던 욕망을 일깨우는 신호탄이다. '정아'는 오랜 기간 인테리어 공사 소음을 참아준 윗집 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저녁 식사를 제안한다. '현수'는 이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오히려 층간소음 민원을 제기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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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마주 앉은 윗집 부부 '김 선생'(하정우)과 '수경'(이하늬)은 첫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고등학교 한문 교사와 정신과 전문의라는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이들은 요가 퍼포먼스를 시연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성생활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초면에 이런 거 하는 거 좋아해요"라는 '김 선생'의 말처럼, 이들은 사회적 예의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아랫집 부부에게 상상도 못 한 제안을 건넨다. 그리고 이 제안을 둘러싼 '정아'와 '현수'의 정반대 반응 속에서, 곪아있던 부부 갈등이 폭발한다.

<윗집 사람들>을 보는 내내 JTBC <이혼숙려캠프>가 떠올랐다. 이혼 위기의 부부들이 캠프에 입소해 '새로 과정'과 '고침 과정'을 거치며 관계를 되돌아보는 그 예능 말이다. 영화 속 윗집 부부는 마치 캠프 진행자처럼 등장해, 아랫집 부부를 하룻밤 압축 버전 이혼숙려 과정에 밀어 넣는다. 다만 실제 예능이 진지하고 때로 무거운 분위기라면, 하정우 감독은 이 과정을 19금 코미디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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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이번 작품에서 감독으로서 비로소 자기 색깔을 찾은 듯하다. <롤러코스터>(2013년)에서는 말장난이 공회전했고, <로비>(2025년)에서는 빽빽한 대사에 지루함이 찾아왔다. 그러나 <윗집 사람들>은 말맛과 서사 사이의 균형점을 찾았다. 스페인 원작 <센티멘탈>(2020년)의 뼈대를 가져오되, 하정우식 티키타카와 19금 직설화법을 입혔다. 특히 전작에서 지적받았던 "대사가 안 들린다"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어 자막을 전편에 삽입한 건 영리한 선택이었다.

하정우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독특한 방식을 택했다. "매일 아침 '리딩 뷰'를 만들어서 그날 장면을 배우들과 함께 각색했다"라는 그의 말처럼, 촬영 현장에서 대사를 계속 조율했다. 네 배우의 말맛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고, 결과적으로 각 캐릭터의 개성이 살아 숨 쉬는 대사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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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사람들>의 가장 큰 미덕은 한 치의 노출도 없이 청불 등급을 받았다는 점이다. '김선생'과 '수경'이 쏟아내는 직설적인 대사들은 맨살보다 더 적나라하다. "저 맞는 거 좋아한다고요", "항문 섹스도 즐기죠" 같은 대사가 태연하게 오가는데, 이상하게도 불쾌하기보다는 웃음이 터진다. 하정우 특유의 능청과 이하늬의 우아한 말투가 야함을 유머로 치환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파격이 정말로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지는 의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성을 자유롭게 다루는 듯 보이지만, 여성 캐릭터들이 내뱉는 대사가 과연 그들의 진짜 욕망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관객을 자극하기 위해 설계된 건지 모호하다. '정아'가 "'김 선생'이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체로 거실에 서 있었다"라는 고백은 서사적 필연성보다는 상황을 과장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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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초중반 내내 19금 티키타카로 관객을 몰입시키던 영화는 화해의 국면에 들어서자, 급격히 톤을 바꾼다. 정신과 전문의 '수경'이 마치 상담가처럼 나서서 '정아'와 '현수'의 갈등을 조목조목 짚어주고, 두 사람은 그 말을 따라가며 서로를 끌어안는다. 이 장면이 어색한 건 지금까지 쌓아온 리듬을 스스로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말맛과 유머로 승부를 보던 영화가 갑자기 해설 방송처럼 변한다. 화해가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폭발하는 게 아니라, 제3자의 조언으로 완성되면서 이야기의 주도권이 빠져나간다.

마치 JTBC <이혼숙려캠프>에서 전문가가 등장해 솔루션을 제시하는 순간처럼, 영화적 긴장감은 사라지고 예능 포맷이 남는다. 하정우 감독은 "'김 선생'과 '수경'이 관계 회복을 도울 수 있다"라는 설정을 믿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 장치가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정아'와 '현수'가 진짜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게 아니라, 윗집 부부라는 촉매제에 의해 화해하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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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사람들>은 분명 새롭다. 한국 상업영화가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던 성담론을 과감하게 꺼내 들었고, 부부 관계의 권태를 유머로 풀어냈다. 하정우 감독은 전작들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딛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한층 선명하게 구축했다. 네 배우의 연기 향연은 한정된 공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묘한 허전함이 남는다. <윗집 사람들>은 유쾌한 이혼숙려캠프로서는 충분히 즐겁지만, 그 캠프를 나온 뒤 정말로 관계가 달라질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 영화다. ★★★

2025/12/04 CGV 영등포타임스퀘어

※ 영화 리뷰
- 제목 : <윗집 사람들> (The People Upstairs, 2025)
- 개봉일 : 2025. 12. 03.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07분
- 장르 : 드라마, 코미디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감독 : 하정우
- 출연 : 하정우, 공효진, 김동욱, 이하늬, 현봉식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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